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주세법 개정 머뭇대다…수입맥주 3년새 두 배

입력 2019-03-17 18:03
수정 2020-11-24 19:24

지난해 맥주 수입액이 3억달러를 넘어서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수입 맥주 선호 현상과 수입 맥주에 유리한 주세(酒稅) 구조가 맞물린 결과다. 17일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된 맥주는 2017년(2억6309만달러)보다 17.7% 늘어난 3억968만달러어치로 집계됐다.

맥주 수입은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10년 전인 2008년(3937만달러)과 비교하면 8배 가까이로 늘었으며, 3년 만에 두 배 이상 급증했다. 그 결과 맥주 관련 무역수지는 2008년 391만달러 흑자에서 지난해 1억5524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수입 맥주를 지역별로 보면 일본산이 7830만달러어치로 1위였으며 중국(4091만달러) 벨기에(3618만달러) 미국(3457만달러) 독일(2459만달러) 등의 순이었다.

수입 맥주 돌풍 현상이 지속되는 가장 큰 이유로 주류업계는 주세를 꼽고 있다. 현 주세는 출고가격에 세율을 곱하는 종가세(從價稅) 방식이다. 국산 맥주 출고가는 제조원가에 판매비, 이윤까지 포함하는 데 비해 수입 맥주는 ‘수입 신고가’에만 세율을 매겨 국산보다 판매가격이 더 싸진다. 지난해 국회는 맥주 종가세를 종량세로 바꾸는 주세법 개정안을 내놨으나 처리하지 못했다.



수입맥주에 유리한 酒稅…오비, 국내 생산하던 버드와이저 美서 수입

“광주공장에서 생산하는 버드와이저와 호가든의 물량을 지난해 수입물량으로 많이 돌렸습니다.”

17일 오비맥주 관계자는 지난해 미국산 맥주 수입 급증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오비맥주는 버드와이저 등 일부 해외 맥주를 1988년부터 해당 회사로부터 위탁받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이 맥주들을 국내에서 생산하는 대신 수입물량으로 상당 부분 대체했다고 설명했다.

오비맥주가 버드와이저 수입물량을 확대하면서 지난해 미국으로부터 맥주 수입액은 급증했다. 2017년 1741만달러였던 미국 맥주 수입액이 지난해 3457만달러로 두 배나 뛰었다.



오비맥주 광주공장 가동률은 60%대

오비맥주는 2016년부터 수입맥주 인기가 높아지고 국내 공장의 운영비 등이 증가하면서 수입물량을 늘리기 시작했다. 지난해엔 버드와이저 국내 소비의 90%까지를 수입물량으로 대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수입 과정에서 운송이 어려운 병맥주는 여전히 광주공장에서 생산하지만, 캔맥주는 지난해 수입을 크게 늘렸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오비맥주의 광주공장 가동률은 지난해 60%대 수준으로 낮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이천과 충북 청주 등 3개 공장 가운데 가동률이 가장 낮다. 오비맥주 광주공장엔 300명 안팎이 근무하고 있다.

오비맥주는 지난해 11월 자발적으로 광주공장을 포함해 3개 공장의 가동을 1주일간 중단하기도 했다. 대외적으로는 임직원의 휴가 장려를 위해서였지만, 1년 내내 상시 생산체제를 갖추는 주류업계 특성상 이례적인 일이었다. 주류업계에선 당시 “일감이 줄고 가동률이 떨어져 인건비와 운영비 등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 나왔다.

“현 주류세제에선 수입하는 게 더 유리”

오비맥주가 버드와이저, 호가든 등을 국내에서 생산하지 않고 수입으로 돌린 건 현행 주세(酒稅) 체계가 결정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소비자 사이에서 버드와이저, 호가든의 생산 라벨을 보고 ‘오드와이저(오비맥주+버드와이저)’ ‘오가든(오비맥주+호가든)’ 등의 말이 나온 탓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주세 때문”이라며 “수입하는 게 훨씬 가격이 싸진다”고 말했다.

현 주세는 제조원가와 수입신고가 같은 출고가에 세율을 곱하는 종가세(從價稅) 방식이다. 맥주의 경우 출고가에 주세(72%)가 적용되고, 주세의 30%가 교육세로 붙는다. 여기에 10% 부가가치세가 다시 붙는다. 예컨대 맥주 출고가가 1000원이면 주세는 720원, 교육세 216원, 부가가치세 194원이 더해져 2130원이 되는 식이다.

문제는 과세 기준이 되는 출고가가 국산맥주와 수입맥주가 다르다는 점이다. 국산 맥주의 경우 과세표준 가격은 제조원가와 판매관리비, 이윤 등이 더해져 정해진다. 반면 수입맥주는 수입신고가와 관세(0~30%)만 붙은 가격이 과세표준이 된다.

예컨대 국산 맥주의 제조원가와 수입 맥주의 수입신고가가 한 캔에 400원이라면, 국산 맥주는 여기에 판매관리비와 이윤 180원을 더해 과세표준은 580원이 된다. 국산 맥주는 580원을 기준으로 주세 교육세 부가가치세가 매겨져 세후 가격은 1235.2원이 된다. 반면 수입 맥주는 400원을 기준으로 매겨지기 때문에 세후에도 851.8원의 가격이 나온다.

수입맥주의 경우 수입업체가 제조원가를 신고하면 되는데, 이 과정에서 신고액수를 낮추는 사례도 많다. ‘수입맥주 4캔에 1만원’이 나올 수 있는 배경이다. 이를 토대로 수입맥주는 편의점을 통한 가정용 시장에선 이미 50%가량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수입맥주 공세에 롯데주류와 하이트진로의 지난해 공장가동률도 각각 35%, 38%로 추락했다. 한때 80%대를 유지하던 공장가동률이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현 주세 구조에선 태평양을 건너오는 수입맥주가 소비자한테는 국산맥주보다 훨씬 싸다”며 “국내 맥주회사들도 국산 맥주를 생산하는 것보다 수입하는 쪽이 훨씬 이득일 것”이라고 말했다.

■종가세·종량세

종가세는 물건 가격의 일정 비율을 세금으로 매긴다. 종량세는 물건의 수량에 일괄 과세한다. 대표적으로 인지세·유류 특별소비세는 종량세다. 주세와 부가가치세는 종가세다. 맥주가 종가세이다 보니 과세표준이 되는 수입 신고가격을 낮추면 수입맥주가 국산맥주보다 더 싸지는 일이 나타난다. 맥주에 한해 종가세 방식을 종량세로 전환하자는 논의가 국회와 정부에서 이뤄지고 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