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사진)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보를 선정할 때 경영 성공 경험과 그룹 내 시너지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2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보를 결정할 때는 인수가격 등 정량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해당 기업이 아시아나항공을 잘 키울 수 있을지에 대한 정성적 요소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핵심적인 정성 평가 항목으로는 △경영 성공 경험이 있는지 △다른 계열사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인수 후보 기업이 보유한 산업 노하우를 항공산업과 연계할 수 있는지 등을 꼽았다.
시장에서는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보로 한화, SK, CJ, 애경그룹 등이 거론되고 있다. 아직 인수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곳은 없다. 이 회장은 “라이선스산업인 항공업은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매각이 안 될 확률은 극히 낮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어 “조종사와 정비인력 등이 대거 이직하면 기업 자체가 흔들릴 우려가 있다”며 “아시아나항공의 인위적인 인력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시아나 정상화' 선봉에 선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조종사·정비인력 이직하면 회사 흔들려…인력 구조조정 안할 것"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인터뷰하는 동안 “힘들어 죽겠다”는 표현을 여러 번 썼다. 2017년 9월 취임한 이 회장은 지난해 금호타이어 매각과 STX조선의 구조조정을 마무리했고, GM의 한국 시장 철수도 막았다. 지난달엔 현대중공업지주와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위한 본계약을 맺었고, 이달 들어 아시아나항공 매각도 이끌어냈다. 전임 산은 회장들이 10여 년 동안 풀지 못한 숙제를 이 회장은 불과 2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해결한 것이다.
단기간에 많은 일을 처리한 만큼 이 회장의 인터뷰도 여러 기업을 넘나들었다. 아시아나항공에 대해선 “매각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고 했고, 민영화에 반대하는 대우조선 노조를 향해선 “지금 기회를 놓치면 수천 개의 일자리가 없어질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보로 여러 기업이 거론되는데요.
“특정 기업들이 후보로 거론되고, 일부는 참여하지 않는다고 손사래를 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일절 관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관심을 가져봐야 소용도 없고요. 매각 과정이 좀 더 진행되면 참여할 기업들이 충분히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아시아나항공은 매력적인 매물이거든요. 매각이 실패할 확률은 극히 낮다고 봅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시아나항공이 흔히 대한항공에 비해 열세고, 저비용항공사(LCC)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항공산업은 라이선스산업입니다. 라이선스 가치만 잘 활용해도 승산이 있습니다. 채권단 지원으로 재무구조는 정상화되는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적자노선 등을 정리하면 영업도 곧 좋아질 겁니다. 영업과 재무구조가 개선되면 자연스럽게 서비스도 좋아지고 고객도 늘어나는 ‘선순환’이 일어날 것으로 봅니다. 좋아지지 않을 이유가 없는 거죠.”
▷인수 기업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있습니까.
“아직까지 결정된 건 없습니다. 언급하는 것도 시기상조입니다. 다만 인수가격과 함께 어떤 기업이 아시아나항공을 잘 키울 수 있을지도 핵심적인 고려 요소가 될 것입니다. 일단 ‘먹튀’는 안 됩니다. 아시아나항공은 대한민국의 중요 자산입니다. 대주주가 아닌, 기업을 지키기 위해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려는 겁니다. 그렇다면 제시한 인수가격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자본력이 있는 기업이어야 되겠죠. 경영에서 성공한 경험도 있어야 하고, 항공업과 연계할 수 있는 그룹 시너지 효과도 감안해야죠. 입찰공고를 거쳐 우선협상대상자까지 선정되는 데는 일러야 6개월은 걸릴 것입니다.”
▷당초 예상보다 많은 자금이 투입됐습니다.
“5000억원 규모의 영구채와 함께 한도대출(크레디트 라인) 8000억원, 보증한도(스탠바이 L/C) 3000억원 등 총 1조6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넉넉한 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우선 채권자들에게 이 회사가 재무적으로 안정됐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두 번째는 조종사와 안전관리를 맡고 있는 정비인력 등 핵심 인력의 동요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지금도 경쟁사와 15~20% 정도 임금 차이가 있는데, (자금 부족으로) 이들 인력까지 대거 이직하면 아시아나항공은 큰일납니다. 우리가 이 회사를 회생시킬 테니 동요하지 말라는 신호를 주기 위해 충분한 자금을 투입했습니다.”
▷인력 구조조정은 없다는 뜻입니까.
“아시아나항공은 인력 구조조정이 전혀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핵심 인력들이 이직할까봐 걱정입니다. 이들이 회사를 떠나면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신뢰는 더욱 떨어지게 됩니다. 새 주인을 찾기 전까지 재무구조 안정뿐 아니라 핵심 인력의 이탈을 막기 위해 애쓰려고 합니다. 아시아나항공에도 이런 점을 충분히 전달했습니다.”
▷대우조선 노조도 구조조정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노조에 고용 안정을 위해 충분히 노력하겠다고 수차례 얘기했습니다. 그럼에도 노조는 매각 계획부터 철회하라고 주장합니다. 이래서는 대화가 이뤄질 수 없습니다. 법률적으로는 산은이 노조와 대화할 필요는 없어요. 노조가 매각을 방해하면 업무방해죠. 하지만 노조와 계속 대화할 방침입니다. 노조도 산은을 믿어야 합니다. 지역사회와 정치인도 산은을 믿고 대화하면 충분히 타협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고용안정을 100% 보장한다는 뜻인가요.
“총량 기준 고용 안정은 얼마든지 약속할 수 있습니다. 다만 문서로 몇 년 동안 고용을 보장하겠다고 명시하는 건 또 다른 얘기입니다. 지금 단계에선 인력 구조조정이 필요 없는 건 분명합니다. 다만 몇 년 뒤 상황이 급격히 나빠지면 어떻게 합니까. 그때는 구조조정이 필요할 수 있죠. 이런 것까지 못하게 한다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현대상선은 자구 노력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통상 산은이 대주주가 되면 기업들은 환호합니다. 산은 밑으로 들어오면 다들 안 나가려고 하죠. 유일한 국적선사인 현대상선은 더욱 그렇습니다. 현대상선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럴해저드가 심각했습니다. 해외 초호화 파티나 골프 접대 등 각종 경비 관련 소문이 많이 있었죠. 작년에 불시감사를 나가서 이런 사례를 적발하기도 했습니다. 현대상선엔 2023년까지 5조8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할 예정입니다. 다만 중요한 건 자본 투자가 아니라 자구 노력입니다.”
▷이른 시일 내 정상화가 가능할까요.
“작년에 현대상선 경영진으로부터 실적 보고를 받았는데 과장된 수치를 가져오더군요. 예를 들어 선대(수송능력)가 두 배 늘어나면 매출이 두 배 증가한다고 안일하게 가정한 수치로 실적을 만들더군요. 사장을 비롯한 임원들을 크게 나무랐습니다. 지금은 현대상선으로부터 1주일 단위로 노선별 실적 보고를 받습니다. 한 달이 지나도 개선되지 않으면 경고하고 3개월이 지나도 변화가 없으면 퇴출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습니다.”
▷대우건설의 매각 시점은 언제일까요.
“작년에 호반건설에 매각하려다 실패했죠. 국내외를 통틀어 후보자로 나선 유일한 기업이 호반건설이었는데…. 지금 상황에서 누구한테 팔 수 있을까요? 차분히 정상화시키면서 기업 가치를 키워 매각하려고 합니다. 남북한 경제협력이 활성화되면 대우건설의 가치가 더욱 올라갈 것입니다. 당초 매각에 실패했던 가격(1조6000억원)의 최소 두 배 이상은 받아낼 계획입니다.”
■10년간 해결 못한 구조조정 성공시킨 비결?
"최악의 결정은 無행동…리더는 기득권 반대와 맞서야"
“리더로서 최악의 선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결정·무행동’입니다. 기득권의 반대에도 리더는 책임지고, 부딪치고, 결정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취임 후 잇따라 기업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이끈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산업연구원 출신인 이 회장은 대표적인 구조조정 전문가로 손꼽힌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각각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과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내면서 기업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다. 그가 산은 회장에 취임한 건 2017년 9월. 당시 금호타이어, STX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현대상선, 대우건설, KDB생명 등 산은 관리를 받는 대기업의 구조조정은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산은은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고도 경영 정상화에 실패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었다.
그는 임직원들에게 출자회사를 대상으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지시했다. 그는 “모든 이해관계를 떠나 구조조정이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는지, 해당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는지만 감안하라”며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고 주문했다. 산은의 구조조정은 노조 등 이해당사자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민영화에 반대하는 대우조선 노조는 산은 본점 앞에서 연일 시위를 벌였다. 일부 노조원은 출근하는 이 회장의 차량 밑에 들어가 버티는 등 과격 시위를 하기도 했다. 그는 “왜 이런 봉변을 당해야 하는지 후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이 회장은 현시점이 한국 자본주의의 운명을 좌우할 기로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자본주의 역사가 한국보다 매우 긴데도 불구하고 잇단 첨단 기업들이 새롭게 등장하는 등 굉장히 역동적인 젊은 경제”라고 했다. 반면 한국은 벌써부터 ‘노쇠한 자본주의’로 접어들었다는 것이 이 회장의 판단이다. 그는 “산은은 전통산업의 구조조정뿐 아니라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신성장 기업을 키우는 투자은행(IB)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민/임현우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