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없는리뷰] ‘스윙키즈’, 태극기가 그립다

입력 2018-12-22 08:00
[김영재 기자] 12월19일 ‘스윙키즈’가 개봉했다. 개봉 후 첫 주말 맞이. 이번 주말 극장을 찾을 관객들의 선택으로 ‘스윙키즈’는? 결말 ‘스포’는 없다.★★★☆☆(3/5)한국전쟁 세 번째 전장(戰場) 거제 포로 수용소. 소장은 세계의 시선을 의식, “자유 세계의 춤을 추는 공산주의 포로”를 목표한다. 한편, 로기수(도경수)는 북한군 포로다. 그가 지나간 자리엔 “영웅의 냄새”가 뒤따라온다. 형 로기진이 전선(戰線)에서 활약하는 인민 영웅이라면, 동생 로기수는 수용소를 지키는 “불꽃 남자”다.그 로기수의 눈에 미군 잭슨(자레드 그라임스)의 춤이 들어온다. “저 깜둥이 새끼 저거 또 저런다. 저게 탭 댄스라고 미제 춤인데.” 이에 소련 소년 무용단 출신 로기수에게 세상 만물은 박자로 치환되고, 결국 그는 댄스단 스윙키즈의 “춤 대장”이 되어 팀을 이끈다.이다음에 “탭 댄스 코쟁이들하고” 누가 더 춤을 잘 추는지 겨룰 생각에 로기수의 가슴은 벌써부터 두근댄다. 하지만 거제 수용소는 이념 전쟁의 또 다른 전장. 이념이 봉합돼야 마땅한 어느 크리스마스 저녁에 추는 탭 댄스는 꿈의 실현이자 레퀴엠의 전주(前奏)다. 영화 ‘스윙키즈(감독 강형철)’는 ‘과속스캔들’(약 822만 명) ‘써니’(약 745만 명) ‘타짜-신의 손’(약 401만 명)으로 그간 총 1968만 명을극장에 모은 강형철 감독의 신작이다. 감독을 정의하는 한 줄은 ‘음악 잘 쓰는 감독’. 바꿔 말하면 그는 ‘음악 잘 선곡하는 감독’이다.‘헝가리 무곡 5번’ ‘아마도 그건’ ‘자유시대’ ‘워킹 온 선샤인(Walking on Sunshine)’ 등이 ‘과속스캔들’로 유명세를 탔다. 그 흐름은 ‘써니’까지 이어졌다. 1980년대 고교 친구들의 우정과 현재를 그린 ‘써니’에서 감독은 ‘타임 애프터 타임(Time After Time)’ ‘걸즈 저스트 원 투 해브 펀(Girls Just Want to Have Fun)’ ‘빙글빙글’ ‘보이네’ ‘꿈에’ ‘알수없어’ ‘리얼리티(Reality)’ ‘써니(Sunny)’ 등으로 선곡도 연출의 일부임을 깨닫게 했다.향기로 인한 자극이 특정 기억을 불러 오는 데 도움을 주는 ‘프로스트 효과’처럼, 강형철 감독은 노래로 과거 기억을 재생시키는 일명 ‘써니 효과’를 이뤄낸 것. 덕분에 칠공주의 그때 그 시절은 복고로 소비되기보다 따뜻한 서사로 가슴에 남았다.‘스윙키즈’ 역시 음악이 눈에 띈다. 먼저 가수 엘린 바톤, 밴드 아이슬리 브라더스의 노래가 문을 연다. 리타 김과 정수라의 음악은 ‘스윙키즈’의 허리다. 데이비드 보위와 베니 굿맨은 종반을 책임지고, 마지막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비틀즈의 몫이다.노래가 인상을 남기는 신은 총 세 개. 베니 굿맨의 ‘씽 씽 씽(Sing Sing Sing)’은 극 말미에 댄스단 스윙키즈의 완성을 알리고, 데이비드 보위의 ‘모던 러브(Modern Love)’는 이념을 박차고 뛰어나가는 두 청춘을 대변한다. 작품 전체를 통틀어 제일 인상적인 신이다.반면 ‘모던 러브’와 같은 80년대 곡임에도 ‘환희’는, 댄스단의 결성을 알리는 곡인 동시에 제일 이질적 선곡이다. 로기수가 칼린카를 추는 신, 양판래(박혜수)가 음식을 훔치는 신 등엔 ‘스윙키즈’만의 위트가 있다. 다만, ‘환희’ 신은 그 위트가 너무 강한 게 탈이다.더불어 ‘스윙키즈’는 한국 영화 최초로 비틀즈의 노래가 원곡으로 사용된 작품. 언론시사회에서 감독은 수용소 안에서 가장 행복하고 승리한 사람이 스윙키즈란 사실을 표현하는 데 비틀즈 음악이 잘 맞아 떨어졌다고 했다. 가수 존 레논 사후에 나머지 멤버들이 연주와 보컬을 보탠 ‘프리 애즈 어 버드(Free as a Bird)’로 스윙키즈는 문자 그대로 자유를 얻는다.‘환희’부터 ‘모던 러브’ ‘프리 애즈 어 버드’까지 세 곡은 교집합이 없는 세 가수가 부른 세 사랑 노래다. 그러나 강형철 감독은 가사 속 사랑보단 노래의 심상에 집중한 듯 보인다. 정수라는 “어느 날 그대 내 곁으로 다가와 / 이 마음 설레이게 했어요 어느 날”을 노래하지만 신 안에서 등장인물들은 신나는 노래에 맞춰 그들의 열정을 표현할 뿐이다. 또한, ‘모던 러브’에서 데이비드 보위는 요즘 사랑 혹은 세속적 사회에 속거나 흔들리지 말자고 노래한다. 반면 극중 로기수와 양판래는 이념을 뛰어넘어 몸으로 전진하는 게 전부다.짚고 넘어갈 점은 ‘모던 러브’ 신의 독창성이다. 레오 카락스 감독은 ‘나쁜 피’에서 주인공 알렉스가 외사랑의 괴로움을 전력 질주로 이겨낼 때 ‘모던 러브’를 사용했고, 노아 바움백 감독은 ‘프란시스 하’에서 주인공 프란시스가 새 집을 얻은 기쁨을 안고 뉴욕을 달릴 때 ‘모던 러브’를 사용했다. ‘모던 러브’로 배가되는 역동성은 이미 검증된 사용법인 셈. 감독이 참고한 건 곡의 배치뿐만이 아니다. 웃음, 감동, 눈물이 러닝 타임 동안 잘 버무려진 것과 별개로 ‘스윙키즈’엔 기시감이 있다.탭 댄스의 흥겨움은 오직 작품의 전반부를 설명할 뿐이다. 영화 시작 후 약 1시간께부터 ‘스윙키즈’는 한국전쟁을 전면에 내세운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피비린내 싸움 속에서 댄스단 스윙키즈는 춤으로 그 팍팍한 삶을 떨쳐낸다. 이에 춤은 등장인물이 비루할지라도 그 삶을 이어갈 원동력이 된다. 급작스러운 분위기 반전(反轉)도 좋고, 탭 댄스의 흥겨움과 이념 전쟁의 상흔을 함께 아우르려는 노력도 좋다. 그러나 앞서 관객은 이념의 싸움이 낳은 비극과 그 비극 아래 생이별을 경험한 한 형제를 오래전 만났던 바 있다.“전쟁이란 불행한 상황 속에 행복하고자 하는 춤이란 아주 기쁜 행위가 드라마를 형성시킬 수 있는 아무 멋진 요소”, “전쟁은 초극소수의 행복한 사람과 절대 다수의 불행한 사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최악의 외교”란 감독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스윙키즈’의 기본 골조는 반전(反戰)이다. 그리고 그 반전의 매개는 탭 댄스란 춤이다.골조 위에 발라둔 재료는 좋다. 한 등장인물이 말한다. “너도 댄스에 미쳐보니까 알지 않건? 공산주의건 자본주의건 그거이 다 미제나 소련이 지네 좋자고 만든 거이지 그거이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이념이 사람 위에 군림할 때 세상은 희생을 강요받았다.그러나 앞서 간략히 언급했듯 이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이미 한번 사용했던 논리다. 그리고 반전(反戰)만 놓고 볼 때 그 질은 ‘태극기 휘날리며’ 쪽이 더 낫다.형은 인민의 영웅이지만 그 자신은 이념이 촉수에까지 물들지 않은 얼치기 공산주의자 로기수부터, 전쟁통 가운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소녀 양판래, “헤어진 색시 찾으려고” 유명해지려는 남자 강병삼(오정세), 보기와는 다르게 출중한 춤 실력을 갖춘 중공군 포로 샤오팡(김민호), 피부색 때문에 수용소 모두에게 차별과 멸시를 당하는 전직 브로드웨이 탭 댄서 잭슨까지. 인물 개개의 이야기만 잘 풀어낸다면 ‘스윙키즈’는 과거 언어를 반복하는 안일한 영화 대신 한 발짝 더 나아간 반전 영화가 될 수 있었다.하지만영화는 2시간 내내 로기수에게만 시선을 할애할 뿐이다. 양판래-샤오팡-강병삼 모두는 사랑스러운 병풍에 그친다. 강병삼은 한국전쟁의 비극성을 다루기 위해 잠시 소모될 뿐이고, “동양인들은 탭 댄스 못 출 거 같습니다” 하는 잭슨이 그 동양인에 의해 감화하는 모습은 길은 있지만 무료하기 그지없는 산책길을 걷는 기분을 안긴다.로기수는 왜 “땅바닥 막 때리는 춤 같지도 않은” 미국의 춤 탭 댄스에 빠졌을까. 아무리 얼치기 공산주의자라도 그는 왜 미국 춤을 추는 사실이 주위에 알려지는 걸 곤란해하면서까지 그 춤을 배워야 했을까. “그 소리만 들으면 밤낮으로 심장이 끓어 번지는 거이” 등의 대사는 일개 근거일 뿐이다. 그래서 ‘스윙키즈’는 간단한 질문에도 답변에 곤란함을 느끼는, 기반부터 흔들리는 영화다. 무언가에 마음이 동하는 데 이유는 없겠으나, 관객은 모닥불의 따뜻함을 느낄 뿐 그 온기의 출발점은 모르는 오리무중에 빠진다.물론 큰 개연성엔 문제가 없다. 그러나 ‘반전(反戰)을 다루는 데 꼭 춤을 대입했어야 했나?’란 의문은 지울 수 없다. 다국민으로 구성된 포로 수용소 내 드라마는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흥겨움과 슬픔을 오가는 ‘스윙키즈’의 반전론은 소위 ‘춤생춤사’에 머무른다.‘태극기 휘날리며’는 달랐다. 한국전쟁에 징집 당한 형제. 형은 동생을 제대시키기 위해 갖은 위험을 불사한다. 이 과정에서 형제에, 이념 무용론, 대중의 폐해 등이 아주 자연히 극에 스며든다. 형의 형제애가 명예욕, 이념의 실현욕으로 변질되어가는 과정이 일품이다. 그러나 ‘스윙키즈’엔 ‘춤 영화’와 이념 전쟁의 무리한 병합이 불러온 이질성 등이 종기처럼 솟아 있다.미처 한국전쟁을 예상치 못한 관객은 춤과 전쟁의 냉온탕을 오간다.등장인물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자스트 댄스”라고. 그러나 반전(反戰) 영화 ‘스윙키즈’는 무리한 접합이 화를 부른다. 그간 흥행 불패 신화를 써온 강형철 감독 작품답게 만듦새는 좋다. 대략 세어봐도 웃음이 터지는 곳이 적어도 10곳이 넘는다. 감동을 부르는 신도 있다. 게다가 또래 남녀의 풋풋함까지 소소히 심어 놨다.그럼에도 “자스트 댄스”와 ‘노 워(No War)’를 접합한 노력의 결과물은 과거 반전 영화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못하다.마지막에 관객은 눈물을 펑펑 쏟을 테다. 그러나 그 눈물은 얕은 눈물이다. 작품 전체와 유기적이지 못한 눈물이자, 그들이 춤을 추지 않았더라도 흘릴 수 있는 눈물이다.(사진제공: NEW)bnt뉴스 기사제보 star@bn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