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가 6년 만에 2세대 완전변경 플래그십 세단 K9을 출시했다. 1세대 K9의 흥행이 기대 이하였던 터라 상품구성부터 출시행사까지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썼다. 출시 현장에선 신형 K9의 성공을 기반으로 브랜드 전체 이미지 제고에 나설 것이란 포부도 들을 수 있었다.
2세대 K9엔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최신 편의 및 안전장치가 탑재됐다. 주행성, 안전성, 고급감 등 고급 대형 세단이 갖춰야 할 매력을 빠짐없이 담았다 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다. 출시 현장엔 외장, 내장, 편의, 안전, 실내·외 디자인 등 분야별 개발 담당자들이 상주하며 신형 K9의 장점을 직접 설명했다.
많은 개발 담당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아차가 생각하는 신형 K9의 제품 방향성은 쉽게 확인됐다. 운전기사를 두는 '쇼퍼 드리븐'보다 본인이 직접 운전하는 '오너 드라이버'의비중을 높게 보았다는 점이다. 신형으로 넘어오며 주행 성능 강화에 힘쓴 이유다. 이전보다 차체 강성을 높이고, 파워트레인과 서스펜션 반응을 역동으로 반걸음 옮긴 것도 이 때문이다. 드라이브 셀렉트 모드도 변화의 폭도 한층 넓혔다.
고급 소재나 품목만으론 경쟁 차종 대비 차별화를 거두기 어렵다고 봤다. 그래서 주목한 게 '감성'이다. 내장개발팀 관계자는 "운전자 또는 탑승객이 이동하는 동안 정서적 안정을 취하고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강조했다. 팬톤 색채 연구소와 협업을 강조한 엠비언트 라이트와 인터랙티브 무드 조명, 스위스 모리스 라크로와의 아날로그 시계 적용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목록만 읽어도 숨이 찰 정도로 화려한 구성 뒤에 자리한 K9의 방향성은 사실상 이전 세대와 비교해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관계자들은 직접적으로 차명을 언급하길 꺼리면서도 제네시스 G80,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 등을 경쟁 차종으로 염두에 둔 듯 했다. '오너 드라이버'를 강조한 이면엔 제네시스 EQ900이나 벤츠 S클래스 등과 직접 대결을 피하고, 5m가 넘는 대형 세단이 E클래스나 5시리즈 등과 경쟁하는 게 옳은 것이냐는 세간의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느껴졌다. 가격이 비슷하고 운전자 성향이 유사한 차들을 같은 카테고리로 묶었다는 이야기다.
세간에 떠도는 차명의 전환이나 고급 브랜드 독립설에 대한 입장도 비슷했다. 현재 기아차는 공식적으로 별도 고급 브랜드 육성 계획이 없다고 수 차례 밝히고 있다. 신형 K9도 과거 대형 세단 오피러스와 대형 SUV 모하비처럼 별도 로고가 아닌 기아차 브랜드를 달고 나왔다. 현장에서 만난 관계자는 "(1세대 K9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상황에서)차명이나 로고, 브랜드를 바꾼다고 소비자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지 의문"이라며 "기아차 브랜드 아래서 2세대가 일단 성공한 다음 (별도 로고 적용이나 브랜드 독립 등의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는 설명을 내놨다.
기아차는 대중들에게 친숙한 양산차 브랜드다. 고급스러운 이미지보다 친숙하면서도 발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차로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앞서 오피러스나 모하비 등에 별도의 로고를 부착했던 것도 퍼블릭 브랜드의 이미지를 벗어나 구매자에게 특별함을 선사하기 위해서다. '로고나 엠블럼이 뭔 대수냐'고 할 수 있지만 고급 차명으로 시작한 제네시스가 결국 현대차의 고급 브랜드로 육성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다.
2013년 출시됐던 1세대 K9은 왜 제네시스만큼 팔리지 않았을까? 다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제품력부족보다 애매했던 포지셔닝을 요인으로 꼽는다. 출시 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업무용차로 K9을 애용했다지만 K9의 위치는 '에쿠스 밑, 제네시스 위'로 받아들여졌다. 최고급 세단을 선택하는 소비자에게 2등의 이미지는 결코 득이 될 수 없다. '내가 제일 잘 나가'라고 당당히 외치고 그에 합당한 제품력과 마케팅, 브랜딩 작업이 뒷받침돼야 성공할 수 있다. 기아차를 대표하는 기함으로서 2세대 K9만의 카리스마를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한 방이 필요하다.
안효문 기자 yomun@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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