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北 외교 새 지평 여는 트럼프

입력 2019-02-11 18:08
수정 2021-07-21 14:5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2차 정상회담 발표에 앞서 “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북한과 큰 전쟁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약간의 허풍 섞인 태도로 말했다.

북한과의 관계를 모욕과 협박으로 시작한 대통령이 한 말치고는 이상하다. 김정은과 트럼프는 처음에 서로를 ‘늙다리’ ‘꼬마 로켓맨’으로 비난했다. 하지만 트럼프 정권은 실제 북한과 진정성 있는 외교 교섭에 나서고 있다. 이 정권은 새로운 접근 방식을 취했으며 그런 방식은 먼 미래의 양국 관계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새 정책이 어떤 것인지는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최근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뚜렷이 드러났다. 비건 대표는 북한의 ‘최종적이며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라는 정권의 목표를 거듭 강조했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일정한 기준을 세웠다. 스스로 이걸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혹독한 비판을 감내하겠다고 자청한 셈이다.

트럼프, 北核에 일정 기준 유지

이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에 취한 정책보다 훨씬 나은 접근 방식이다. 오바마 정부는 이란에 핵개발 계획 중단을 요구하기는커녕 그와 거리가 먼 합의에 그쳤다. 트럼프는 북한과의 대화에 앞서 이란 합의에서 이탈함으로써 미·북 정상회담에서 더 엄격한 조건을 내세우겠다는 결의를 보였다. 트럼프 비판자들은 미 정부가 비핵화가 아닌, 피상적 변화만으로 북한과 타협할 것이라고 깎아내리지만 트럼프 정부의 행동이나 통일된 메시지는 종전과 다른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비건은 강연을 통해 미국 대북정책의 목표가 크지만 동시에 제한돼 있다는 점도 공개했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북한의 변혁이 아니라 북한의 핵 위협을 배제하는 것이다. 미국 외교는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

김정은이 핵무기를 개발한 것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트럼프 정권이 국내 변혁을 압박하면 그의 불안감을 부추길 뿐이다. 김정은에게 그것은 체제 전환 요구나 마찬가지다. 강의 후 이어진 질의응답은 더 유화적인 톤이었다. 비건은 “우리는 북한에 쳐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북한 체제를 전복시킬 생각도 없다”고 했다. 북한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정책도, 외교도 될 수 없다는 취지다.

美 수중엔 '채찍'도 준비해

비건은 미·북 간 외교가 트럼프와 김정은이 개인적인 약속을 주고받는 것으로 성립되는 톱다운 방식이라는 점도 설명했다. 통상 하위 실무자 등이 세부사항 조율을 끝낸 다음 정치 지도자들이 만나는 것과 다르다. 트럼프의 접근 방식은 21세기보다 19세기 외교정책에 가깝다. 트럼프는 역사엔 ‘올바른 편’이 있다는 오바마의 관점을 버렸다.

마지막으로 비건은 이 노력이 결실을 보지 못할 가능성도 솔직 담백하게 밝혔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실패는 용서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면 실패했을 땐 어떻게 될까? 비건은 “외교 프로세스가 실패했을 경우의 비상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고, 그것도 물론 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를 하면 ‘북한 사람들의 밝은 미래’라는 당근을 얻게 될 것이라고 제시하면서 수중에 늘 채찍도 함께 준비해 두고 있다.

정리=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

이 글은 토드 린드버그 미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칼럼 ‘Trump Is Serious About Diplomacy With North Korea’를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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