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18일 당정협의회를 열어 미세먼지 마스크 250만 개를 저소득층과 야외 근로자에게 나눠주는 내용 등이 포함된 추가경정예산안을 오는 25일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당정은 △미세먼지 대책 △재난 피해 복구 △선제 경기 대응 등을 추경안에 담기로 했다.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올해 35만 대 이상의 노후 경유차에 조기 폐차 지원금을 주고 사회복지시설과 지하철 등 다중 이용시설에 공기청정기를 설치한다. 강원 고성 등 5개 특별재난지역에 희망근로 2000명 이상을 추가로 늘리고 소방헬기 등 산불 진화 예산도 반영한다. 도로 하수도 하천 등 노후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예산도 들어갔다. 자유한국당이 6조원대로 예상되는 추경을 ‘총선용 퍼주기’라고 반발하고 있어 국회 통과에 진통이 예상된다.
무늬만 '미세먼지 추경'…총선 앞두고 SOC 등 '선심성 재정살포'
올해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불을 지핀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린 지난달 6일 “필요하다면 추경을 긴급 편성해서라도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 역량을 집중하라”는 지시에 기획재정부는 곧바로 ‘추경 모드’에 들어갔다.
미세먼지 대책에서 출발한 추경은 한 달여 동안 변신을 거듭했다. 강원도 산불 관련 대응책이 추가되면서 ‘국민안전 추경’으로 확대되더니 18일 공개된 추경 관련 당정 협의에선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일자리 사업 지원, 소상공인 긴급자금 공급 등 경기부양 예산이 덕지덕지 붙었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겨냥한 선심성 추경”이란 비판이 야당에서 나오는 배경이다.
땜질식 대책이 대부분
당정이 이날 추경에 포함하기로 한 미세먼지 저감 사업은 근본 처방이라기보단 ‘땜질식’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미세먼지 마스크를 저소득층과 영세사업장 야외 근로자 250만 명 이상에게 지급하는 게 대표적이다. 미세먼지를 저감시키는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한번 예산에 포함되면 매년 ‘나랏돈’을 투입해야 할 가능성이 커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마스크 지급이 매년 계속되는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만약 추경에 (마스크 지급 예산이) 반영된다면 내년 예산안을 짤 때도 추가할지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노후 경유차 조기폐차 지원 대상 확대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올해 예산으로는 15만 대에만 지원금을 줄 수 있는데, 추경을 통해 20만 대 이상을 추가해 총 35만 대에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매년 노후 경유차 폐차 지원금을 늘리고 있지만 2015년 862만 대였던 경유차 등록대수는 지난해 993만 대로 15% 늘었다. 노후 경유차 운전자들이 정부 지원금을 받아 다시 경유차를 구매하는 사례가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2017년과 지난해 추경에도 총 1358억3000만원 규모의 미세먼지 관련 사업이 들어갔다. 국회예산정책처와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2017~2018년 추경의 미세먼지 사업 중 실제 쓰인 금액은 622억5000만원으로 집행률이 45.8%에 그쳤다.
2017년에는 경유차 등의 엔진을 액화석유가스(LPG) 엔진으로 개조하는 사업과 어린이 통학차량을 LPG차로 전환하는 사업을 진행했으나 집행률은 각각 22.4%, 25.8%에 그쳤다. 지난해 경로당과 어린이집에 공기청정기를 보급하는 사업도 집행률이 각각 27.4%, 65.0%에 머물렀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추경에 들어가는 사업은 기존 예산에 포함되지 못한, 재정 대비 효과가 상대적으로 낮은 사업들”이라며 “이런 식의 재정 낭비는 미래 세대에 부담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 “총선용 추경 분리해 처리”
당정이 내년 4월 총선을 겨냥해 ‘돈 풀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른바 ‘선심성 예산’으로 꼽히는 도로 철도 하수도 등 SOC에 ‘안전투자’란 명목으로 예산이 대거 투입돼서다. 야당은 중소기업·소상공인에게 긴급 자금을 지원하는 것에도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월 총 사업 규모가 24조1000억원에 달하는 23개 지역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올해 2월부터 지난 17일까지 17개 시·도로부터 총 134조원 규모의 410개 지역 현안 사업을 접수했고, 새해 예산을 짤 때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각 지방자치단체에 설명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홍 부총리를 만나 “재해 추경과 총선용 경기부양 추경은 구분해서 제출해달라”며 “총선용 추경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나 원내대표는 “국민 호주머니를 ATM(현금자동입출금기)으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4월밖에 안 됐는데 하반기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 그때는 어떻게 대응할지 걱정된다”고 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필요하지 않은 SOC 등에 돈을 투입하는 것은 재정 부담 등 역효과만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태훈/김소현/서민준/성수영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