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 기자] 2월28일 ‘궁합’이 개봉했다. 개봉 후 첫 주말 맞이. 이번 주말 극장을 찾을 관객들의 선택으로 ‘궁합’은? 물론, 결말 ‘스포’는 없다.★★☆☆☆(2.4/5)지난 2013년 개봉해 913만 5806명의 누적 관객수를 기록한 영화 ‘관상’은 세조를 연기한 배우 이정재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파렴치한 살생도 거리낌 없이 행할” 세조의 첫 등장에서 기자는 전율을 느꼈다. 전율은 모두의 몫이었다. 이후 이정재는 40대 배우의 비상을 알린다.약 5년의 시간이 흘렀다. ‘관상’ 제작진의 역학(易學) 시리즈로 소개되는 영화 ‘궁합(감독 홍창표)’은 제작사 주피터필름의 두 번째 역학 영화다. ‘관상’이 관상을 소재로 다뤘다면 ‘궁합’은 사주와 궁합을 영화 전면에 내세운다. 하지만 ‘궁합’에는 이정재가 없다. 한재림 감독도 없다. 물론 긴장감 조성이 전무한 것은 아니다. 그간 브라운관에서 선역을 맡아온 연우진이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그러나 서늘함이 없다. 누구에게 ‘궁합’은 ‘관상’의 열화판이다.때는 영조 29년. 땅이 버성기는 극심한 가뭄 속에 왕(김상경)은 관상감의 말에 따라 송화옹주(심은경)의 혼사를 서두른다. 이에 사헌부 감찰 서도윤(이승기)은 왕의 명을 받을어 부마 후보와 옹주의 궁합 풀이를 맡는다. 송화옹주는 액운 낀 팔자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모두에게 미움 받는 존재다. 천생연분을 꿈꾸는 송화옹주는 몰래 궐 밖으로 나가 네 후보를 염탐하기 시작한다. 신분을 숨긴 송화옹주와 동행하게 된 서도윤은 점차 그에게 마음이 끌린다.‘궁합’은 ‘관상’의 적자(嫡子)지만 쌍둥이는 아니다. 홍창표 감독은 “젊은 배우가 모인 유쾌하고, 밝고, 따뜻한 이야기”라고 했다. 연우진은 “젊은 배우가 으쌰으쌰 의기투합한 영화”라고 알렸다. 실제로 ‘궁합’은 청춘이 득실댄다. ‘관상’에 비해 이야기가 한층 젊어졌다.배우 심은경, 이승기, 연우진, 강민혁, 조복래는 엄밀히 말하면 청춘이 아니다. 그럼에도 안티 에이징이 지닌 젊음의 싱그러움은 사극의 무거움을 유화시킨다. 송화옹주와 서도윤의 키스 신에 관해 취재진은 ‘키스 겁탈 신’이란 과격한 표현을 사용했다. 하지만 과격한 묘사조차 웃어넘길 수 있을 정도로 ‘궁합’은 모든 일을 코믹하고 가벼운 접근으로 그려낸다.기자의 궁금증은 ‘왜 ‘관상’을 전면에 내세웠는가?’이다. ‘궁합’은 조선판 청춘물이다. 물론 홍보의 용이가 이유일 테다. 그러나 ‘관상’을 기대한 이에게 ‘궁합’의 싱그러움은 기대가 컸기 때문에 더 가볍게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 기자가 그랬다. ‘궁합’의 모든 것은 끝없는 가벼움이었다. 특히 송화옹주의 어느 대사는 언론시사회 현장에서 몇몇의 실소를 모았다. 누가 봐도 송화옹주의 행보가 감동으로 승화돼 펑 터져 마땅한 순간이었는데도 말이다.신기한 일은 시사회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생겼다. 감독과 배우의 설명을 들으니 그제야 ‘궁합’은 한 편의 영화로 완성됐다. 앞서 언급한 청춘의 싱그러움도 감독의 해설을 통해서야 이해됐고, ‘사랑’의 가치 역시 설명을 들어야 공감이 갔다. 실소를 모은 송화옹주의 대사는 사랑을 강조한다. 그리고 대사는 ‘궁합’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낸다. ‘궁합’은 송화옹주의 로드 무비다. ‘이 씨 성을 제외할 것’ ‘사지가 건강해야 할 것’ 등 갖은 조건을 거쳐 선별된 네 명의 부마 후보를 만나는 과정 속에서 “궁합 보고 내쫓았다가 궁합 보고 데려온” 송화옹주는 사주에 떠밀려 허울뿐인 자신의 몸에 주체성을 채운다.네 명의 후보 중 옹주가 고른 주인공은 누가 될 것인지는 중요치 않다. 부마 후보는 인간 군상을 간소화시키고 스테레오타입으로 빚어낸 이들이다. 옹주와 어울리는 남편감이 누구일지는 비록 사주를 모를지라도 답이 보인다.역학이란 소재와, 이승기와 심은경을 비롯한 젊은 배우의 합 그리고 작품 곳곳에 숨겨둔 사랑에 대한 실마리를 말미에 터뜨리는 전개까지. ‘궁합’은 소재와 줄거리만 보면 또 다른 흥행작이 탄생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췄다. 대형 배급사의 존재도 빠질 수 없다. 하지만 앞서 소개했듯 ‘궁합’은 해설이 있어야 재밌다. 차라리 가뭄이 조선을 덮쳤다는 자막 대신 ‘사랑을 찾아 떠나는 심은경의 로드 무비’라는 소개 한 줄이 더 흥미를 돋아줬을 테다.서도윤이 매력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서도윤의 비중이 줄 지라도 말괄량이 기질과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송화옹주의 분량을 조금 더 늘리는 일이 바람직했을 것이다. 사주에 밀려 불우한 시절을 보낸 이가 주체로서 궐 바깥에 나가 궁합을 찾는다는 것은 결국 운명에 맞서는 개인만이 행복을 쟁취할 수 있다는 바람직한 메시지의 은유로 다가올 수 있다.또한, 여권이 그 어느 때보다 약한 조선 시대 여성이 사회적 관념에 맞서 사랑을 쟁취하는 과정은 여권 신장이 화두인 2018년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기지 않았을까.
심은경의 연기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믿음직한 서도윤에게는 벽청색을, 야망을 가지고 있는 윤시경에게는 녹색을 부여한 것처럼 ‘궁합’은 미술에 큰 신경을 쏟은 작품이다. 카메라로 보는 배우들의 외모야 말할 필요가 없다. 특히 옹주를 연기하는 심은경을 향한 감독의 탐미는 대단해서 그의 피부는 누구보다 뽀얗고 잡티 하나 없다.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심은경의 하얀 외면은 오방색 전통 한복의 도움으로 더욱 도드라진다.하지만 심은경의 연기는 감독이 아름답게 꾸민 배우의 겉만 못하다. 분명 영화 ‘수상한 그녀’ 등은 그의 맞춤작이었다. 오두리를 연기할 배우는 심은경뿐이다.이 가운데 심은경은‘궁합’에서 대중이 기대하는 심은경만의 명랑함을 재현했다.그러나 물음표를 안긴다.천생연분과 사랑을 희망하는 옹주의 순수함을 아이 같은 면으로 표현한 배우의 시도는 좋다.그렇지만 어떤 신에서 송화옹주는 실제로 아이가 된다. 천진난만함이 철없음으로 격하된다. 송화옹주의 순수함에 치중한 대사 전달도 아쉽다. ‘서울역’에서 그는 이질감 강한 더빙으로관객의 뭇매를 맞았던 바 있다. 이번에는 몰입이 과하다는 인상을 전한다.신스틸러는 조복래다. 관객 대다수는 조복래가 연기하는 이개시가 왜 서도윤과 동행하는지 모를 것이다. 이개시는 그저 웃음을 위해 존재하는 감초다. 이 가운데 조복래는 감초에 혼신을 다한다. 그의 능청스러움은 관객이 송화옹주의 부마 찾기에 집중하도록 돕는다. 서도윤은 말한다. “궁합을 이는 게 그리 단순치가 않다오. 어떤 상대를 만나느냐에 따라 팔자가 바꾸기 때문이지.” 작품과 배우의 궁합을 따지자면 그와 ‘궁합’의 궁합은 99점이다.‘궁합’은 두 번은 봐야 ‘관상’ 제작진이 말하려는 바를 이해할 수 있다. 사주로써 합을 판단하는 궁합을 통해 사람 간의 관계를 돌아보게끔 하지만 첫 관람만으로 그것을 깨닫기는 역부족이다. 단 한 번 봤을 뿐이지만 배우 송강호의 대사에 뜨거운 먹먹함을 느낀 2014년 추석이 그립다. 2월28일 개봉. 12세 관람가.(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bnt뉴스 기사제보 star@bn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