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F/W 서울패션위크]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아는 것”, 레이 이상현

입력 2014-03-18 11:00
[이미주 기자/ 사진 김강유 기자] 조용조용한 말투, 차분한 분위기, 겸손한 태도. 묵묵히 ‘옷 만드는 사람’의 표본을 그린다면 이런 느낌일까. 다양한 실루엣의 변형과 시도를 통해 남성복 레이블의 새 지평을 열고 있는 ‘레이’의 디자이너 이상현은 광범위한 분야의 요소들에서 디자인의 영감은 얻는다고 했다. 외국 출장에서의 새로운 경험에서부터 한 권의 책, 친구와의 대화, 지나가는 한 마디까지도 영감이 된다는 그는 ‘사람이 하는 일이니 사람에게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지 않겠느냐’며 엷게 웃었다.한정적인 주제나 장르 안에서 영감을 얻지 않기 때문일까. 시즌마다 새로운 시도로 기대감과 궁금증을 유발하는 그의 디자인은 일련의 특정 구조 안에서만 변형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남성복에 신선하고 은근한 제안을 던진다. 이상현의 옷은 남성복을 대하는 암묵적인 사회의 고루한 관념에 일침을 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그간 그의 옷은 구조적이고 건축적이었다. 모던했으나 스포티즘을 가로질렀다. 딱 떨어지는 실루엣의 룩은 날이 선 듯 예민했지만 차분했다. 예측하기 어려운 시도와 변화의 흐름 속에서 이번 컬렉션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그가 수렴하는 폭넓은 아이디어들 가운데 이번 시즌에는 무엇을 골라 표현하고자 했을까. 디자이너 이상현을 만나 그의 디자인 철학과 2014 F/W 컬렉션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패션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어려서부터 옷을 좋아했기에 자연스럽게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되었다. 사실 가족이 먼저 디자이너를 직업으로 삼아보라며 추천했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그 말을 들은 이후에 더욱 옷에 관심이 갔다. 무심히 던진 말이었지만 나에게 크게 와 닿아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한 것 같다. 디자인의 요소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지.옷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잘 만들어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본에 충실하게 제작되는 것이 가장 좋은 옷이기 때문이다. 좋은 원단, 좋은 재단, 좋은 봉제 등 이런 것들이 잘 어우러져야 기본이 탄탄한 좋은 옷이 만들어진다.대신 디자인 하는 과정에서는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옷은 일상생활을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옷은 ‘개인을 현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것. 사람이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첫인상, 분위기, 입은 옷으로 그 사람을 파악하게 되지 않나. 사람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표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디자이너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삶이라 생각하는지.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아는 것’이다. 나를 알아야 어떤 표현이든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이를 들어가며 느껴지는 것은 나를 닮은 옷이 만들어 지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기본 셔츠 하나를 만들어도 ‘내’가 묻어 나오기 때문에 다양한 옷들이 제작되는 것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나 선호 등이 반영되니까. ‘나’를 아는 것,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 등. 이런 것들을 잘 파악하고 표현하는 것이 좋은 디자이너라고 생각한다. 2014 F/W 서울패션위크에서 레이만의 콘셉트 및 특별한 점이 있다면?기존의 남성이 갖는 이미지가 아닌 다른 의미의 남성성, 즉 ‘아름다운 남자’를 표현하고 싶었다. 남자에게 ‘아름답다’는 수식은 잘 쓰이지 않지만 남자도 표현하는 방법에 따라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이번 컬렉션이 지난 시즌과 가장 차별화되는 점은 무엇인가.더 영 해지고 고급스러워 진 것. 과감한 패턴, 컬러 블록 등의 사용으로 드라마틱한 느낌을 극대화 시키고자 했다.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나 심혈을 기울인 주력 아이템 등이 있는지.코트. 입체적인 실루엣을 표현하기 위한 많은 고민이 있었다. 남자 옷은 보통 수트, 코트, 재킷 등 각이 잡힌 포멀한 아이템이 대다수이다. 기존의 남성복과는 다른 입체적인 실루엣을 표현하고자 노력했고 패치, 컬러 블록 등을 이용해 기존과는 다른 표현을 꾀했다.쇼에서는 전반적으로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에 집중했다. 특히 음악은 무드를 가장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전반적인 분위기를 끌고 나가는 힘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밸런스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이러한 이유로 음악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두 시즌 째 파리에서 쇼룸 비즈니스를 진행 중이다. 앞으로도 파리에 포커스를 맞춰 계속 진행할 예정이고 시기가 된다면 해외 컬렉션도 진행할 것이다.특별히 파리 선택한 이유가 있는지.파리는 패션의 중심 도시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도시이다. 파리에서 진행하는 컬렉션 브랜드는 다른 도시에서 진행하는 것과 색깔이 다르다고 느껴진다. 파리는 레이와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아직 당장 기획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전시를 해보고 싶다. 쇼는 바이어가 오고 브랜드를 잘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이벤트이다. 이와는 별개로 디자이너가 팔아도 되지 않는, 일종의 오브제 같은 전시를 진행하고 싶다. ‘팔아야 하지 않아도 되는 옷’이라면 더 자유롭고 극적인 표현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레이의 아이덴티티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현재는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성장하는 만큼 브랜드도 성장할 것이다. 아직 명확한 아이덴티티를 내세우기에는 부족한 것 같다. 앞으로도 과감하고 다양한 시도를 통해 천천히 아이덴티티를 구축해 갈 것.대중들에게 어떤 남성복 레이블로 인식되기를 바라는지.‘자유로운 생각을 가진’ 남성복 브랜드.남자는 생각보다 옷을 입는데 사회적인 역할 등으로 인한 제약이 많다. 우리나라는 아직 보수적이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에 대한 의식도 일종의 제약인 셈이다. ‘내가 이 옷을 입으면 이렇게 보지 않을까?’ 등의. 이처럼 구속이 많은 남성복에 자유로움을 주고 싶다. ‘내가 좋은 대로 입는’ 옷. 그런 시각으로 레이의 옷을 즐겨주길 바란다. bnt뉴스 기사제보 fashion@bntnews.co.kr ▶ 올 봄, 더욱 멋지게 돌아온 ‘매니시룩’▶ 레드, 당신의 심장을 뛰게 할 유일한 컬러▶ 완연한 봄기운, 한결 가벼워진 아우터▶ 벨벳처럼 고운 목소리의 소유자, 로드▶ ‘블링블링’ 샤이니한 스타들의 패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