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국내 외국인직접투자(FDI)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절반가량으로 줄었다. 국내 기업의 ‘탈(脫)한국’ 현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외국인투자마저 급감하자 “한국이 투자 불모지로 변해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 상반기 FDI(도착 기준)가 전년 동기 대비 45.2% 감소한 56억1000만달러를 기록했다고 11일 발표했다. 신고 기준으로는 98억7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7.3% 줄었다.
미·중 무역분쟁 등의 여파로 중국의 투자가 전년 동기보다 90% 급감했다. 미국(65.9%) 일본(51.2%) 유럽연합(12.8%) 등 주요 국가에서 한국에 대한 투자를 줄였다. 다만 신고 기준으론 미국의 FDI가 소폭(3.1%) 늘었다.
산업부 관계자는 “작년 상반기 FDI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던 기저효과와 함께 글로벌 경기둔화에 따른 투자 위축이 주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각종 규제와 높은 인건비, 강성노조 등으로 한국이 투자처로서 매력을 잃어가는 게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기업들의 탈한국 러시도 이를 뒷받침한다. 올해 1분기 국내 기업 등의 해외직접투자액(ODI)은 141억1000만달러로 지난해 1분기보다 44.9% 늘었다. 분기 기준으로는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81년 4분기 이후 38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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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법인세율·강성노조…외국인 "한국 투자 더 이상 매력없다"
“한국은 매력적인 투자처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3월 청와대에서 열린 ‘외국인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한 말이다. 당시 행사 참석자의 상당수는 고개를 갸웃했다고 한다. 패트릭 윤 비자인터내셔날 아시아퍼시픽코리아 사장은 “한국은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면서도 “한국의 규제가 글로벌 기준과 많이 달라 어려움이 많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4차 산업혁명을 가로막는 낡은 규제, 강성노조, 노동시장의 경직성 등으로 인해 투자 매력도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국인직접투자 45% 급감
11일 발표된 ‘2019년 상반기 외국인직접투자(FDI) 동향’을 보면 올 상반기 FDI(도착 기준)는 56억1000만달러로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45.2% 감소했다. 업종별로 보면 제조업 분야 FDI는 13억3300만달러로, 지난해 상반기(53억3900만달러)와 비교해 75% 줄었다. 부품소재(39.7%) 서비스업(27.5%)도 줄줄이 감소세를 보였다. 국가별로도 모두 줄었다. 중국은 전년 동기 대비 90%, 미국은 65.9%, 일본은 51.2%, 유럽연합은 12.8% 감소했다.
반면 올해 1분기 국내 기업의 해외직접투자(ODI)는 전년 동기 대비 44.9% 늘어난 141억1000만달러로,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81년 4분기 이후 38년 만의 최고치(분기 기준)였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외국인직접투자는 감소하는 반면 해외직접투자가 늘어난다는 건 각종 규제와 높은 인건비 등으로 인해 한국이 투자처로서 매력도를 잃어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기저효과와 글로벌 경기둔화가 외국인직접투자 감소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둥지가 있어야 새가 날아들 듯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갖춰져야 외국 기업들도 한국을 투자처로 택한다”며 “FDI가 줄었다는 것은 한국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부터 갖춰야”
국내외 기업이 호소하는 가장 큰 애로사항은 주 52시간 근로제, 자유로운 경영활동을 옥죄는 각종 환경·노동 관련 규제 등이다. 세계 3위 자동차부품업체인 독일 콘티넨탈그룹의 자회사 콘티테크플루이드는 4년 넘게 검토했던 충남 천안시 공장 투자를 지난해 최종 포기했다. 1900만달러를 투자해 천안 전주 양산에 흩어진 생산설비를 천안으로 모은다는 계획이었지만 본사의 사업성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중국행을 택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여론에 따라 기업 규제가 오락가락하는 불확실성을 본사가 크게 우려했다”고 전했다. LG화학이 새만금산업단지에 전기자동차 배터리용 리튬 국산화 제조시설을 지으려던 계획도 최근 전라북도가 환경문제로 제동을 걸면서 틀어졌다.
상대적으로 높은 법인세율도 기업들에는 부담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25%)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여덟 번째로 높다. 올해부터는 외국인투자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면 등 세제지원 혜택도 사라졌다.
2년 새 30% 가까이 최저임금이 오르는 등 인건비 부담도 투자 매력도가 떨어지는 원인으로 꼽힌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 성장에 따른 인건비 상승은 불가피하지만 정부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주도하는 것은 기업들에 ‘예측가능성이 떨어지는 나라’라는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올해 ‘FDI 200억달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첨단 부품·소재, 신산업 분야에서 기술력 있는 외국 기업을 집중 유치한다는 방침이다. 현금지원 등 각종 혜택도 확대할 계획이다. 조 교수는 “법인세율 인하, 규제 완화 등을 통해 국내 경영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