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화(Electrification) 주도로 산업혁명 재현 야망-저탄소 기술에 지속적인 정부 투자 표명
"연결(Connectivity), 자율주행(Autonomous), 공유(Sharing), 전동화(Electrification)의 궁극적인 목표는 탄소 배출 저감인 만큼 저탄소(Low Carbon) 전략은 영국이 반드시 가야 할 길입니다."
올해 초 영국 런던에서 만난 영국 무역투자청 소속 제이 내글리 자동차산업 담당의 말이다. 그만큼 영국은 향후 자동차산업의 혁신을 신뢰하고, 현재 내연기관 시대를 빨리 벗어나는 게 목표라는 얘기다. 마차산업을 보호하다 자동차부문의 산업 혁신을 놓친 뼈아픈 교훈이 내연기관 탈피 전략을 서두르게 만드는 셈이다.
영국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모빌리티 혁신 정신은 정치 부문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지난 11일(현지 시각) 영국 버밍엄에서 최초로 열린 무공해차 회담(Zero Emission Vehicle, ZEV)에서 혁신적인 친환경 배터리, 친환경차 및 연료 기술 개발에 1억600만 파운드(한화 1,550억원)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크리스 그래일링 교통부 장관, 그레그 클락 산업부 장관, 리암 폭스 통상부 장관도 버밍엄 서밋에 참여해 ‘저탄소 기술’의 세계적 선두 주자이자 친환경 국가로서 영국 역할론을 강조했다. 메이 총리는 또 독일, 미국, 일본, 중국, 스페인, 인도의 선도적인 공급체인 기업을 초청해 자동차산업 라운드테이블 미팅을 열고 정부와 산업계가 협력을 통해 배출가스 없는 모빌리티의 발전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은 '버밍엄 선언'으로 이어졌다. 선언의 첫 번째 서명국은 이탈리아, 프랑스, 덴마크, 아랍에미레이트연합, 포르투갈, 벨라루스, 인도네시아 등이며 더 많은 국가들이 참여를 추진 중이다. 한 마디로 영국이 저탄소 산업을 주도할테니 여러 나라가 동참하라는 의미다.
동시에 테레사 메이 총리는 내연기관 제로(0) 정책도 발표했다. 실현 가능성은 뒤로 하더라도 2040년까지 영국의 모든 자동차에서 나오는 배출가스를 없애겠다고 밝혔다. 현재 운행되는 내연기관이 전동화 등의 친환경차로 완전 대체되는 시점을 향후 12년 정도로 예측한 셈이다. 이미 유럽에서 판매되는 전기차 5대 중 1대가 영국에서 생산되고, 초저공해(Ultra Low Emission Vehicle) 및 수소 기술 분야 혁신 기업에게 상당한 자금을 지원해온 만큼 저탄소 국가로 바꾸는 것은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말이다.
영국은 미래의 산업 전략을 '퓨처 모빌리티 그랜드 챌린지(Future of Mobility Grand Challenge)'로 부른다. 모든 혁신은 모빌리티에서 시작되고, 그에 따라 제조물이 달라지며, 이동 서비스가 제공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고 믿는다. 여기서 나오는 결과물은 막대한 경제적 효과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 현재 저탄소와 관련된 기술 개발 기업의 영국 진출을 적극 독려하는 것도 유럽 내에서 영국을 저탄소 모빌리티의 핵심 클러스터 국가로 육성하기 위한 노력이다.
물론 영국이 이렇듯 일사분란한 정책을 추진하게 된 배경은 익히 알려져 있듯 그 유명한 '영국병'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1960~1970년대 영국 경제의 몰락을 가져온 영국병은 1941년 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베버리지가 작성한 베버리지 보고서에서 시작됐다. 과도한 복지가 근로 의욕을 줄였고, 그 결과 혁신이 나타나지 않자 유럽 내 산업 경쟁력이 떨어져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 자동차 공장의 생산이 줄었고 그에 따라 일자리도 감소했다. 결국 1980년대 극심한 갈등을 겪으며 영국병은 치유됐지만 이 때 얻은 교훈 덕분에 지금의 '모빌리티 산업 혁명'이 시작됐다. 증기기관으로 1차 산업 혁명을 이끌었던 영국이 내연기관에서 쓴 맛을 제대로 경험하자 저탄소 모빌리티로 다시 산업의 주도권을 회복하겠다는 전략이다.
물론 한국도 정부 차원에서 모빌리티 미래 전략은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부처별로 생각이 다르고, 때로는 모빌리티에 대한 산업 이해도가 낮아 엉뚱한 갈등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는 모빌리티를 '서비스' 개념으로만 접근하는 것에 기인한다. 영국이 생각하는 모빌리티 혁명은 '저탄소'라는 확고한 정책적 철학이 배경이지만 한국에서 모빌리티 산업은 승차 공유로만 여긴다는 뜻이다. 이는 모빌리티에 관한 거대한 철학이 없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모빌리티 혁명은 제조와 서비스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근간이 되는 정책적 목표가 명확해야 가능하다. 예를 들어 배출가스를 줄이는 차원인지, 아니면 자동차가 차지한 공간의 일부를 다시 사람에게 되돌려 주는 것인지 말이다. 부처별로 자신들의 단편적인(?) 시각만 담은 모빌리티 전략은 오히려 혼선만 가중시킬 뿐이다. 이런 측면에서 내연기관을 없애 저탄소로 바꾸겠다는 영국의 모빌리티 미래 전략은 충분히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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