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눈길’ 김새론, 천상 배우의 털털한 아이러니

입력 2017-03-01 08:00
[이후림 기자 / 사진 조희선 기자] 김새론의 소탈한 매력에 빠지지 않을 자, 누구?영화 ‘아저씨(감독 이정범)’가 2010년 한여름에 개봉했으니 그 때가 벌써 7년 전이다. 영화 속 그 작은 소녀가 언제 이렇게 몰라보게 성장해 성공적인 연기자의 길을 차근차근 가고 있었는지 모르겠다.김새론은 섣불리 욕심을 부리지도, 초조해하지도 않았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찬찬히 훑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천천히, 그리고 다채롭게 독립영화와 상업영화 등 여러 작품들을 거쳐 온 그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영화 ‘눈길(감독 이나정)’은 그가 걸어온 다채로운 결과물 중 하나다. 2월21일 오후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새론의 수더분하고 소탈한 모습이 어린 시절부터 밟아온 배우란 직업적 특성으로 인해 의외로 비춰질 법도 했지만, 걸어온 길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전혀 의외일 일도 아니었다.Q. ‘눈길’에 출연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뜻 깊은 작품이 만들어지는구나’란 생각을 했다. 대본을 읽고, 자료나 영상들을 찾아보면서 더 늦기 전에 빨리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작품은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꼭 해야 되는 작품이었다. 내가 더 열심히, 잘 해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용기를 냈다.”Q. 주위 반응은 어땠나.“대부분은 다들 좋은 반응을 주셨다. 워낙 민감한 부분이니까 내가 힘들까봐 걱정하시는 주변 분들도 많았지만, 다들 큰 결심했다고 이야기해주고, 같이 응원해줬다.”Q. 학교 또래 친구들의 반응도 궁금하다.“‘눈길’이 처음 드라마로 만들어졌을 때, 학교에서 수행평가로 보여줬다. 친구들이 드라마 속 나오는 인물이 나인걸 알고 보는데도 울었다고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 특히 기억에 남았던 이야기는 ‘이거 해줘서 고맙다’라는 이야기. 나도 많이 조심스러웠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정말 고마웠다.”Q. 드라마와 영화, 두 가지 버전으로 제작됐다.“드라마랑 영화 둘 다 네 번씩 봤는데 엉엉 울었다. 연기를 내가 했음에도 또 마음이 아프고 화도 나고, 속상하고, 그냥 계속 눈물이 났다. 어떤 장면이나 시점이라기보다는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전개도 격해지니까 같이 울게 된 것 같다.”Q.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촬영에 임했는지 궁금하다.“일단 아픈 역사적인 사실을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좋았다. 영화 속 두 소녀가 지금 나하고 또래 아니냐. 한창 철없을 나이인데, 그런 고통을 겪은 소녀들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아직까지도 진행 중인 민족의 아픈 상처, 이런 상황들에 너무 화가 났다. 이제는 우리가 위로를 해드려야 할 차례인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촬영에 임했다.”“특히 현장에서 겪으니 있는 사실을 연기로 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내가 그 일을 겪었던 분들의 감정을 완벽히는 이해를 감히 못하지만, 최대한 그 마음에 공감하려고 노력했다. ‘죽는 게 무섭냐, 죽지 못해 사는 게 더 무섭다’ 이런 말들이 사실 어린 소녀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닌데, 그런 감정들을 충분히 생각하고 촬영했다.” Q.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힘들었겠다.“지방 방방곡곡 돌아다니다 보니까 춥기도 춥고, 스태프분들이 많이 도와주시고 했는데도 힘들었다. 근데 그럴 때마다 ‘그 시대 소녀들은 우리랑 비교도 못하게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란 생각이 자꾸 들었다. 감히 힘들다는 말을 내가 할 자격이 있나.”“감정적으로는 몰입을 하기 위해서 아픔을 공유해야하는데, 그 부분이 힘들었다. 근데 이 작품이 많은 분들께 생각할 수 있는 기회도 되고, 피해자 할머니들께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도 있고, 관심도 많이 가져주시니까 앞으로 ‘눈길’ 같은 작품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있다면, 고민의 여지없이 할 것이다.”Q. 일본어를 하는 장면이 유독 많다. “사실 내가 일본어를 하나도 모른다. ‘아이시떼루’ 이런 것밖에 모르는데, 극 중 영애가 일본어를 잘하는 캐릭터이지 않나. 일본어로 된 대사들은 녹음해 들고 다니면서 입에 붙을 수 있게 많이 연습했다. 걸어 다닐 때마다 했다. 내가 대사를 하면 일본어 선생님이 발음을 하나씩 고쳐주셨고, 또 한국어 발음을 먼저 쓴 다음에 화살표로 음 높낮이를 끊어서 연습을 했다.”Q, 정말 열심히 한 것 같다. 상 받은 이유를 알겠다. (김새론은 ‘눈길’을 통해 중화권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중국 금계백화장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영애라는 역할 자체가 감정변화가 굉장히 큰 인물이다. 처음에는 상황에 대해 받아들이지 못하다가 길들여지고, 무감각해지고, 위로하고, 이런 모습이 마음에 확 와 닿았다. 이런 부분들을 내가 느낀 대로 표현을 잘 해야겠단 생각이 들어 신경을 많이 썼다.”“상을 받는 것은 언제나 뜻 깊지만, 특히 ‘눈길’로 해외에서 상을 받게 돼 더 뜻 깊은 것 같다. 해외에서도 이 작품을 알아봐줬다는 것 자체가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보고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은 관심과 노력이 나중에 큰 힘을 발휘할거라고 생각하는데, ‘눈길’이란 작품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니 나중에 정말 큰 힘이 되지 않을까.”Q. ‘눈길’이란 작품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눈길’이란 제목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돼 있다. 첫째는 눈길, 단어 그대로 두 소녀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나타낸다. 두 번째는 다른 의미의 눈길인데, 우리가 ‘눈길’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나에게 ‘눈길’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다.”Q. 이번 작품에서 함께 연기한 배우 김향기와 동갑이다.“둘이 서로 많이 의지했다. 동갑이다 보니까 말을 하지 않아도 통했다. 그냥 친한 것도 있는데 작품 하면서 더 돈독해졌다. (김)향기는 정말 순수하다. 참 착하다. 성숙하고, 말도 잘하고 조숙한 친구다. 나는 생각 이상으로 왈가닥이다. (김)향기가 차분하다 보니까 내가 가서 막 장난도 치고, 애교 부리면서 ‘향기야, 향기야~’이러면 (김)향기가 ‘어헉, 헉, 헉’ 이렇게 웃었다.(웃음) 약간 이런 식? 내 왈가닥을 (김)향기가 받아주려고 많이 노력했다.” Q. 연기 뿐 아니라, 음악프로 MC도 경험했다.“좋은 경험이었다. 일단 기존에 보여드리지 못했던 실제 성격과 비슷한 모습이어서 재밌었다. 완전한 내 본업이 아니다 보니까 더 즐기면서 했던 것 같다. 특히 작가 언니들이랑 너무 친해져서 촬영 때마다 행복했다. 내가 동생들밖에 없어서 어릴 때부터 언니 오빠들을 좋아했는데, 작가 언니들이랑 매주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Q. 예능 욕심도 있어 보인다.“리얼리티 같은 거 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해봤다. ‘나 혼자 산다’ 같은 거?(웃음) 나는 노래방, 영화관, 다 혼자 다닌다. 밥도 혼자 먹는다. 특히 버스, 지하철을 정말 많이 타고 다닌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번호도 다 말할 수 있다. 일산에 살아서 경의 중앙선, 특히 많이 탄다.(웃음) 이어폰 꽂고 노래 듣는 걸 너무 좋아해서 자주 그렇게 다닌다. 활동하는 언니, 오빠들이 그런다. ‘쟤는 진짜 지하철 잘 타고 다닌다’고.”Q. 학교생활도 굉장히 열심히 했을 것 같다.“안 해본 것 없이 많이 해봤다. 전교회장 선거도 나가고, 학생부도 해보고, 문화 체육부도 해보고, 동아리도 해봤다. 근데 다 떨어졌다.(웃음) 아쉽게 떨어졌다. 그래서 울었던 기억이...난 내가 운 줄 몰랐는데 내 친구가 어제 이야기해줬다. 내가 전화로 ‘있잖아~ 나 떨어졌어’ 그러면서 막 울었다고.(웃음) 또래 친구들보단 아니지만, 수학여행이나 수련회 등 다 가봐서 학교생활에 큰 아쉬움은 없다.”Q. 평소 취미가 궁금하다. “영화 보고 나서 영화에 대한 평을 남긴다. 기억에 남는 대사 캡처도 하고, 적고, 포스터를 모은다. 심심하면 그림도 그리고, 좋은 영화는 대본을 구하거나 대사를 적어서 영상을 잠시 멈추고 주인공의 대사를 대신 해본다. 드라마는 보기는 하는데, 잘 안 남기는 편이다. 오늘은 ‘피고인’을 봐야한다. 하연이가 살아있다. 지성 선배가 다시 뉴턴을 해서 돌아오고 있다!”Q. 천상 배우다.“후회해 본 적은 없다. 일찍 찾은 이 길이 너무 재밌다.”이렇게 소탈하고 ‘쿨’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연기를 대하는 진심어린 태도에 ‘어라?’한 순간에, 여느 10대 소녀와 같은 발랄함을 내뿜는 반전 매력에 기분 좋은 웃음이 난다. 정적이고 한결같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게 달려온 길, 앞으로 그 노력과 열심과 선택에 걸맞은 ‘꽃길’만을 걸어가길 바라며. “새론 양을 보려면 경의 중앙선을 타면 되나요~?” 한편 영화 ‘눈길’은 3월1일 개봉한다. bnt뉴스 기사제보 star@bn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