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 기자] “마음이 끌리는 걸 하게 되더라고요”10월10일 진행된 ‘미옥(감독 이안규)’ 제작보고회. 이날의 행사는배우 김혜수가 주인공인 ‘원 앤드 온리(ONE & ONLY) 김혜수’ 영상과 함께 시작됐다. 더불어 영상에서 배우 이희준은 “누아르 영화인데 주인공이 김혜수다”라는 말로 기대를 한껏 고조시키기도.1986년 영화 ‘깜보’를 통해 연기 데뷔한 김혜수는 32년 차 배우다. 영화 ‘타짜’의 정마담 역을 통해 또 다른 배우 전성기를 연 그는 이후 영화 ‘도둑들’ ‘관상’ ‘차이나타운’ 등에서 각양각색의 역할을 전달하며 여배우의 불모지 충무로 속김혜수만의 입지를 구축해왔다.이 가운데 이희준의 언급처럼 ‘오직 하나뿐인’ 김혜수가 누아르 장르에서 연기를 펼친다는 사실과, 그가 전작 ‘차이나타운’에서도 엄마 역으로 누아르를 능숙히 소화했던 바 있는 과거는 ‘미옥’의흥행 여부를판단 가능한신빙성 있는 근거였다. 또한, 김혜수는 불패(不敗)의 배우다. ‘도둑들’ 개봉 이후 그는 은막에서든 브라운관에서든 언제나 흥행만을 거듭해왔다. 세 가지 사실이 뭉쳤으니 ‘미옥’의 성공은 뚜렷한 명약관화(明若觀火)였다.하지만 11월8일 서울 종로구 팔판길 한 카페에서 만난 김혜수는 외면은 밝았으나, 내면은 반대였다. 그는 영화관람 소감을 묻는 질문에 먼저 웃음을 보인 뒤, “언제나 완성품을 보고 나면 아쉬움이 있다”라는 말로 배우의 내면에 드리워진 그늘을 간접 전달했다.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고, 매사에 감정을 싣는다. 아마 그것이 기계와 인간을 구분 짓는 불변의 특징일 테다. 이와 관련 영화 개봉까지의 과정은 기계적으로 진행될지라도, 운신하는 배우와 취재진은 저마다의 감정을 문답 안에 투영한다. 이날 김혜수가 ‘미옥’과 관련해 대답마다 실어낸 감정은 고저(高低)로 구분하자면 다분히 후자였다. 하지만 기자가 관람한 ‘미옥’은 평작일지언정 그 이하는 아닌 작품. 양극단의 감정이 현장을 감쌌다.
‘미옥’은 범죄 조직을 재계 기업으로 키워낸 2인자 나현정(김혜수)과 그를 위해 해결사가 된 임상훈(이선균) 그리고 출세를 눈앞에 두고 덜미를 잡힌 최대식(이희준) 세 사람의 물고 물리는 전쟁을 그린 누아르다. 작품에 아쉬움이 있다는 김혜수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요인에서 그것을 느꼈는지 묻자, 그는 두 개의 단어 ‘관계’와 ‘모정’을 화두로 꺼냈다.“‘미옥’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예요. 관계의 밀도가 조금 더 촘촘히 쌓여서 전달되길 원했어요. 김여사(안소영)나 웨이(오하늬)와의 연대나 관계에 더 힘이 실렸으면 어땠을까 싶죠. 그리고 모정성 이야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 부분에서 연기하는 사람과 전체 균형을 생각하시는 감독님과의 시각 차이, 관점 차이를 조금 느꼈어요.”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낳았다. 이번에는 감독과의 모성에 대한 관점 차이가 무엇이었는지 물었고, 김혜수는 시나리오를 처음 접했을 때의 감상을 꺼냈다. 누아르의 장점과 미덕인 관계의 밀도, 욕망의 충돌, 심리의 배신, 오해와 복수 그리고 파국 등을 느꼈다고. 나현정의 욕망은 음지의 세계를 떠나는 것이었고, 김혜수는 그런 감정에 마음이 끌렸다고 했다.“버리고 싶어 하는 여자의 욕망에 모성이 대전제가 된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나)현정은 모성을 의식할 수 없는 삶을 살았고, 모성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 역시 없었기 때문이죠. 아이를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현정의 욕망 속에 아이가 있을 뿐이고, 이 여자는 끝까지 자신의 욕망을 좇아가는 걸로 저는 받아들였어요.”모정에 대한 김혜수의 부정은 계속됐다. “엄마란 전제를 아예 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했죠. 왜냐하면 엄마라는 것을 의식하는 순간 무언가에 사로잡혀서 저도 모르게 모성에 관련한 무언가를 준비하게 되거든요. 전혀 연상하지 않았고, 의도적으로 배제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영화에서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더라고요.”아들을 위해 나현정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면 영화 ‘테이큰’을 비롯 여태껏 모성 혹은 부성을 전면에 내세운 여타 작품들이 생각나기도. 그러나 김혜수는 아들은 지키는 나현정의 행동은 내면의 욕망을 지키는 행동이지 모성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미옥’의 장르는 누아르다. 더불어 여기에 액션이 첨가됐다. 10kg에 달하는 장총을 들고 적진을 향하는 김혜수의 액션 신은 ‘미옥’의 절정이자 백미다. 약 1시간여 동안 쌓여진 감정의 탑은 김혜수가 연기하는 나현정의 액션을 통해 일정 부분 해소된다. 김혜수는 “액션 팀이 워낙 훌륭해서 따라갈 수 있도록 잘해주셨다”라며, 걱정에 비해 무난했다고 답했다.또한, ‘미옥’에서 김혜수 만큼 눈길을 끄는 배우는 김여사 역의 안소영이다. 현재도 줄곧 회자되는 1982년 개봉작 ‘애마부인’으로 명성을 떨친 그는 이번 영화에서 나현정의 조력자로서 등장한다. 극중 상처를 입은 나현정을 보살피는 김여사를 보면 두 사람의 전사가 궁금해지기도. 김혜수는 “영화를 최종 마무리하면서 연출자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지점을 찾았을 것”이라고 답한 후 안소영과의 공연을 회상했다.“저는 안소영 선배님이 반가웠어요. 선배님 얼굴을 촬영장 모니터에서 볼 때 제게 약간의 떨림 같은 것이 있더라고요. 눈이 정말 깨끗하셨어요. 그게 정말 좋았죠. 선배님께서 영화를 촬영하면서 굉장히 행복해하셨어요. 선배님을 다른 영화에서도 자주 뵙고 싶어요.”
은막을 화려하게 빛냈던 배우의 귀환 외에도 ‘미옥’의 장점은 신인 배우의 활약에 있다. 웨이 역을 맡은 배우 오하늬의 존재는 극중 임상훈의 말을 빌리자면 “쓰레기의 삶”을 사는 인물들의 비현실성을 관객에게 살빛 혹은 핏빛으로 전달한다. 오하늬 관련 이야기가 현장의 중심에 서자 취재진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긍정을 표시했을 정도.이 가운데 오하늬를 향한 조언을 부탁하자 김혜수는 걸크러시를 발휘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건 직접 할게요. 저는 직접 하는 걸 좋아해요.” 이어 그는 “사실 웨이 역은 시나리오에서는 훨씬 더 크게 인상에 남았다. 배우가 못했다는 이야기가 아닌 조금 더 부각을 시켰어도 좋았을 것이란 의견”이라며 다시 한 번 ‘미옥’을 향한 아쉬움을 토로했다.“김여사와 웨이와 (나)현정. 여성 간의 애환과 연대감이 있어요. 그것의 결과 디테일이 더 살았다면 배우도 연기할 것이 훨씬 더 많고 돋보였을 거예요. 영화도 더 탄탄해졌을 것이고요. 누아르에서 여성이 총질을 하고, 칼질을 하고, 담배를 펴야 영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연대로서 오히려 누아르의 특성이 강화됐을 것이란 아쉬움이 사실 좀 있죠.”
‘차이나타운’에 이어 김혜수는 조직의 2인자 나현정이란 또 한 번의 강한 캐릭터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그는 “‘차이나타운’이 워낙 강했던 것 같다. 그 영화는 죽고 사는 생존의 문제를 다뤘다면, ‘미옥’은 관계의 이야기”라며 차이점을 명시한 뒤, 마음이 끌리는 작품을 했을 뿐 강한 캐릭터가 이유는 아니라고 했다. 이에 기자는 질문을 보탰다. “마음이 끌리는 작품을 선택했을 뿐인데, 그간의 모든 출연작이 흥행을 거듭한 이유가 궁금하다”라고.김혜수는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하는 것 같다”라며 답을 시작했다. “전제되는 것은 없어요. 이런 걸 했으니까 다른 걸 해야 한다는 것이 없죠. 우선 시나리오는 다 봐요. 드라마든, 영화든, 심지어 예능도 다 봐요. 책장(冊張)이 안 넘어가는 것도 끝까지 읽고요. 보면 작품은 좋지만 마음이 안 끌리는 것이 있고, 미진한 작품이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움직이는 게 있고 그래요. 결국 마음이 강하게 끌리는 걸 하게 되더라고요. 언제부턴가 그랬어요.”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집계(11월11일 기준)에 따르면 ‘미옥’은 전체 박스오피스 순위 5위에 오르며 명약관화에 어긋나는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그리고 개봉일부터 지금까지 영화를관람한이들이 지적하는 ‘미옥’ 흥행 부진 이유는 작품의 미진함이다.이 가운데 김혜수는 후에 영화를 향한 아쉬움을 표시했을지언정, 마음이 움직이는 작품이기에 ‘미옥’ 출연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대중 역시 김혜수와 마찬가지로 마음이 동한다면 ‘미옥’을 선택할 수 있는근거는 충분한 것 아닐까. 개인의 취향은 저마다 다르고, 평가는 오프닝부터 엔딩 크레디트까지 지켜본 기관람객의 몫이기 때문. 영화는 11월9일부터 상영 중이다. 91분. 청소년 관람불가. 손익분기점 200만 명. 총제작비 66억 원.(사진제공: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bnt뉴스 기사제보 star@bn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