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선 기자] 무율, 블라드블라디스를 이끄는 수장, 최무열.
그는 만 19세에 서울 패션위크로 역대 최연소 디자이너로 데뷔하며 화제를 모았다. 현재 어린 나이가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정체성이 확실한 ‘다크웨어’를 선보이며 주목받고 있다. 그를 만나 그의 브랜드와 본인의 스토리를 들었다.
먼저 그는 주로 사용하는 블랙 컬러에 대해 “컬러를 사용하지 않고 무채색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시도한다”며 “같은 블랙이지만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따라 전혀 다른 옷이 된다”며 확고함을 내비쳤다.
Q. ‘무율’과 ‘블라드블라디스’ 브랜드 명의 의미는?
A. ‘무율’은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추후 행보에 신중함을 더하고 싶었고, 브랜드의 방향성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 기존 컬렉션라인의 이름을 무율로 변경했다. 더불어 ‘블라드블라디스’는 기존에 운영하던 ‘블라드’ 와 ‘블라디스’ 브랜드의 합성어다.
Q. 본인에게 영감을 주는 브랜드나 디자이너가 있다면. 혹은 존경하는 디자이너는?
A. 개인적으로 디자이너보다 무에서 유를 일군 기업가들 혹은 살아 생전에 인정받은 아티스트들을 존경한다. 사후에 인정받는 삶을 살고 싶진 않다. ‘존경하는 디자이너 혹은 사람’이 미래의 자신이 되기 위해 앞으로의 행보에 신중할 예정이다.
Q. 의상에 한자나 패턴을 넣은 디자인이 있는데, 어떤 의미인지.
A. 제일 처음 한자 패턴을 사용했던 16F/W 시즌에는 장수선무라는 글자를 적어 디자인했다. 보통 개인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적는 편인데, 장수선무의 뜻은 ‘어떠한 일이던 조건이 좋은 사람이 유리하다’라는 뜻이다. 또 당시 컬렉션 피날레에 ‘HIGH FASHION IS DEAD’라는 문구를 프린트했는데, 이는 컬렉션 당시 콘셉트가 ‘서브컬쳐 MINOR’로써 전반적인 시스템에 대한 반항심을 담았다.
17S/S 시즌에 사용된 한자는 ‘근주자적’과 ‘근묵자흑’이다. ‘주황색에 가까이 가면 붉게 물든다’와 ‘먹색에 가까이 가면 흑색으로 물든다’라는 뜻으로 주변의 환경이나 상황에 대해서 조금씩 변해가는 본인과 사람들에 대해 표현했다. 당시 시즌 콘셉트가 ‘FAR EAST THUG’로 ‘동양에서 온 양아치 혹 건달’ 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사용하고자 했던 ‘THUG’의 의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이를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 즉 삶의 기준이나 방향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주관적으로 인생을 즐겁게 사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이런 모습이 내가 원하는 삶이기도 하다.
아, 내가 타투를 많이 했는데, 파리 패션위크에서 친한 바이어가 17S/S 콘셉트를 보고 농담으로 웃으면서 “이거 너 아니냐”고 하더라. (웃음) 이후 세일즈할 때 컨셉슈얼하게 “내가 바로 동양에서 온 Thug라서 이런 콘셉트다”라며 바이어에게 좀 더 유머 있게 말했다. 바이어들도 재미있어하고 반응이 가장 좋았다.
Q. 이미 쇼를 여러 번 열었다. 패션쇼를 진행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A. 쇼에 메시지를 담으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면 잘 보이지 않는 액세서리에도 글자를 써서 나만의 세계관을 담는다던가, 혹은 메시지나 기분을 적어놓고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최근 17F/W 시즌 같은 경우는 시즌 콘셉트가 ‘그들만의 리그-부제 역설’이었다. 16S/S까지의 경우는 디자인으로만 콘셉트를 표현하고 싶었지만, 시즌이 지날수록 의상에 프린트하거나 음악에 녹음하는 등 더욱 대담하고 과감해졌다.
이번 시즌 음악 또한 좋아하는 영화 ’파이트 클럽’의 대사를 따와서 제작했다.
Advertising has us chasing cars and clothes. Working jobs we hate so we can buy shit we don't need. We're the middle children of history. No purpose or place. We have no Great War. No Great Depression. Our great war is a spiritual war. Our great depression is our lives. We've all been raised on television to believe that one day we'd be millionaires and movie gods and rock stars. But we won't. We're slowly learning that fact. And we're very, very pissed off.
우린 필요도 없는 고급차나 비싼 옷을 사겠다고 개처럼 일한다. 우린 목적을 상실한 역사의 고아다. 2차대전도 공황도 겪지 않았지만, 정신적 공황에 고통받고 있다. TV를 통해 우리는 백만장자나 스타가 될 수 있다고 착각했다. 그것이 환상임을 깨달았을 때 우린 분노할 수밖에 없다.
Q. 본인의 브랜드에만 있는 특별함이란 무엇인가.
A. 가공되지 않은 날 것인 브랜드. 그리고 대담한. 언제나 철들지 않는, 앞으로의 행보가 예측 불가능한 브랜드.
Q. 개인적인 질문을 드리자면, 평소 입는 옷 스타일도 본인의 브랜드 스타일인지.
A. 대부분 그렇다. 스타일에 예민한 편이다. 나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좋아하는 스타일이 비슷하다. 우리가 좋아하는 게 곧 우리의 브랜드다.
Q. 본인이 좋아하는 장소, 영감이 잘 떠오르는 특별한 장소가 있는지.
A. 내 작업실, 그리고 가진 게 정말 아무것도 없었던 어릴 적부터 친한 타투이스트 한승재의 한남동 작업실. 이곳은 마치 아지트 같다. 친구들도 승재 작업실에서 자주 모이는 편이다. 그리고 아무도 없이 혼자 생각하고 싶을 때는 한강에 자주 간다.
Q. 평소 휴식기에는 무엇을 하는지. 디자인 외 취미나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A. 휴식기라고 할 틈이 없었다. 파리에서 받은 오더 생산 후, 다음 시즌 준비를 했고, 준비되자마자 출국,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서울 쇼를 준비했다. 그 와중에 또 VLADVLADES의 신상품도 출시해야 하고, 정말 데뷔하고 나서는 시간이 매우 빨리 지나갔다.
이번 시즌에 상해 패션위크를 다녀온 뒤, 디자이너가 된 후 처음으로 해외 휴가를 갔다. 멍하니 수영도 하고, 누워있으니 행복이 무엇인지 느껴지더라. 생각 정리도 하고, 다시 한번 계획도 세워보고 급하게 달려왔던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앞으로도 자신에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려고 한다.
요즘 즐기는 취미는 요리다. 보통 새벽까지 야근해서 혼자 밥 먹는 시간이 많다. 끼니도 거르는 경우가 많아 한끼를 먹더라도 아주 정성스럽게 요리를 해서 먹는다. 정말 재밌다.
Q. 추후 패션쇼 주제를 정했다면 어떤 것인가.
A. 조금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나 자신과 스스로 솔직한대화 중이다.방향성에 대해 생각 중이다. 콘셉트나 의상 등 기존 시스템의 쇼를 보여주는 방식을 틀어보고 싶다. 런웨이쇼 말고 다른 방식으로도 진행하고 싶다. 진정으로 내가 원했던 것을 할 예정이다.
Q.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A.어렸을 때부터 목표가 뚜렷했다. 18살에 처음으로 송지오 선생님 쇼를 봤다. 좌석이 없어 무대 맨 뒤에서 까치발을 들고 쇼를 봤던 기억이 난다. 쇼가 끝난 뒤, 송지오 선생님이 나와서 인사를 하는데 왠지 모르게 울컥하면서 눈물이 났다. 그때 ‘아, 이게 내 길이구나. 나도 꼭 서울 패션위크에서 쇼를 여는 디자이너가 돼야지’라고 결심했다.
그때부터 미친 듯이 디자이너가 될 방법을 알아봤고, 결국 꿈을 이뤘다. 만 19세에 역대 최연소 디자이너로 서울 패션위크에 데뷔했다. 아마 앞으로도 기록을 깰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웃음)
그런데 꿈을 이루고 나니 공허함이 찾아왔다. 막상 인생의 목표를 이루고 나니, 눈빛도 달라지고 생기가 없어졌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목표 하나만 보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목표를 이루니 공허함에 약 1년간을 폐인처럼 살았던 것 같다. 또 해마다 쇼를 계속 진행하니 빚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난 상황이었다. 자연스럽게 내가 좋아하던 것들이 나를 상처 입히는 비수가 돼서 돌아왔고, 정신 차려보니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과거 열정 넘치고 자신감 있던 내가 자랑스러워하고 좋아하던 내 모습을, 자만심에 취해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겨냈고, 지금 다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진정한 내 모습을 찾았다. 하지만 지금 내 목표는 나만 알고 싶다. 아마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일 것이다. (웃음)
다시 자신감과 열정이 넘치고, 심장이 터질 만큼 흥분된다. 그리고 나는 내가 그것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린다. (사진출처: 블라드블라디스, bnt뉴스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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