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선 기자] MBC 드라마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이 30부작의 긴 여정을 마쳤다. 기존의 홍길동을 새롭게 해석한 극본과 섬세한 연출은 물론, 배우 모두 구멍 없이 완벽한 연기력을 선보여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초반에는 아역 배우의 놀라운 연기력과 김상중의 농도 짙은 노비 연기가 돋보였으며, 후반부는 윤균상의 감정 연기, 김지석의 미치광이 왕 연기가 어우러져 시청률을 끌어올렸다. 더불어 여자 주인공들 역시 역적의 일등 공신이다. 이하늬와 채수빈은 각자 캐릭터를 놀랍게 소화했다. 장녹수 역의 이하늬는 ‘장녹수=이하늬’ 공식이 성립될 정도다. 특히 과거 표독스럽고 질투심 강한 장녹수의 이미지가 강했다면, ‘역적’ 속 이하늬는 시청자의 머릿속에 예인 장녹수를 각인시켰다.채수빈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발랄하고 어린 여성의 모습부터 서방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조강지처 역을 넘나들며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자랑했다. 이 두 캐릭터를 자세히 살펴보자. ★’결국은 왕의 여자로 마무리’ 장녹수_이하늬
이하늬는 이 드라마를 통해 ‘사극에 완벽히 어울리는 여배우’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예인 장녹수를 완벽하게 소화했기 때문. 그는 과거 공화로 불릴 시절 홍길동과 우연히 인연이 닿아 연인이 되었으나 홍길동의 기억이 되돌아옴으로 인해 떨어지게 됐다. 이에 공화는 길동을 기다리지 못하고 궁에 들어가 왕의 연인 녹수로 변한다. 여기서부터 이하늬의 매력은 폭발한다. 장구를 치며 춤을 추고,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노래하며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실제 국악을 전공한 만큼 완벽한 공연을 선보인 것. 이어 마음으로는 길동을 품은 상태로 잡혀 온 길동을 마주하게 되고, 결국 왕에게 그를 살려두라 제안한다. 만일 이때 길동이 죽었다면 왕은 물론 녹수 본인도 죽음을 면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녹수는 마지막 회에서 도망가라는 길동의 말에 모든 것이 본인의 선택이며, 이를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녹수는 살아남기 위해 마음을 숨기고 어린아이 같은 왕을 엄마처럼 품었고, 더욱 독하게 흥청들을 대했으며, 가령에게 역시 모진 말을 뱉었다. 결국 왕의 곁에 남은 것은 녹수 한 명이었고, 왕의 여자로서 일생을 마무리한다. 역사 속 이야기대로 마무리됐지만, 그 마무리를 마주한 시청자는 마음이 저릴 수밖에 없다. 왕의 옆에서 권세를 누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인생이 매우 안타깝기 때문. 길동이 ‘예인’이라고 불러준 뒤 그는 최고의 예인으로 올라섰지만, 결국 길동과 이어지지 못한 채 돌에 맞아 죽고 만 것. 이하늬는 장녹수의 환생으로 느껴질 만큼 그를 완벽하게 연기했다. 많은 이의 인식 속 질투심 강하고 못된 후궁의 이미지가 강했던 장녹수지만, 작가는 이 캐릭터에 명분을 부여했고, 이하늬는 이 명분을 깔끔하게 표현했다. ★’기다림의 아이콘’ 가령_채수빈
채수빈이 연기한 가령은 기다림의 아이콘이다. 공화가 길동을 기다리지 못하고 떠났을 때, 가령은 길동이 올 것이라 믿고 기다렸다. 결국 돌아온 길동은 공화가 없자 바로 떠났지만, 이때도 길동과 함께하겠다며 가령은 길을 나섰다. 그는 공화를 그리워하는 길동을 보면서도 묵묵히 기다렸다. 진정한 ‘기다림의 미학’을 보여주던 가령에게 볕이 들어왔고, 결국은 길동과 혼인에 이른다. 하지만 혼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기다림을 맞는다. 왕에게 간 길동을 기약 없이 기다리게 된 것. 결국 길동이 죽었다 오해한 그는 궁에 들어가게 되고, 복수를 꿈꾼다. 특히 왕과 독대하는 장면에서 왕의 귀를 물어뜯는 모습은 길동에 대한 사랑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더불어 인질의 신분으로 길동과 맞이하지만, 오히려 자신을 쏘라고 소리 지르며 길동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 절절한 외침은 시청자의 가슴을 울렸다. 이처럼 채수빈은 과거 본인의 필모그라피 속 보여주던 연기와는 차원이 다른 연기를 선보이며 호평을 들었다. 일명 ‘믿고 보는 배우’ 반열에 오른 것. 이처럼 각자와 어울리는 캐릭터를 만나 연기력을 입증한 이하늬와 채수빈. 앞으로의 귀추가 매우 주목된다. 하지만 ‘역적’속 그들의 모습을 보내주기엔 아쉬워 아직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사진출처: MBC 드라마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 홈페이지)bnt뉴스 기사제보 star@bn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