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트럼프가 한국차를 자꾸 때리는 이유

입력 2017-07-04 07:20
수정 2017-07-26 19:06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한 한국차는 138만 대다. 이 가운데 미국 현지에서 생산한 건77만 대이고, 61만 대는 한국에서 만들었다. 반면 미국에서 생산해 한국에 들어온 자동차는 5만 대 남짓이다. 이를 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1:5'로 불공정하다며불만을 노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완성차 기준 수출과 수입이 균형을 이루려면 '61:5'가 '33:33'은 돼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또 한국 생산분 가운데 28만 대가 미국으로 넘어와야 공정하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28만 대는 어떤 규모일까.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 버금가는 생산시설이다. 이 경우 한국에선 완성차 일자리 4,000여 개는 물론 주변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협력업체 등을 포함해 2만~3만 명의 일자리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일자리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 입장에선 수용 자체가 불가능한 요구다.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쪽에선 28만 대의 생산이 미국에서 이뤄지면그야말로 대선공약 실현이다. 그래서 한국 내 일자리는 모르겠고, '미국 우선'을 외친 만큼 FTA 불공정을 내세워 28만 대 가운데 일부라도 생산을 미국으로 돌리려 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한국 정부의 대처 논리는 수출증가율이다. 지난 5년간 미국차의 한국 수출이 369% 늘어난 대신 한국차의 미국 수출율은 79% 증가에 그쳤다. 나아가 미국에 추가로 공장을 짓겠다는 당근도 내놨다. 그러면미국이 요구하는 28만 대 가운데 10만 대는 우선 해결하는 것 아니냐는 계산법이다. 그러나미국은 10만 대의 미국 생산확대가 아니라 '61:5'라는 비율 자체를 공정하게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를 계속 내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한국만 타깃이 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일본경제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한 일본차는 모두 668만 대로, 점유율이 40%에 달한다. 이 가운데 160만 대는 일본에서 생산했고, 멕시코에서 139만 대를 만들어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 생산은분 429만 대로 비중이 64%에 달한다. 반면 미국에서 생산해 일본으로 넘어간 완성차는 존재감 자체가 없을 정도로 미미하다.

트럼프 대통령 기준을 적용하면 일본과는 '0:160'이고, 일본차가 대상인 미국과 멕시코의 무역 불균형도 심각하다. 이에 따라 토요타를 비롯해 일본 완성차업체들이 부랴부랴 미국 내 생산확대 계획을 쏟아내고 있다. 다만 일본 또한 국내 일자리를 지켜야 하는 만큼 멕시코 생산분을일부 미국으로 돌리는 방안을 적극 고려중이다. 어차피 일본과 멕시코 생산에 미국이 불만을 가졌다면 본사가 있는일본보다 멕시코 일자리를 줄이는 게 낫기 때문이다. 당장은 아니라도 일본 완성차기업은 이런 계획이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을 조금씩 줄인다고 보는 것 같다.진짜 고민은 한국이다. 일본처럼 멕시코 대안이 없어서다. 기아자동차가 멕시코공장을 지난해부터 가동하면서미국 수출을 준비중이지만 두 나라 사이는 언제든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또 이제 막 공장이 돌아가는 시점이어서 북미쪽으로 생산을 옮길물량 자체도 별로 없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자동차 FTA 불균형을 주장할 때마다 다양한 논리를 만들어 방어에 나선다.

이번 자동차부문 한미 FTA 갈등은 시작에 불과하다. 시장이 큰 나라일수록 보호주의로 문을 잠그면 한국은 위기를 넘어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 어차피 미국에서 미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차를 팔면서 61만 대를 한국에서 생산하는 건 공정하지 못하고, 이를 시정하려면 미국차를 한국이 56만 대 정도 수입하든지 아니면 한국 생산분을 미국으로 넘기든지 하라는 게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논리다. 그렇지 않으면 FTA를 되돌려 한국차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으름장을 놓고 있다.

자동차산업에선 최근 '공장의 전쟁'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국내도 각 지방자치단체가 많은 공장을 유치하려는 것처럼 각 국가도 이제는 직접공장을 유치하고, 생산을 늘려 가는 시대다.따라서 문제 해결을 위해선먼저 한국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장을 앞세워 '61:5'를 주장하는 마당에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국가가 대응하기 위해 기업 노사는 어떤 논리를 만들어낼 것인지함께 고민해야 한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자동차 불공정 FTA 논리는 기준점이 다른 것이어서 억지로 치부하기도 쉽지 않다. '369:79'의 수출 증가율이 '61:5'라는 수출량 논리를 누를 수 있도록 말이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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