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가전의 연결, 영역 싸움일까
자동차 업계에선 최근 산업을 관통하는 가장 큰 흐름을 '전장화'라 말한다. 자동차의 핵심인 구동계부터 편의 및 안전장치에 이르기까지 전자부품 없이 자동차가 완성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업계에서는 이런 '탈 것의 전장화'를 두고 눈부시게 빠른 변화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정작 IT 업계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은 모습이다.
지난 1일(현지시간) 독일에서 개막한 글로벌 전자가전 박람회 IFA 2017의 전반적인 기조는 자동차 업체들이 꿈꾸던 장밋빛 미래와는 거리가 멀었다. 삼성과 LG, 지멘스, 파나소닉, 필립스, 밀레 등 빅 플레이어들은 앞 다퉈 '스마트홈'을 주제로 부스를 꾸몄다. 냉장고와 인덕션, 오븐, 세탁기, 로봇청소기 등 가전제품이 온라인으로 연결되고, 스마트 스피커는 이용자가 쇼파 위를 떠나지 않고 말 한마디로 가사 작업을 가능케 했다. 레시피를 입력하면 냉장고가 스스로 저장물을 스캔, 식재료의 신선도 상태를 점검하거나 부족한 재료를 마트에 주문하는 기술도 상용화 단계까지 개발됐다.
사물인터넷(IoT) 기술은 이용자의 다양한 정보를 수집,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통신 기술 발전은 시간과 거리의 제약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 '스마트홈'은 자동차, 특히 자율주행차와 접점이 많은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IFA에서 자동차의 모습은 예상 외로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멘스가 테슬라 모델 S에 대형 디스플레이 화면과 스마트 냉장고의 연결 기능을 시연한 게 눈에 띈 정도였다.불과 8개월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17 CES에선 자동차와 IT의 뜨거운(?) 만남이 연일 화제가 됐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지난 1월 현대차는 라스베이거스 인근 도로에서 자율주행차 주행 테스트에 나섰고, 벤츠와 토요타 등 완성차 업체들은 물론 콘티넨탈과 현대모비스 등 대형 부품사 역시 부스를 설치하고 적극적으로 기술 알리기에 동참했다. 기계장치의 집합체인 자동차가 IT 기기로 변신을 꾀하는 모습, 스스로 주행하고 탑승객에게 공간 이동 이상의 컨텐츠를 제공하는 자율주행차는 자동차와 IT 업계의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IFA 현장에서 만난 IT 업계 관계자들은 "올해 전시회의 주인공이 '스마트홈'인 건 사실이지만 자율주행차를 비롯해 자동차와 IT의 결합 동력이 떨어진 건 아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동시에 "(2020년이면 상용화된다는 전망이 나오지만) 자율주행차가 아직은 미래의 이야기라면 '스마트홈'은 현실"이란 의견도 들을 수 있었다. 2년마다 빠르게 변하는 IT 업계의 변화 속도를 5~10년 단위로 바뀌는 자동차가 따라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만큼 자동차 IT는 가전과 별도로 변화하는 셈이다.
혹자는 이런 관점이 너무 부정적인 게 아니냐고 반박하기도 했다. 세계 최대 자동차 행사 중 하나인 프랑크푸르트 모터쇼가 9월 중순 예정돼 있는데 굳이 같은 달 초 열리는 IFA에서 자동차를 적극적으로 내세울 이유가 없다는 것. 그러나 지난해 IFA에선 기조발언에 디터 제체 다임러그룹 회장이 참여했던 걸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같은 자리에선 전시회 역사상 최초로 자동차 업계를 대표하는 인물이 키노트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IFA에 자동차를 위한 마련된 자리는 무척 좁아보였다. 게다가 자동차박람회인 프랑크푸르트모터쇼(IAA)를 불참하는 자동차회사가 늘었고, IT 기업들이 대신 공간을 채우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자동차와 IT의 결합은 변화의 속도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둘의 결합도 기대 만큼 빠르게 전개될 것 같지는 않다.
베를린(독일)=안효문 기자 yomun@au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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