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없는리뷰] 유해진에게 멱살 잡힌 ‘레슬러’

입력 2018-05-12 15:00
[김영재 기자] 5월9일 ‘레슬러’가 개봉했다. 개봉 후 첫 주말 맞이. 이번 주말 극장을 찾을 관객들의 선택으로 ‘레슬러’는? 물론, 결말 ‘스포’는 없다.★★☆☆☆(2.7/5)영화 ‘레슬러(감독 김대웅)’는 배우 유해진 생애 두 번째 단독 주연작입니다. 그의 첫 원 톱 영화는 2016년 개봉작 ‘럭키’로, 그는 작품의 OST ‘그 사람들’의 가사처럼 “폭풍처럼 다가”와 세간의 우려를 단번에 일축했던 바 있습니다. 누적 관객수 약 697만 명이란 수치는 그 어떤 톱 배우도 쉽게 경험치 못한 꿈의 수치니까요. 어깨가 으쓱해질 법도 합니다. 하지만 유해진은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그간 ‘공조’ ‘택시운전사’ ‘1987’에 출연해온 그의 행보를 정의할 수 있는 단어는 ‘과시’ 아닌 ‘조화’입니다. 그런 그가 ‘레슬러’를 택했습니다. 레슬링 국가대표 출신 귀보(유해진)의 취미는 아들 자랑입니다. 그의 아들 성웅(김민재)은 촉망받는 레슬링 유망주로, 귀보의 꿈은 그의 아들이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루고 싶었던 바를 자식에게 투영하는 부모 그리고 로봇처럼 부모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자식은 KBS1 ‘인간극장’이든 우리 주위에서든 쉽게 볼 수 있는 설정입니다. 그리고 이 낯익은 설정은 반항하는 아들과 자식 키우는 것이 세상 가장 어려운 일이라며 한숨 쉬는 아버지로 변화합니다. 여기까지는 하등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이 가운데 김대웅 감독은 가족 영화여야 마땅한 ‘레슬러’에 재밌는 접근을 시도합니다. 아들 성웅의 반항 이유로 무엇이 가장 합당할까요. 사춘기? 운동의 힘듦? 틀렸습니다. 예고편에도 등장하듯 감독의 선택은 성웅의 소꿉친구 가영(이성경)입니다. 귀보를 보며 “완전 멋있어” 하는 가영의 ‘금지된 사랑’은 성웅에게는 그가 레슬링을 정말 좋아해서 하는 것인지 고민하는 계기를, 귀보에게는 그의 진짜 꿈이 성웅의 성공인가를 생각하는 동기를 제공합니다. 방영 때마다 이슈의 진원지로 자리매김 중인 tvN ‘나의 아저씨’가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심각하진 않습니다. 감독의 말처럼 가영의 연정은 갈등의 촉매제에 불과합니다.문제는 촉매제를 맞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데 있습니다. ‘레슬러’로 스크린 데뷔를 알린 배우 이성경이 연기한 가영은 참 아름답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면과, 자꾸 커져만 가는 사랑에 괴로워하는 내면 모두 빛이 납니다. 하지만 ‘레슬러’의 개봉일은 가정의 달 5월의 초입 5월9일입니다. 관객이 ‘레슬러’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그것은 ‘럭키’로 가능성을 인정받은 유해진의 편안함 그리고 그와 김민재가 이뤄낼 부자의 화합일 테지요. 물론 김대웅 감독은 그 화합을 제목에 부합하는 방법으로 풀어내긴 합니다. 그렇지만 가영의 큰 비중 탓에 ‘레슬러’는 오리무중 끝에 고봉밥을 안기는 모양새로 작품의 끝을 맺습니다.로맨스가 불편한 것은 아닙니다. 40대도, 20대도 결국 모두 성인 아닌가요. 누구의 논리대로라면 가영과 귀보 사이 어떤 신 하나는 더럽게 느껴지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그 신에서 관객은 음흉함 대신 가영의 진심을 읽습니다. 영화적으로 이해 가능한 신입니다.‘레슬러’는 가족 영화지만, 좋은 가족 영화는 아닙니다. ‘인간극장’의 갈등 구조가 유해진과 스크린을 통해 구현되면 더 나은 전개가 펼쳐질 줄 알았으니까요. 1월 개봉한 ‘그것만이 내 세상’이 떠오릅니다. 배우 이병헌이 그 뻔한 신파를 구조했듯 유해진의 존재는 레슬링과 첫사랑 그리고 부자의 자아 찾기란 난제를 시쳇말로 멱살 잡고 끌고 갑니다.‘레슬러’는 ‘럭키’ 때 증명한 유해진의 역량, 즉 약 2시간여 장편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배우의 힘을 또 한 번 힘껏 자랑한 영화입니다. 흥행 여부를 떠나 그를 향한 평가는 호의 일색이겠지요. 다만 유해진 다음 단독 주연작은 부디 배우 유해진이 지금껏 쌓아온 특유의 친근함과, 그것의 반전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작품이었으면 합니다. ‘프로 살림러’ 귀보가 전자, ‘럭키’의 냉혹한 킬러 형욱이 후자라면 이미 관객은 그가 주연으로서 표현 가능한 전부를 맛본 셈이니까요. 새로운 유해진이 등장할 때입니다.(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bnt뉴스 기사제보 star@bn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