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초반 세계 각지에서 들려온 시장 붕괴의 소리는 단순한 조정이 아니라 한 시대의 끝을 알리는 신호였다. 냉전 이후 안정된 국제 관계 속에 시장은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는 환경을 즐겼다. 미국은 경쟁자가 없었으며 모든 강대국들은 대체로 시장 개방과 투자, 무역장벽 완화를 중시하는 미국 정부 입장을 지지했다.
이런 상황은 이례적 결과를 가져왔다. 1990~2017년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은 23조4000억달러에서 80조1000억달러로 증가했으며 세계 무역액은 그것을 웃도는 속도로 성장했다. 10억 명 이상이 빈곤에서 탈피했다. 화려한 시대는 이제 종말을 고했거나 적어도 휴지기에 들어갔다. 세계는 그 의미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외교 전문가들은 ‘지정학의 부활’에 대해 논의했다. 국제 무대가 전략적 라이벌 간 경쟁에 의해 정해진다는 견해다. 러시아, 중국, 이란은 냉전 후 미국 지배체제의 전복을 꾀하는 ‘수정주의’ 국가다. 그들 국가는 오바마 집권 후반부에 성공을 거뒀다.
국가안보가 美무역정책 뒤집어
대부분의 재계 리더와 투자자는 이런 논의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경제 주도의 세계화가 정착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질서의 도전자인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쇠퇴하는 국가로 바뀌었다. 중국은 경제 급성장과 군사력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성공을 떠받치는 경제 기반에 도전장을 던지지는 못했다. 지정학은 부활할 수도 있지만 시장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자기 만족은 판단 착오였다. 지정학의 부활은 경제 정책의 기본 틀이 바뀐 것을 의미한다. 대국 간 경쟁 시대에 국가 지도자들은 경제 목표보다 지정학적 목표를 우선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중국과 전략적 경쟁을 본격화하면 미국 대통령은 중국을 중요 공급망에서 내보내기 위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지정학적 경쟁의 시대에는 주로 기업보다 정부로 권력 이동이 일어난다. 트럼프 정부는 ‘국가 안보’라는 냉전 시대와 그 이전부터 사용돼 온 법적 기반을 끌어냄으로써 자국의 경제와 무역에 대한 압도적 권력 행사를 정당화한다. 이는 한 세대에 걸친 미국의 무역 정책을 매우 짧은 시간에 뒤집은 것이다.
국가주의 경쟁 본격화될 듯
기업들은 갑자기 발동된 관세 조치로 비생산적 비용이 드는 것에 화가 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규모 추가 관세를 마음대로 부과할 수 있는 정부에 적대감을 나타냈을 때의 결과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지정학적 시대는 작은 정부의 시대와는 같지 않다. 워싱턴의 가장 강력한 권력이 집중되는 것은 국가 안보 영역이며, 트럼프는 그것을 마음껏 활용할 의지가 있는 것 같다. 그가 그것을 현명하게 행사할지 여부는 다른 문제다.
지정학의 중요성이 부활한 것은 트럼프의 잘못이 아니다. 경제 질서의 기반인 미국 권력에 도전장을 내민 것은 러시아, 중국, 이란이며 그에 대한 오바마의 대응은 불행히도 부족했다. 중국이 경제 대국화하는 가운데 미·중 관계 재검토는 불가피했다. 세계는 국가주의적 경쟁이 펼쳐지는 복잡하고 위험한 새로운 시대에 돌입했다. 지금 세계 금융시장에 울려 퍼지는 붕괴의 소리를 통해 그것을 인식할 수 있다.
정리=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
이 글은 월터 러셀 미드 미국 바드대 교수·허드슨연구소 연구원이 ‘Geopolitics Trumps the Markets’이라는 제목으로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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