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ㆍ혁신 상징 실리콘밸리서 상생형 생태계 따라잡기모바일 커머스ㆍ사물 인터넷, VR Ɖ대 미래 먹거리' 부상
지난 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크 베이(bay) 남동권 도시이자 실리콘밸리 수도로 불리는 새너제이(San Jose)에 위치한 삼성전자[005930] DS(디바이스솔루션) 아메리카(DSA) 헤드쿼터.
반도체 집적회로 모양의 3단 적층(트리플셀)으로 10층까지 쌓아올린 이 건물 8층 사무실에는 한국에선 한창 바쁠 평일 오전 10시인데도 근무자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무실 전체는 하나의 통유리 공간처럼 시야가 확 트여있다. 우리 대기업 사무실에선 흔한 파티션도 찾아보기 드물다. 멀찌감치 인도계 엔지니어 한 명이 혼자서뭔가에 집중하는 모습만 보였다.
삼성전자 DSA 법인장 한재수 전무는 "여기는 미래 30년을 준비하는 아이콘"이라고 말했다.
삼성의 미래라는 이곳에 근무자가 없다니 실로 의아한 일이다.
R&D 지원팀의 남경우 부장은 "완전한 플렉서블 근무 형태를 실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본사와 협업하는 엔지니어들은 오후 늦게 출근해서 밤늦게 또는새벽까지 근무하다 퇴근한다고 한다.
사무실을 둘러보니 냅(nap·낮잠) 체어가 눈에 띈다.
그것도 후미진 공간이 아니라 사무실 군데군데 최고급 안마의자가 놓여 있다.
일하는 사람은 드문데 피트니스 센터엔 몇몇 직원들이 트레이너의 강의를 들으며 몸만들기에 한창이다.
누가 시켜서 일하거나 눈치 보느라 일하는 척 하는 게 아니라 효율이 가장 좋을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땐 알아서 쉬겠다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일할 땐 일하고 쉬고싶을 땐 마음껏 쉬는 일종의 플레이그라운드 같은 일터다.
서울에서 날아온 삼성 직원들은 같은 회사임에도 연방 부럽다는 감탄사를 내기바빴다.
삼성 DSA 헤드쿼터에서 북서 방향 고속도로를 따라 20분 남짓 달리면 나타나는팔로알토(Palo Alto) 시에는 스마트싱스(SmartThings) 사옥이 있다.
삼성이 2014년 인수한 미국의 대표적인 사물인터넷(IoT) 벤처기업이다.
알렉스 홋킨슨 최고경영자(CEO)는 이웃 빵가게 아저씨 같은 분위기다. 삼성의거액 투자로 대박을 맞았다고 하지만 주변은 온통 주택뿐이다. 복잡한 컴퓨터 그래픽기기가 놓인 연구실만이 이곳이 첨단 IoT 솔루션의 산실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사무실 전체는 주택가 교회나 학교 분위기를 낸다. 삼성의 IoT 솔루션이 개발되고 있다. 홋킨슨 CEO는 "여기는 오픈 플랫폼"이라고 누누이 강조한다.
삼성전자는 지난 2년간 실리콘밸리에서 1천여개의 스타트업(start-up·창업) 기업을 찾아다닌 결과 50여개 기업을 인수했다고 한다. 그 중에 가장 성공적인 곳이스마트싱스다.
그렇다면 삼성이 이들 기업에게서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지난 24일 삼성전자 본사인 수원디지털시티 내 디지털연구소(R4)에서는 CE(소비자가전) 부문 윤부근 대표, IM(IT모바일) 부문 신종균 대표, 경영지원실 이상훈 사장을 비롯해 주요 사업부장과 임직원 등 6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스타트업 삼성컬처혁신 선포식'이 개최됐다.
삼성이 스스로 '스타트업 DNA'를 갖겠노라고 공표한 것이다.
100여개 IT기업 헤드쿼터가 몰린 실리콘밸리는 무한경쟁의 '정글'이라기보다는상생공존의 '생태계'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우리 재벌기업들이 1980~90년대 고속성장을 이뤄내던 시절 최고의 효율화한 시스템으로 쫓았던 수직계열화처럼 물 샐틈 없이 꽉 짜인 체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원료부터 완제품까지 전부 우리 제품으로 만들어야 직성이풀리던 문어발 전략이 시장에서 통하지 않게 된 건 이미 오래된 얘기"라고 털어놨다.
오히려 느슨해보이면서도 수평으로 뻥 뚫린 공간에서 매일 새로운 플랫폼과 솔루션이 쏟아져 나오도록 창의적 환경을 만들어놓은 생태계에서 진정한 경쟁력이 나온다는 논리다.
이 관계자는 "삼성은 이미 하드웨어 기술력으로는 세계 최고임을 자부하는 상황이다. 지금 또 한 번의 퀀텀점프를 위해 필요한 건 열린 생태계에서의 혁신을 위한새로운 DNA"라고 말했다.
'뉴삼성'이 혁신을 추구하는 방식 또한 상당부분 실리콘밸리의 룰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실용주의적 혁신이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의 전사적혁신과 다른 것이 있다면 아마도 '혁신의 방향성'일 것이라고 재계의 한 인사는 평가했다.
삼성전자의 컬처혁신 선포는 '톱-다운(top-down)'이 아니라 철저하게 '다운-톱(down-top)' 방식을 따랐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보면 삼성전자 임직원의 집단지성 시스템인 '모자이크(mosaic)'에는 연간 연인원 20만명 이상이 참여하고 200만건이 넘는 아이디어가 올라온다. 클릭수(뷰)로 따지면 5천만회가 넘는다.
삼성의 벤처배양 시스템인 C랩도 마찬가지다. C랩에선 선행과제화 기술이 전체연구개발(R&D) 비중의 30%를 넘었다.
이번 컬처혁신 프로그램의 상당 부분이 모자이크와 C랩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왔다고 한다.
최고경영진에서 '전사적으로 혁신하라'는 구호를 내려보내면 거대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1990년대식 혁신과는 매커니즘 자체가 완전히 바뀐 셈이다.
삼성의 컬처 혁신은 미래 먹거리의 '질'을 다르게 만들 것으로 전문가들은 관측했다.
삼성의 혁신조직인 GIC(글로벌이노베이션센터)를 이끄는 데이비드 은 사장은 3대 신성장 사업으로 모바일 커머스와 IoT, VR(가상현실)을 꼽았다.
VR은 삼성뿐 아니라 구글, MS, 페이스북, 엔비디아, 소니, 인텔 등이 수십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는 분야다.
모바일 커머스 시장에선 알리바바를 비롯해 중국 자본의 기세가 대단하다.
IoT 플랫폼은 전 세계적으로 각각 진영을 구축하고 수십개 IT 기업들이 세 불리기에 나서는 형국이다.
데이비드 은 사장은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사람"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실리콘밸리의 혁신 기업도, 그들의 혁신적 문화도, 열린 생태계도 모두 사람이만들어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삼성의 다운톱 컬처혁신이 권위주의적 비효율 문화에 찌든 한국 대기업 생태계전반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oakchul@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