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실적 하락에 재고율 상승…무섭게 따라오는 중국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일 발표한 우리나라의8월 수출액 규모는 충격적이었다. 1년 전보다 무려 14.7%가 감소한 393억3천만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8월 이후 6년만에 최대 폭으로떨어진 수치다.
삼성전자[005930]의 갤럭시노트5 출시로 반짝 오름세를 보인 무선통신기기 등일부 분야를 제외하고 자동차, 기계, 가전, 평판디스플레이, 섬유, 철강 등 대부분제조업의 수출 실적은 동반 감소세를 나타냈다.
수출 감소세는 제조업 가동률 하락과 재고율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월제조업 평균가동률은 74.7%로 전월보다 0.5%포인트 하락했고 공장에 쌓인 물품의 재고율은 6월 대비 0.1%포인트 상승한 129.2%를 기록했다. 이런 재고율 수치는 2000년대 들어 최고 수준이다. 팔리지 않는 제품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제조업이 위기다. 현재로서는 수렁의 깊이가 가늠되지 않는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전경련이 최근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서 9월 종합경기 전망치는 기준선 100에 못 미치는 95.1로 나타났다. 경기전망을 부정적으로 보는 기업들이 더 많다는 뜻이다.
BSI는 지난 3월 103.7로 정점을 찍은 뒤 4월 97.5, 5월 99.4, 6월 96.4, 7월 84.3, 8월 89.6을 나타낸 데 이어 9월까지 6개월 내리 기준선을 밑돌고 있다.
홍성일 전경련 재정금융팀장은 "중국 리스크로 인해 높아진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기업들에 주문했다.
지난달 말부터 시작된 중국 증시의 폭락세는 이달 들어서도 쉽게 진정되지 않고있다. 이같은 상황과 맞물려 중국 경기의 둔화도 뚜렷해지고 있다.
중국의 수입 규모는 올해 1∼7월 14.6% 감소했다. 중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25%대인 한국의 제조업으로서는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지난 7월 한국의대중국 수출 실적은 작년 같은 달에 비해 8.8%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 경기가 둔화되면서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도 고전하고 있다.
현대차[005380]와 기아차[000270]의 중국 합작법인이 지난달 기록한 판매실적은작년 동월 대비 26.6% 감소했다. 32.8% 폭락했던 7월 성적표에 비해서는 소폭 회복한 셈이지만 중국 토종업체들의 저가 공세 탓에 판매 부진을 만회하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삼성전자의 중국 스마트폰 시장 2분기 점유율도 전분기 대비 1%포인트 하락한 9%에 그쳤다. 화웨이와 샤오미 등 중국 브랜드의 공세에 밀린 것이다.
이들 업체는 중국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삼성과 LG[003550] 등 국내 제조사를 무섭게 뒤쫓고 있다. 삼성은 2분기에 스마트폰 시장에서 1분기와 같은 26.8%의점유율로 1위를 지켰지만 LG는 1분기에 비해 점유율이 0.3%포인트 늘어난 5.8%를 기록하고도 샤오미의 상승세에 밀려 5위로 한 계단 주저앉았다.
2분기에 화웨이(7.6%)와 샤오미(5.9%)는 애플(16.4%)에 이어 나란히 3위와 4위를 차지했다. 특히 화웨이는 중동·아프리카 시장에서 점유율 11%를 기록하며 강세를 보이고 있다. 2년 전의 2.6% 점유율에서 4배 가까이 성장한 것이다. 같은 기간에삼성의 점유율은 53%에서 32%로 줄어들었다.
중국 업체들의 성장세는 우리 기업들에 가히 위협적이다. 독일 베를린에서 최근열린 국제가전전시회 IFA 2015에서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중국 업체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올해 IFA에 참가한 1천645개 업체 가운데 350곳이 중국 업체였다. 5곳 중 한 곳은 중국에서 왔다는 얘기다. 작년보다 무려 30%나 늘어났다.
중국 업체들은 베끼기에서 벗어나 자체적으로 혁신에 힘쓰고 있다. 한국에도 알려져 있는 가전기업 하이얼은 중국뿐 아니라 미국, 호주, 유럽, 일본 등 5곳에서 연구개발(R&D)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화웨이는 매년 매출의 10% 이상을 R&D에 투자한다.
국내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이번 IFA에 참가한 이들 업체들에 대해 "브랜드 인지도 면에서 한국 업체 수준만큼 안되는 것일 뿐 기술적인 면에서는 한국의 95% 이상 수준"이라며 "사물인터넷(IoT) 만큼은 한국 업체보다 훨씬 빨리 갈 수도 있다"고말했다.
전자기기·IT분야뿐 아니라 섬유 등 전통산업 쪽에서도 중국 기업들의 추격은무섭다. 일본은 아직 멀리 있는데 중국은 바짝 다가온 형세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3일 섬유산업의 국가별 기술 수준을 분석한 보고서에서한국이 처한 상황을 여실히 보여줬다.
2020년에 한·중·일의 섬유산업 기술 수준은 일본을 100%로 놓고 봤을 때 한국이 85%, 중국 75%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기술력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추격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한경연은 한·중 간 기술격차가 2010년 20%, 2015년 14%가량의 차이를 보였지만, 2020년에는 10%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에 일본과 한국의 기술격차는 2020년에도 15%의 간격이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LG경제연구원은 지난달 말 '글로벌 기업의 경영 성과, 중국 미국 뛰고 한국은뒷걸음'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세계 5천대 기업에 포함되는 기업 수, 전 세계매출, 이익의 상대적인 비중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분석 결과 글로벌 상위 5천대 기업에 속하는 한국 기업은 2004년 196개에서 2009년 190개, 2014년 182개로 10년 새 14개사가 줄었고 매출 비중은 2004년 3.6%에서2009년 4.1%로 상승했다가 2014년에는 4.0%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익 비중 역시 2004년 3.6%에서 2009년 2.9%, 2014년 2.3%로 10년 동안 1.3% 포인트 줄어들었다.
반면에 중국(홍콩 포함)은 매출 비중이 2004년 2.6%에서 2014년 11.8%로 9.2% 포인트, 이익 비중이 같은 기간 3.9%에서 11.0%로 7.1% 포인트 증가해 가장큰 폭의 성장세를 보였다.
정부는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장래의 먹거리를 창출하기 위해 2020년까지 5조7천억원을 투자해 미래성장동력을 육성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경제전문가들은 성장동력산업이 백화점식으로 나열되지 않도록 '선택과 집중'의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배상근 한경연 부원장은 13일 연합뉴스와 전화인터뷰에서 "과거와 달리 일본 제품은 품질이 좋으면서도 값도 싸지고 중국 제품은 여전히 싸면서도 품질까지 좋아져우리 제품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여기에 세계 경기의 침체가 겹쳐 수요마저 사라지고 있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배 부원장은 "이런 악조건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리 기업은 자기가 가장 잘할 수있는 부문에 핵심 역량을 집중할 수 있도록 사업구조를 과감히 재편해야 한다"며 "정부도 기업들이 미래 수요가 많은 쪽으로 사업 구조조정을 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정비와 금융세제 지원 등 종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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