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모빌리티에서 '공간의 상품성'이란

입력 2018-06-30 08:00
-달리는 즐거움의 진화는 공간의 편안함

최고 300마력의 내연기관으로 0-100㎞/h 도달 시간 '4초 미만'. 일반적으로 자동차회사들이 제품력 차별화를 위해 내세우는 숫자의 우월성이다. 소비자 또한 동일한 차급일 때 숫자에 일부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여전히 내연기관차의 제원표는 제조사가 소비자에게 제품력을 소개하는 수단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내연기관 외에 전기차라고 예외는 아니다. 회사마다 배터리용량과 전기모터 출력, 그리고 이동에 필요한 에너지 비용을 나타내는 전력소비효율, 다른 말로는 '전비(電費)'를 앞세운다.

그런데 이 같은 제원표 부각이 가능한 근본적 배경에는 운전을 사람이 한다는 전제가 숨어 있다. 그래서 제조사마다 소비자를 잡기 위해 효율 및 성능 등을 제원표에 넣어 장점을 앞세운다. 숫자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제품을 대하는 소비자들의 생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숫자보다 점차 브랜드 영향력이 커지며 제원표 역할도 위축되는 추세지만 그래도 제원표는 여전히 건재하다. 디자인과 브랜드 외에 경쟁 제품 대비 우월성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숫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 이동 서비스 중심의 모빌리티 사회가 되면 '숫자'는 말 그대로 '숫자'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운전 자체를 사람이 하지 않기에 제원표는 살펴볼 필요도 없고, 공유 서비스로 소유 개념이 희석돼 구매력이 떨어질 수 있어서다. 이런 이유로 미래 이동 수단의 '상품성'은 '공간(SPACE)'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운전을 하지 않는다면 자동차의 경우 움직이는 실내 공간과 다름이 없어서다.

그래서 나온 개념이 '공간의 상품성(commercial value of the space)'이다. 이동할 때 사용되는 운송 수단이 얼마나 용도에 적절한가를 의미하는데, 운반되는 대상이 사물이면 그저 넓은 게 유리하겠지만 사람이라면 기본적인 편안함을 너머 감정까지 배려하는 공간이 곧 상품성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우울한 기분을 바꾸기 위해 때로는 이동 공간이 클럽으로 변신해야 하고, 영화 감상실로도 활용돼야 한다. 물론 업무도 가능해야 한다.

따라서 자동차회사들이 추구하는 미래 모빌리티 상품성은 동일한 이동 수단의 용도별 제공이다. 예를 들어 폭스바겐그룹의 미래 이동 수단 '세드릭(SEDRIC)'은 스쿨버스용이 있고, 클럽 분위기를 발산하는 나이트라이프 버전도 있다. 또한 승차 공유 서비스에 활용되는 평범한 이동 수단도 마련돼 있다. 이외에 물건만 나르는 물류용도 있다.

이에 반해 IT 기업들이 추진하는 모빌리티 전략은 기술을 기능에 맞춰 실내가 바뀌는 다용도 모빌리티다. 버전을 나누는 게 아니라 하나의 이동 수단 안에서 여러 버전을 선택하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IT 기업의 경우 전통적인 자동차회사처럼 제조 역량이 부족한 만큼 하드웨어를 바꾸기 쉽지 않아서다. 마치 영화 트랜스포머처럼 외관을 자유자재로 바꾸지는 못해도 실내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창작 개념이 더해지는 셈이다. 컴퓨터 배경화면을 기분에 따라 바꿀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모빌리티를 바라보는 자동차회사와 IT기업의 시각이 다르기에 상품성 향상 추구 방식도 조금 다르다. 제조사(자동차회사)는 시트 배열 및 전환을 고민하지만 IT 기업은 탑승자의 감정을 파악해 주는 게 상품성이다. 그래서 크기와 성능을 표시하는 것 외에 공간의 변신 항목이 상품성이 된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제원표에 표시된 '승차정원'이 '4~8인승'이라는 표시가 나올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인원 자체가 정해진 게 아니라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탑승인원은 수시로 변할 수 있다. 심지어 '4~11인승'이 나올 수도 있다. 이 때 현재 자동차를 분류할 때 적용되는 '탑승인원' 기준은 어떻게 규정될 수 있을까. 제도의 뒷받침이 쉽지 않을 것 같다.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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