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전기요금 올린다

입력 2019-07-01 17:44
수정 2020-11-13 16:15

정부와 한국전력이 내년 하반기부터 주택용 전기요금에 적용하는 ‘필수사용량 보장공제(필수공제)’를 폐지 또는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필수공제는 전기 사용량이 월 200㎾h 이하인 저소비층에 월 4000원 한도로 요금을 깎아주는 제도다. 작년 기준으로 958만 가구(전체 가구의 49%)가 혜택을 봤으며 총 할인금액은 3964억원이다. 이 제도를 폐지 또는 축소하기로 한 것은 이달부터 시행되는 7~8월 전기요금 할인(누진제 개편)에 따른 한전의 손실을 보전해 주려는 취지다.

한전은 1일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 관련 사항을 공시하면서 내년 하반기 전기요금 인상 계획을 밝혔다. 주요 공시 내용은 △필수공제 폐지·수정 △누진제 폐지 또는 국민이 직접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누진제 개편 △원가 이하의 전력 요금체계를 현실에 맞도록 개편하는 것 등이다. 한전은 “이런 내용이 포함된 전기요금 개편안을 오는 11월 말까지 마련하고 내년 6월까지 정부 인가를 받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관계자는 “한전이 필수공제제도의 합리적 개선안 등을 마련해 인가를 신청하면 관련법과 절차에 따라 조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총선 후 주택용 전기요금 인상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누진제 완화'로 3천억 부담 한전…"전기료 인상안 내년 상반기 확정"

한국전력공사가 전력 저소비층에 제공하고 있는 ‘필수사용량 보장공제(필수공제)’ 혜택을 손보겠다고 나선 것은 누적 적자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한전은 올 1분기에만 6299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그런데도 정부 ‘압박’에 못 이겨 주택용 전기요금을 매년 7, 8월에 깎아주기로 결정했다. 누진제를 개편해 누진 1단계 상한을 100㎾h, 2단계 구간을 50㎾h 완화하는 내용이다. 매년 1541만~1629만 가구를 대상으로 전기요금을 월평균 9486~1만142원씩 낮춰주되 그 비용(2536억~2847억원)을 한전이 떠안는 구조다.

한전은 필수공제 폐지 또는 축소를 포함한 전기요금 체계 개편안을 마련해 내년 6월 말까지 정부에 인가를 신청한다는 계획이다. 내년 4월 총선 이후 전기요금 인상 논의가 본격화할 것이란 의미다.

내년 상반기까지 요금체계 개편

한전은 1일 공시한 ‘주택용 누진제 및 전기요금체계 개편 관련 사항’에서 “지속가능한 요금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제도의 합리적 개선이 포함된 전기요금 개편 방안을 내년 상반기까지 내놓겠다”고 밝혔다. 정부와도 사전 조율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필수공제 할인을 받은 건 총 958만 가구다. 할인액은 총 3964억원이었다. 한전은 이 혜택을 폐지 또는 축소해 누진제 개편에 따른 손실을 메운다는 구상이다. 또 계절·시간별 요금제 도입을 추진하는 한편 전기요금의 이용자 부담 원칙을 분명히 해 원가 이하의 전력 요금체계를 현실에 맞게 개편한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한전 공시의 골자는 대부분 자사 재무 부담을 완화하는 내용이다.

한전은 이 같은 전기요금 개편안을 오는 11월 30일까지 마련하고 내년 6월 30일까지 정부 인가를 받을 계획이다. 이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 측은 “한전이 필수공제의 합리적 개선 등을 포함한 개편안을 마련해 인가를 신청하면 관련 법령 및 절차에 따라 조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전이 이처럼 전기요금 개편안을 들고나온 까닭은 “재정을 투입해 누진제 손실을 보전해주겠다”는 정부 약속을 믿기 어렵다는 현실에서다. 정부는 지난해 폭염 때 냉방요금을 한시 인하한 뒤 한전과 손실을 분담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실제 예산에 반영하지 못했다. 한전이 3600억원의 비용을 대부분 부담했다. 강승진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한전으로선 두 번 속을 수는 없으니 제도를 바꿔 손실 보전 방안을 못 박으려는 것”이라고 했다.

“전기 적게 쓴다고 저소득층 아냐”

한전이 필수공제 폐지 또는 축소를 추진하는 데는 ‘전력 저소비층이 곧 저소득층’이란 전제가 유명무실해졌다는 판단도 한몫했다. 취약계층 보호라는 당초 취지와 달리 고소득 1인 가구 등이 더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전은 지난해 필수공제 혜택을 본 가구 중 2.3%(22만 가구)만이 사회복지시설로 인정된 주택, 생명유지장치를 사용하는 가구 등 취약계층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나머지는 단순히 전기를 적게 쓸 뿐 실제 저소득층인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한전은 가구별 전기 사용량과 소득 간 상관관계를 확인하는 정밀 실태조사를 조만간 벌이기로 했다. 필수공제 혜택 중 절반만 축소해도 한전은 매년 약 2000억원을 확보할 수 있다.

한전은 별도로 전기요금 할인 제도를 전반적으로 손보는 방안도 추진한다. 한전 이사회는 “전기요금과 에너지 복지를 분리하고 복지는 요금체계 밖에서 별도로 시행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내년 총선 이후 논란 커질 듯

산업부는 이날 전기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누진제 개편안을 인가했다. 올해부터 매년 7, 8월 누진 1, 2단계 구간을 완화해 1500만 가구 이상에 1만원 안팎의 요금을 깎아주는 방안이 최종 확정됐지만 ‘조삼모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적자폭이 커지는 한전의 재무 부담을 낮추기 위해선 어떤 식으로든 요금 개편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한전 비상임이사들은 최근 열린 회의에서 “원가 이하의 전력요금체계를 현실에 맞게 개편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이 ‘내년 6월 말’까지 전기요금 제도 개편안을 확정하겠다고 밝힌 부분도 논란이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당분간 한전이 비용 부담을 떠안고 가다가 총선 이후 소비자에게 전가하려는 의도 아니냐”고 했다.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전기 사용량이 월 200h 이하인 소비자에게 월 4000원 한도로 요금을 깎아주는 제도. 지난해 기준 958만 가구가 3964억원의 할인 혜택을 받았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