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파일]위기가 만들어 낸 일본차의 위협

입력 2013-11-20 07:20
일본이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다. 토요타가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최대 성과를 달성했고, 일본 내 생산 중단까지 경험했던 닛산도 제 궤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아베노믹스로 대표되는 환율 정책으로 영업이익도 크게 개선됐다. 지난 2011년 대지진과 북미 토요타 리콜 등을 겪으며 침울했던 분위기가 실적 반전에 힘입어 서서히 재도약으로 바뀌는 중이다.







이 같은 자신감은 도쿄모터쇼를 하루 앞둔 19일, 프린스파크타워에서 열린 '이동성을 향한 도쿄' 세미나에서 어김없이 드러났다. 이번 행사는 형식이 세미나일 뿐 한 마디로 일본의 모든 자동차회사 최고 경영자가 합심한 '리바이벌 일본차 알리기'나 다름이 없었다. 일본 자동차 역사 이래 모든 자동차회사 최고 경영자가 한 자리에 모여 일본차의 부활을 알린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도 중요하지만 대지진이라는 어려움을 통해 필요하면 협력도 지혜임을 깨달았다는 얘기다. 글로벌 미디어를 대상으로 열린 이번 세미나에서 토요타자동차 아키오 사장은 이른바 일본의 장인 제조 정신인 '모노즈쿠리(もの造り)'를 강조했다. 아키오 사장은 일본차의 근간에는 모노즈쿠리 정신이 있다면서 2013 도쿄모터쇼를 통해 결과물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토시유키 시가 닛산 부회장은 2011년 3월 대지진 때 기억을 떠올리며 "당시 일본 완성차업계가 힘을 모아 690명을 협력사에 파견해 최단 기간 생산 정상화를 이뤄낸 것은 일본의 뛰어난 모노즈쿠리 정신의 탁월함을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혼다자동차 이케 사장도 기술은 반드시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하고, 협력과 경쟁은 늘 같이 공존하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로 협력을 내세웠다. 이외 마쓰다자동차 마사미치 코가이 사장과 미쓰비시자동차 오사무 마스코 사장도 연설자로 참여해 일본차의 부활을 강조했다.







이번 행사에 대한 일본 자동차업계의 자부심은 상당하다. 대지진과 태국 홍수 등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불과 2년 만에 과거 지위 회복은 물론 아베노믹스에 힘입어 사상 최대 실적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어서다. 비록 일본 내수 시장은 지난해 대비 5% 가량 줄었지만글로벌 경쟁력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고 싶었다는 얘기다.공존의 강조를 위한 스토리텔링도 만들어냈다. 바로 '기적의 소나무' 이야기다. 대지진 당시 이와타현의 소나무 7만 그루가 모두 사라졌지만 유일하게 한 그루가 남았다고 한다. 이를 일본에선 '기적의 소나무(Pine tree of miracle)'라 부른다. 여기에 착안해 일본 내 제조 기반을 둔 자동차기업이 엔지니어를 파견해 협력팀을 만들었고, 각사 작업복을 입은 14명은 3개월 만에 똑 같은 모양의 작은 철제 '기적의 소나무' 모형을만들었다. 정교한 용접을 통해 모양을 재현, 이른바 일본의 '모노즈쿠리' 정신을 내보인 셈이다.







비록 위기가 협력을 불렀지만 일본 자동차기업의 적극적인 동행은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일이다. 같은 일본 기업이라는 점을 공동으로 활용, 글로벌 시장 내 '메이드 바이 저팬(Made by Japan)'을 활용한다는 전략이 담겨 있어서다. 일본의 장인 제조정신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앞세워 일본차 이미지를 함께 높인다는 의미다. 국내 제조 기반을 가지고도 국산차와 이상한(?) 외산차로 구분된 한국과는 조금 다른 행보다. 게다가 협력을 이끌어 낸 곳은 일본의 대표 자동차기업인 토요타자동차다. 맏형으로서 경쟁은 하되 협력의 필요성을 먼저 제안했다는 후문이다. 동생들이 외국계로 바뀌었다는 이유로 '나 홀로 독주'하는 현대기아차와는 조금 다른 행보다. 모든 행사가 끝난 후 각사 최고 경영자들은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언론을 자유롭게 만나며 질문에 대한 적극적인 답변을 거침없이 쏟아내기도 했다. 일본 내 완성차기업의 최고 경영자가 같은 공간 곳곳에서 일본차의 부활을 알리는 장면에선 전율이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최근 한국차도 해외에서 선전한다.행사에서만난 이태리 자동차 칼럼니스트 알레산드로 마르체티는 "일본차가 부활하고,한국차가 선전할수록 이태리와 프랑스 자동차산업은 휘청된다"며 "유럽에선 특히 기아차 상승세가 무서울 정도"라고 평가하기도 했다.하지만현대기아차의 해외 선전은 협력을 기반으로 다시 부활하는 일본차의 타깃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한국차의 점유율이 가장 많이 늘어서다. 상황이 이렇다면 우리도 협업의 필요성을 떠올릴 수 있다. 내수는 경쟁하더라도 해외 수출은 '한국' 브랜드를 활용해 공동의 노력을 해볼 수 있어서다. 하지만 아쉽게도국내 완성차 5사의 마음을 합치는 일은 쉽지 않다.우리에겐 오로지 '경쟁'만이 존재한다.경쟁이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경쟁만이 대안인것 같아 씁쓸하다.일본 완성차기업의 협력이 은근 부러웠던 배경이다. 도쿄=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