문재인 대통령 "日 경제에 더 큰 피해 갈 것…경고한다"

입력 2019-07-15 17:40
수정 2020-11-12 15:08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해 “한 단계 높은 성장을 도모하는 우리 경제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이며, 그런 의도라면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결국에는 일본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임을 경고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일본의 조치가 한국 경제의 핵심 경쟁력인 반도체 소재 수출 제한으로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일본의 경제보복 이후 나온 세 번의 메시지 중 수위가 가장 높았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경제보복은 한국이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려는 시스템 반도체의 경쟁력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훼손하기 위한 ‘불순한 의도’라는 점을 지적했다. 일본 정부가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경제보복의 이유로 내세우다 이후 한국의 전략물자 밀반출과 대북 제재 위반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강한 목소리로 성토했다.

문 대통령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틀 안에서 남북 발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총력을 다하는 우리 정부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문 대통령은 다만 우리 측이 징용문제 해결을 위해 제시한 ‘1+1 제안’(양국 기업의 출연)에 대해서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며 협상의 여지를 남겼다.


文대통령 "일본의 중대한 도전, 결코 성공 못할 것"…韓·日 정면충돌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예상을 깨고 일본 정부를 겨냥한 초강경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한·일 간 무역갈등이 정면충돌로 치닫는 양상이다. 문 대통령이 일본의 경제보복 이유가 단순한 보호무역조치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과 한반도 평화체제 훼손을 겨냥한 비경제적 목적이라고 사실상 적시한 만큼 ‘강대강’ 대결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겨냥한 ‘작심 발언’

문 대통령은 이날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일본의 경제보복과 관련해 ‘대단히 현명하지 못한 처사’ ‘말바꾸기’ ‘경고’ ‘불신 야기’ 등 날선 단어를 사용해가며 강하게 비판했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도 문 대통령의 작심 발언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해 “전례없이 과거사 문제를 경제 문제와 연계시킨 것은 양국 관계의 발전 역사에 역행하는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는 점을 먼저 지적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과거사를 경제안보와 분리해온 양국의 협력 관계뿐 아니라 50년간 유지해온 양국 제조업 분업체계마저 위협하는 등 지금까지의 한·일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라는 게 문 대통령의 생각이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전략물자 유출 의혹 제기에 “우리 정부의 노력을 지지하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동참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공동 노력에 불신을 야기하는 것”이라며 국제기구를 통한 한·일 상호 검증을 재차 제안했다.

‘통상적 보호무역조치와도 방법과 목적이 다르다’고 지적한 것은 일본의 수출 제한과 추가 ‘화이트리스트 삭제’ 압박이 경제적 차원을 넘어 한반도 안보와 미래산업을 겨냥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일본이 지난 4일 시작한 3대 원료소재 수출규제는 삼성전자가 2030년 1위를 목표로 133조원 투자계획을 밝힌 시스템 반도체(비메모리 반도체)가 핵심 타깃이라는 게 중론이다. 최첨단 극자외선(EUV) 공정에 투입되는 감광액이 수출제한 품목에 들어 있어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특정 산업을 겨냥한 일본의 수출규제는 비통상적인 행위로 한국의 산업적 도약에 대한 일본의 불안을 반영한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일본, 1100개 품목 2차 보복 예고

문 대통령이 대일 강경 메시지와 함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한 전략물자 반출 상호검증까지 재차 강조하면서 당분간 한·일 양국이 경제보복을 둘러싼 합의점을 찾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문 대통령이 “외교적 해결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지만 미국의 한·미·일 3자 회동도 거절하는 일본의 반응을 고려할 때 당분간 협상테이블에 마주앉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당장 일본 정부는 오는 18일까지 우리 측에 제3국 중재위원회 출석에 응할 것을 요구하며 ‘2차 보복’을 예고했다. 한국 정부는 “정부 간 조약이 개인의 청구권을 배제하지 못한다는 것이 국제법 원칙이고 제3국의 중재를 수용하면 한국 대법원 판결을 행정부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1일 일본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아베 신조 정부가 ‘전쟁 가능한 헌법 개정’ 발의선인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면 일본의 ‘2차 보복’ 공세는 한층 거칠어질 수 있다. 우리 정부는 23~24일 스위스 제네바 세계무역기구(WTO) 본회의에 일본의 수출규제가 안건으로 상정된 만큼 본격적으로 일본의 부당성을 알린다는 계획이지만 일본 측 반격도 만만찮을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일본이 24일까지 형식적인 청문 절차를 거쳐 각의(국무회의)에서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결정하면 이르면 광복절인 다음달 15일부터 한국이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될지 몰라 산업계가 초비상이다. 식품과 목재 등을 제외한 1100여 개 주요 공산품의 수출규제가 일본 정부 마음대로 강화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일본은 중재위 수용 거부를 빌미로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등에 나설 가능성도 높다. 일본은 징용 피해자 판결이 나온 이후 지속적으로 ICJ 제소를 거론해왔다. ICJ 제소는 일본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초강수 카드다. 한국이 청구권협정상 분쟁 해결 절차인 외교 협의→중재위 구성→제3국 중재위 구성을 모두 거절했기 때문에 ICJ에서 시비를 가릴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일본 기업의 피해가 현실화하는 것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게 그동안 아베 총리의 일관된 입장이었다”며 “양국이 정치적 타협을 할 여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우려했다.

김형호 기자/도쿄=김동욱 특파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