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치려는 르노, 벗어나려는 닛산
'닛산(NISSAN)'을 한자로 표현하면 '일산(日産)'이다. 뒤에 '자동차'를 붙이면 닛산자동차, 즉 일본에서 생산된 자동차를 의미한다. 그러니 닛산은 일본 자동차산업의 정체성이 담겨 있는 회사다. 미국에서 자동차를 공부한 하시모토 마쓰지로가 1914년 닷선을 설립한 후 군수물품으로 성장했고 1934년 일본 내 대표 자동차를 표방하며 '닛산'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덕분에 닛산에 대한 일본의 애착은 강하다. 하지만 1998년 무리한 사업 확장과 판매 하락으로 부도 위기에 몰리자 프랑스 국영기업 르노자동차가 대주주로 올라섰다. 이 때 등장한 인물이 일명 '커터 칼(Cutter Knife)'로 불리며 구조조정을 진두지휘 한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동맹체 전 회장이다.
물론 곤 전 회장은 닛산의 구조조정을 진행하며 회생의 불씨를 살려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일본 내에서 반감을 샀던 것도 사실이다. 평생 직장을 생각했던 수많은 사람이 회사를 떠나며 너무하다는 반응도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 회생에 관한 그의 신념은 절대적이다. 지난 2000년 초반 일본에서 카를로스 곤 회장을 만났을 당시 기억은 여전히 뇌리에 남아 있다. 구조조정에 대해 질문을 던지니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닛산은 제 때에 구조조정을 했고 덕분에 다시 미래를 생각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한 동안 각각의 독립체로 지내던 양 사의 합병 얘기가 흘러나온 것은 지난해부터다. 르노와 PSA 기반의 자동차산업을 중심으로 미래 산업 전략을 재편, 독일과 미국 등에 맞서려는 프랑스가 닛산을 삼키면 글로벌 완성차 산업의 주도권 경쟁에서 이들보다 우위에 올라설 가능성을 타진했다. 물론 곤 회장은 반대했지만 르노의 대주주가 프랑스 정부였던 만큼 합병 제안은 거절하기 쉽지 않았다. 이어 곤 회장이 닛산을 합병하려는 의도를 드러내자 일본 정부는 긴급하게 곤 회장을 탈세 혐의로 구속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이후 프랑스와 일본 정부는 각 국 입장에서 빠른 대처를 이어나갔다. 닛산 이사회는 곤 회장의 대표이사 해임 절차를 긴급하게 진행했고, 르노 또한 곤 회장 대신 미쉐린 출신 CEO를 영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사이 양 사의 동맹은 흔들림이 없다는 메시지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현재 르노는 닛산 지분의 43%를 소유한 대주주다. 반대로 닛산의 르노 주식은 15%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둘의 덩치는 닛산이 르노보다 연간 200만대 가량 앞서 있다. 2017년 기준 닛산은 581만대, 르노는 376만대를 판매했다. 닛산으로선 르노의 도움으로 살아났지만 일본의 자존심을 르노 아래에 둘 수 없어 곤 회장 구속을 밀어붙였고, 르노는 CEO만 교체될 뿐 합병 계획은 변함없다고 공포했다. 이른바 닛산(日産)의 '불산화(佛産化)'를 두고 펼쳐지는 양 국의 산업 전쟁이다.
이번 사안은 자동차를 중심에 둔 프랑스와 일본의 산업 대리전이라는 점에서 글로벌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닛산을 내놓지 않으려는 일본과 경제 논리로 이를 가져가려는 프랑스의 전략적 발걸음이 분주하다. 두 나라 모두 '자동차'라는 거대 산업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산업 전쟁인 만큼 양보를 기대하는 것도 쉽지 않다.
-르노와 닛산의 갈등, 자동차 기반의 미래 산업 전쟁
중요한 것은 두 나라의 자동차산업 전쟁에 한국이 본의 아니게 끼어 있다는 사실이다. 르노와 닛산의 해외 수출용 제품을 일부 생산, 공급해주는 곳이 한국의 르노삼성이기 때문이다. 지배 구조 싸움에서 르노-닛산 동맹에 금이 가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이미 두 나라 정부까지 가세한 마당에 결과는 어디로 흘러갈지 예측이 쉽지 않다. 닛산의 북미 수출용 제품을 만들어 공급해주고, 르노의 중대형 세단을 공급하는 르노삼성으로선 양 사의 관계가 원만히 유지되는 게 우선이다.
그러나 르노삼성이 르노와 닛산의 지배 경쟁 사이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닛산이 르노의 지배에서 벗어나도 문제이고, 르노가 닛산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해도 문제다. 닛산으로선 일본 내 생산 확대를 요구할 수 있어서다. 게다가 북미 수출용 닛산 로그의 한국 내 생산은 닛산 이사회에서 해임된 카를로스 곤 전 회장이 결정한 사안이었다. 당장이야 아무 변화가 없겠지만 지배 경쟁 이후도 지금의 상황이 유지되리라 보기 어려운 이유다. 따라서 르노삼성 또한 지금부터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펼쳐두고 전략을 짜야 한다. 생산 차종은 바꿀 수 있어도 생산 물량이 줄어드는 것은 막아야 하니 말이다.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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