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저성장 시대 돌입…글로벌 혁신전략 불가피할듯"
국제 유가가 연초부터 가파르게 미끄러지자 국내 주요 그룹들이 사업 확장보다 내실 경영에 주안점을 두는 경영 전략을 짜는데 골몰하고 있다.
이미 대부분 대기업이 올해 저유가를 대비해 경영 목표를 낮춰 잡았으나 예상보다 빨리 유가가 떨어지자 적잖이 당황하는 분위기다. 유가 하락으로 중동 및 신흥국의 불황이 장기화될 경우 수출에 주력하는 우리 대기업들로서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올해 저유가 지속 상황 등에 대비해 이미 판매 목표를 처음으로 낮춰 잡았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생산·판매 목표를 지난해 목표보다 7만대 낮춰 813만대로정했다. 목표치를 하향 조정한 것은 2000년 그룹 출범 이후 처음이다. 저유가 사태로 신흥국 등에서의 판매 부진이 예상됨에 따라 무리한 확장보다는 내실 경영을 하겠다는 취지가 반영돼 있다.
정몽구 회장은 신년사에서 "최근 세계 경제는 중국의 경기 둔화와 저유가, 미국금리 인상에 따른 신흥국 시장의 불안 등으로 저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며저유가 추세를 경계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일시적인 유가 하락에 장단을 맞추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글로벌 판매 전략을 수립하고 일관된 정책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삼성은 저유가 체제가 주력인 전자부문에 직접적인 여파를 몰고 오지는 않지만상황이 지속되면 글로벌 수요처에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유가가 하락하면 물류비, 공장운영비 등 비용절감 효과가있지만 전자산업 특성상 주요 고객 중 중동산유국의 오일머니가 위축될 수 있고 물류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나라의 시장도 움츠러들 수 있다"면서 "그런 부분은 우려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LG그룹은 저유가로 인한 저성장 시대에 주력인 전자·화학부문이 산업구조상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대응 전략을 짜는데 고심하고 있다.
구본무 LG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전자, 화학 등 우리 주력산업이 신흥국의도전을 받으면서 산업 구조상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고 혁신기업들은 이전과 다른사업 방식으로 경쟁의 패러다임을 바꾸며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자칫 안일하게 대처한다면 성장은 고사하고 살아남기 조차 어려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화그룹은 신성장동력으로 삼는 태양광 비즈니스에는 큰 영향이 없고 화학부문은 석유 베이스라 원가가 절감되면서 긍정적인 영향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저유가 상황은 긍정적, 부정적 영향이 반반일 수 있다"면서 "중동 수출비중이 높은 건설 업종에는 악재일 수 있을 것이지만 원자재 가격하락, 유틸리티 비용 감소 등 원가 절감으로 일반적으로는 긍정적 영향도 있을 걸로판단된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저유가 지속으로 발주가 급감할 것을 우려해 올해 매출 목표를 지난해보다 2조7천억원 줄인 21조6천396억원으로 낮춰 잡았다. 기록적인 저유가상황이 지속되면 이미 발주된 해양플랜트 등에 대한 계약 취소가 이어질 수 있어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은 "원점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자"며 비상 경영을선언한 상태다.
LG경제연구원 이광우 책임연구원은 "산유국과 석유개발 사업에 어려움이 예상되고 저유가 국면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은 사업 다변화와 수출 다변화 등에 대한 노력을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추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올해 1월에 유가 등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원자재 수출국중심의 신흥시장 불황 위험도 그대로인 것으로 평가했다.
문병기 무역협회 동향분석실 수석연구원은 "저유가 기조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계속되면서 이제 본격적으로 저유가 시대가 열린 것으로 봐야할 것 같다"며 "저유가는 제품 단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무역 규모 증가에 가장 큰 제약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이종명 경제정책팀장은 "지난해부터 내수는 조금씩 좋아지고 있지만 중국 등 지정학적 리스크는 쏟아지면서 경기회복이 더뎌진 상황"이라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혁신에 대한 압박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팀장은 "구조개혁과 경제혁신을 통해 성장의 모멘텀을 이어나가야 한다"며 "어려운 시기일수록 단기적 성과보다는 장기적인 호흡으로 멀리 내다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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