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이 전해지며 국민들이 슬픔을 잠겼다. 4일 오전 11시 30분께 조오련은 전남 해남의 자택에서 쓰러진 채 부인 이성란 (44)씨에게 발견됐다. 발견 즉시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이후 낮 12시45분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그는 암울했던 1970~1980년대 대한민국의 한 줄기 희망과 같던 스포츠 선수였다. 끊임없는 도전과 포기를 모르는 근성으로 한국 신기록만 50회 수립하는 대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1970년, 17세의 나이로 제6회 아시안 게임 대회에서 자유형 400m, 1500m의 1위로 거머쥐며 ‘조오련’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렸다. 이어 1974년 제7회 아시안 게임에서도 금메달을 획득, 1978년에는 드디어 한국 신기록 50회를 혼자 갈아치우며 ‘아시아의 물개’라는 타이틀을 당당히 달았다. 이후 80년, 한국인 최초로 대한해협 횡단 성공에 이어 82년 영국 도버해협, 2002 대한해협, 2003년 한강 700리 종주, 2005년 독도 횡당, 2008년 조성웅, 조성모 두 아들과 함께 울릉도-독도 횡단을 이루어냈다. 조오련은 1980년 8월1일, 대한해협 53km를 13시간 16분 10초에 횡당하며 은퇴 후에도 수영계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해왔다. 영화 친구에서 “니 조오련이 하고 바다거북하고 수영시합하모 누가 이기는지 아나?”라는 대사가 나올만큼 그는 한국 수영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한 방송프로그램을 통해 소지섭, 베이비복스와 대한해협 횡단에 도전하며 어린세대에도 유명세를 떨친 조오련은 SBS ‘건강스페셜’의 고정 패널로 활동하며 ‘건강 도우미’로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심장마비로 57세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뜬 조오련은 2001년 전 부인 또한 심장마비로 사별한 바 있다. 부인을 먼저 보낸 그는 괴로움을 술로 달래다 병원을 신세를 지기도 했다. 결국 3년 전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 해남으로 돌아온 조오련은 동네 배추절임공장을 하던 절친한 후배의 여동생 이성란씨(44세)를 만나 신혼생활을 시작했다.‘인간극장’을 통해 깨소금 냄새나는 신혼생활을 공개했던 조오련, 이성란 부부는 약 4개월간의 짧은 부부의 인연을 끝으로 긴 이별을 해야 해 슬픔을 더욱 크다. 지난해 겨울바다 펭귄수영대회에도 참여하며 건강함을 과시했던 그였기에 한 순간에 국민적 영웅을 잃은 네티즌들도 안타까운 마음을 표하고 있다. ‘마린보이’ 박태환을 있게 한 한국 수영계의 밑거름이 되었던 조오련의 타계 소식에 온라인 또한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한경닷컴 bnt뉴스 조은지 기자 star@bn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