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바윗길을 가다(22) 인수봉 취나드 B길 / 국경 없는 알피니즘, 인수에서 꽃피우다

입력 2014-09-25 16:07
수정 2015-03-18 00:45
[김성률 기자] 이본 취나드에 대해서는 그동안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으나 취나드길을 등반할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취나드길은 항상 인기가 높은 바윗길이라 길이 비어있을 시간이 없다. 난이도가 높지 않다보니 아무래도 초급 등반자들이 많이 등반하게 되고 그러나보니 바윗길은 항상 정체되어 있기 마련이다.인수봉 대슬랩을 오르며 어느 길로 오를까 루트파인딩을 하는 차에 모처럼 취나드B길에 등반자가 많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바로 방향을 잡았다. 취나드 B길은 인수봉 동면의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취나드길은 이미 오래 전에 개척된 길답게 주로 크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크랙의 선이 무척 뚜렷하여 남성적인 힘이 느껴진다. 취나드B길은 여섯 마디로 잡기도 하고 다섯 마디로 보기도 한다. 둘째 마디에서 프렌드를 빌려 선등을 서본다. 출발은 순조롭고 볼트도 여러 개가 있어 큰 어려움은 느껴지지 않지만 중간에 물이 흘러 홀드가 미끄럽다. 역시 선등을 서니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러나 경사가 그리 세지 않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둘째 마디를 마치고 소나무 옆에 확보를 한다.셋째 마디 역시 크랙길인데 홀드가 양호해서 어렵지 않게 등반을 마칠 수 있다. 넷째 마디는 각도가 더 세진 크랙길이다. 등반 중간에 작은 동굴이 나타난다. 등반중에 비라도 내리면 대피라도 할 수 있을까? 두 사람이 들어가면 꽉 찰 것 같은 작은 동굴이다. 동굴을 지나 작은 침니를 두 손으로 벌리면서 올라서면 넷째 마디의 등반도 끝이 난다. 취나드B길은 길만 막히지 않는다면 2~3시간이면 충분히 등반을 마칠 수 있다. 그러나 운좋게 이 길을 등반한다 하더라도 인수봉에서 가장 붐비는 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등반시간은 늘 넉넉히 잡는 것이 좋다. 등반을 마치니 저 멀리서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비를 주룩주룩 맞으며 하강을 하지만 느낌은 나쁘지 않다. 하강기에 자일을 짜가면서 인수A길로하강하니 오아시스에는 빗물로 작은 도랑을 이루고 있다. 평소에도 이곳에 이렇게 물이 흐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여기에서 취나드 B길의 난이도를 살펴보자. 첫째 마디는 난이도 5.7의 슬랩길이고 둘째 마디는 난이도 5.8의 언더크랙길이다. 셋째 마디는 난이도 5.6의 좌향크랙이고 넷째 마디가 난이도 5.7의 우향크랙. 크럭스가 5.8 정도이기 때문에 역시 초급 등반자들이 많이 찾는 길이다. 취나드B 길 등반을 마치면 바로 귀바위테라스라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 오르면 귀바위를 올라볼 수도 있고 인수A길로 하강할 수도 있다. 취나드B길은 이름 그대로 1963년 이본 취나드와 선우중옥, 이강옥이 개척한 길이다. 주한미군으로 근무중인 이본 취나드는 이미 정상급의 산악인이었고 선우중옥 역시 당시 한국을 대표하는 산악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사람은 교대로 선등을 해가면서 취나드B길을 하루만에 개척했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최고의 기량을 가진 산악인들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이본 취나드(Yvon Chouinard)는 1938년 캐나다에서 태어났다. 1946년 그의 가족은 남부캘리포니아로 이주하게 되었고 ‘시에라클럽’의 멤버가 되어 암벽등반을 시작했다. 1963년부터 65년까지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면서 인수봉과 한국의 산악인들과 인연을 맺었다. 바로 취나드길을 개척한 것이다. 취나드는 미국으로 돌아간 1968년 동료 등반가들과 함께 무수한 고난을 무릅쓰고 피츠로이(2,450M) 남서벽을 초등한 이래 무수한 등반을 통해 산악인의 이름을 높였다. 손재주가 좋았던 취나드는 이후 죽음을 넘나들며 등반을 감행했던 피츠로이 등반의 경험을 살려 파타고니아라는 회사를 설립하고는 세계적인 회사로 키워나간다. 취나드는 현재에도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산악인이자 기업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러면서도 검소하고 소탈하여 오래된 폭스바겐차를 타고 찢어진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고 한다. 취나드와 함께 취나드길을 등반했던 선우중옥 씨는 그후 어떻게 되었을까? 취나드는 아마 우정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취나드는 취나드등산학교의 강사로 멀고먼 한국의 산악인 선우중옥을 불렀던 것이다. 선우중옥과 취나드는 크린클라이밍의 취지를 갖고 바위를 훼손치 않는 너트를 개발하고 장비회사 ‘취나드’(오늘날의 블랙다이아몬드 사)를 차려 일취월장하게 된다. 이본 취나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정상에 오르고 보면 아무것도 없다. 그러기에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이 중요하다” 산악인과 바위꾼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다른 요소들은 모두 무시하고 무조건 바위에 오를 수 있는 기술만 갖고 있다면 그 사람은 바위꾼이요 대자연과 호흡하면서 얄팍한 꾀를 쓰지 않고 동반자와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며 ‘무상의 행위’인 등반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진정한 산악인이다. 둘 다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다르고 종이 한 장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두 개체의 차이는 크다.진정한 알피니즘을 추구하며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부터 수만 리 멀리 떨어진 인수봉에 하나의 굵은 족적을 남겨 놓은 이본 취나드. 취나드B 길을 가면서 다시 한 번 이본 취나드와 알피니즘을 생각해본다.한경닷컴 bnt뉴스 기사제보 kimgmp@bntnews.co.kr▶한국의 바위길을 가다(1) 인수봉 동양길 / 클라이머가 행복해지는변주곡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10) 인수봉 빌라길 / 명품길로 인정받는 인수의 지존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19) 도봉산 배추흰나비의 추억 / 배추흰나비는 왜 그때 날아 왔을까? ▶[김성률의 히말라야 다이어리 ①] 안나푸르나를 향하여 ▶[김성률의 에베레스트 다이어리 ①] 가자! 에베레스트를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