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열과 자전거…도전과 배려의 두바퀴로 달린다

입력 2016-03-17 09:30
트랜스 알프스 동양인 첫 완주…"도로 공유 의식·문화 절실하다"유럽 골동품 등 자전거 300대 소장…박물관 프로젝트 주목



"자전거가 아니라 배려의 문화를 팔아야 하는 겁니다." 바이클로 아카데미 이미란(46) 원장의 말이다.



구자열(63) LS그룹 회장은 몇 해 전 자전거 유통업을 론칭하던 무렵 매장 운영자들에게 이런 '팁(tip)'을 전해줬다고 한다.



LS그룹은 새로운 자전거 유통문화를 도입하고자 지난 2010년 그룹 계열사인 LS네트웍스[000680]를 통해 신개념 자전거 매장 바이클로(biclo)를 열었다. 지금은 바이클로 사업을 유통부문에서 별도로 떼어낸 상태다.



바이클로 송파점 점장을 맡았던 사이클 국가대표 출신의 이 원장은 "과거 자전거포·자전거방이라고 하면 어두컴컴한 공간에 사람이 발 붙이기도 힘들 정도로 자전거를 빼곡히 쌓아놓은 점포를 떠올리곤 했다"면서 "너무 환해서 선뜻 들어가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환경을 바꿔놓은 공간이 바이클로"라고 말했다.



바이클로에서 자전거를 사면 족히 한두 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한다.



차대번호를 적고 AS정비카드를 만드는 건 물론 기본적인 '라이딩(riding)' 교육까지 받아야 한단다.



그래서 LS에선 '자전거 매장 운영관리사'라는 민간자격증까지 도입했다.



◇ 도로를 공유하다 = 우리나라는 이미 자전거 1천만대 시대에 접어들었다.



최근 한국교통연구원의 통계로는 국내 자전거 운행 대수가 1천22만대에 달했고전체 가구 중 34.7%가 자전거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다 이명박 정부 시절 전 국토를 신경망처럼 연결한 자전거 도로 확충 덕분에 자전거 도로 인프라 자체는 이미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다고 한다.



세계사이클연맹 플랫폼에 한국의 자전거 타기 문화 전파 현황이 모범사례로 보고됐을 정도다.



하지만 자전거는 여전히 도로에서 '최약자'에 속한다.



문제는 자전거에 대한 인식, 그리고 문화의 차이다.



우선 '쉐어 더 로드(share the road)' 정신이 부족하다고 자전거 동호인들은 지적한다.



이미란 원장은 "사이클인들을 만나보면 자전거와 차량이 뒤섞이는 도로에선 차량 운전자들에게서 위협을 받는다는 말을 듣곤 한다"면서 "자전거도 하나의 교통 수단으로서 도로의 일부분을 점유할 수 있다는 '쉐어 더 로드' 정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구자열 회장이 생각하는 자전거의 앞바퀴는 이처럼 바로 '배려의 문화'다.



실제 도로에선 자동차가 가장 빠르고, 그다음 자전거, 그리고 마지막 도보로 움직이는 사람 순이다.



그런데 순전히 속도에 의존해 양보하지 않는다면 도로는 그야말로 약육강식의무대일 뿐이다.



자전거 라이더가 도보 행인을 배려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이 원장은 "자전거를 타면서 배우는 것이 바로 약자 배려의 문화"라고 말했다.



자동차 운전자는 자전거 라이더를, 자전거를 타는 동호인들은 도보로 뛰거나 걷는 이들을 배려할 때 진정으로 삼자가 어우러진 도로 운행 문화를 꽃피울 수 있다는것이다.



대한자전거연맹 관계자는 "자전거도 차량과 같이 도로에서 탈 수 있지만 국민의식은 아직 이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자전거가 도로에서 안전하고차량과 함께 주행할 수 있는 법규 및 제도에 대한 홍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도전의 바퀴 = 구자열 회장은 자타공인 스포츠 CEO(최고경영자)다.



그를 이렇게 만든 사건이 바로 트랜스 알프스 마운틴바이킹 대회다.



트랜스 알프스란 사이클을 타고 해발 3천m대의 알프스 산맥 연봉(連峰)을 18개나 넘어야 하는 죽음의 랠리다. 총 650km를 6박7일간 쉬지 않고 달려야 하기 때문에카레이싱의 파리-다카르 랠리와도 견주어 진다.



구 회장은 2002년 독일에서 개최된 트랜스알프스 산악자전거대회에 참가했다.



발바닥 살갗이 까이는 고통 속에서도 쉴새없이 페달을 밟은 결과 그는 동양인최초로 트랜스 알프스 완주자로 이름을 올렸다.



사실 평소에도 서울 강남 자택과 경기도 안양 LS타워 사이 40km 구간을 사이클로 가뿐하게 주파하곤 한다. 청계산은 사이클을 타고 수도 없이 드나들었고 일주일에 한 두번은 꼭 페달을 밟는 마니아 중의 마니아다.



LS그룹을 세계 3대 전선 업체로 올려놓은 뒤 초전도와 초고압직류송전(HVDC) 등그룹의 신성장동력 사업을 세계 일류 수준으로 이끈 비결 중 하나도 오랜 사이클 경험에서 나온 도전 정신이다.



구 회장은 신입사원들과 어깨를 맞대고 연탄을 나르는가 하면 예고없이 해외 지사로 날아가 현장에서 주재원들과 즉석에서 고민을 나누기도 한다.



모두 사이클 동호인들과 함께 하면서 몸으로 체득한 '도로 경영'의 힘이 '현장경영'으로 이어진 셈이다.



◇ BMX에서 미래를 본다 = 구자열 회장은 LS그룹 회장이 되기 전인 지난 2009년부터 대한사이클연맹을 이끌어왔고 2013년 연임 임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은 직함이 대한자전거연맹 초대 회장이다.



지난해 엘리트 스포츠 단체인 대한사이클연맹과 대표적인 생활체육단체인 전국자전거연합회가 결합해 대한자전거연맹으로 새로 출범했기 때문이다.



구 회장은 자전거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초대 회장에 추대됐다.



체육경기 단체의 한 관계자는 "통상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 단체는 서로 반목하기 쉽다"면서 "국내 경기단체로는 최초로 엘리트와 생활체육 단체가 하나로 통합한 건 자전거연맹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자전거연맹은 올해 연맹 등록 동호인 수가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히 늘어 800여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구 회장이 8년째 한국 사이클을 이끌면서 내건 3대 사업목표는 올림픽 메달획득을 위한 중장기 프로젝트, 자전거 인구 저변확대, 사이클인의 화합과 단결이다.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사업이 바로 BMX 프로젝트다.



BMX(Bicycle Moto Cross)란 트랙, 도로, MTB(산악자전거)와 함께 9개 올림픽 정식종목 중 하나로 총 연장 350m의 굴곡진 경기장을 지름 20인치의 소형바퀴 자전거로 업다운(오르내림)하면서 흥미진진하게 즐기는 레이스다.



BMX가 화두가 되는 이유는 소형 자전거를 쓰기 때문에 만 5세부터 탈 수 있다는점 때문이다.



자전거연맹은 전국 16개 유소년클럽 운영을 지원하면서 BMX 꿈나무를 키우고 있다.



또 BMX 지도자를 육성하고 트랙 인프라 건설도 지자체별로 지원하고 있다.



구자열 회장은 100년 넘은 골동품 자전거 5대를 유럽에서 직접 들여오기도 했다고 한다. 소장해둔 자전거만 300대가 넘는다는 그는 자전거 박물관을 세우는 게 미래 프로젝트 중의 하나다.



배려와 도전의 바퀴로 쉼없이 달려온 구 회장이 '자전거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를 직접 대중에게 전달할 소중한 공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oakchul@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