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억원은 법원판결로 뒤집혀 납부취소
기업들이 정부의 행정지도에 따랐다가 가격담합판정을 받아 지난 10년간 1조2천억원 가량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3분의 1은 법원 판결로 잘못 부과된 것이 인정돼 되돌려받기도 했다.
4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 10여년간 공정거래위원회의 행정지도 관련 담합 심결례를 전수 조사한 결과 공정위는 정부당국의 행정지도를 따랐던 30건의 사업행위에 대해 총 1조1천68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중 법원 판결로 뒤집힌 것만 해도 6건에 총 과징금의 34%인 3천972억원에 이른다. 나머지 상당수는 아직 대법원 판결을 남겨두고 있다.
이들 30건의 관할 행정지도 당국은 금융감독원이 8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옛정보통신부 4건, 산업통상자원부 3건, 문화관광부·농림부·국토해양부·국세청 각2건, 재정경제부·건설교통부·조달청·용인시 등이 각 1건이다.
행정지도란 행정기관이 법률 절차를 따르지 않고 정책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요청, 권장, 주의, 경고, 통고 등을 통해 협력을 유도하는 일을 말한다. 구두에 의한편의적인 이런 행정행위에 호응했다가 담합 제재를 받는 일이 잦아 기업들은 큰 부담을 느껴왔다.
실제 2010년 11개 소주업체들은 선도업체를 따라 가격을 인상했다가 가격담합으로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과 과징금 253억원을 부과받은 뒤 2년 뒤 법원 판결로 납부명령을 취소받은 적이 있다.
업체들은 사실상 국세청의 행정지도를 따르느라 가격 결정권이 없었다며 처분을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대법원은 소주업체들의 담합을 인정하기어렵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국세청이 진로를 통해 전체 소주업체의 출고가격을 실질적으로 통제·관리하고 있는 소주시장의 특성에 따라 소주업체들이 대처한 정도에 불과하다"고밝히기도 했다.
한화생명[088350] 등 12개 생보사들도 금융감독원의 감독조치에 따라 개인보험이자율을 인하한 뒤 공정위로부터 3천630억원의 담합 과징금을 부과받았다가 최근대법원에서 과징금 취소 확정판결을 받았다.
공정위는 지난해 경인운하, 인천지하철 등 18개 공사에 담합 판정을 내려 39개건설사에 담합 과징금 8천496억원을 부과하고 최장 2년간 입찰을 제한한 조치로 건설업계가 사업중단 위기에 직면해있다.
신석훈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팀장은 "실제 정부당국이 만들어준 정책구조하에서 묵시적으로 담합을 할 수밖에 없도록 조장하는 사례가 대부분인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재계는 이런 행정지도와 담합 제재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안으로 먼저사실상 구속력을 갖고 있는 정책 당국의 행정지도를 공정위가 인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정책 당국이 행정지도를 할 때 공정위와 사전 협의를 하도록 하고 이런 행정지도에 대해서는 담합 심사를 배제하거나 처벌을 감경해주도록 하자는 것이다.
또 산업별 특성을 반영해 주요 산업 관련 법령에 관할 행정당국이 행정지도를할 수 있다는 규정을 신설하고 행정당국과 공정위, 사업자 3자 간 행정지도와 관련된 지침을 마련한다면 불확실성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신 팀장은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의 행정지도와 같은 보이지 않는 규제가 법에규정된 규제보다 더 무서운 경우가 많다"며 "기업이 정부방침을 준수했는데 다른 부처에서 부당행위라고 제재하는 '엇박자' 정책을 해소해야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이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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