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비야디, 테슬라와 경쟁…하이얼이 GE 사업부에 눈독"포화시장에선 답 없어"…"신시장은 플랫폼부터 지배해야"
"샤오미(小米)폰이 하드웨어 스펙상으로는삼성폰의 70∼80% 수준은 되는데, 가격은 반값입니다. 애플은 하드웨어, OS(운영체제), 생태계 세 가지를 다 갖고 있고 그만큼 마니아 고객층이 두텁습니다. 결국 하이엔드 경쟁에는 치이고 중국에는 쫓겨 중간에 끼어 있는 형국입니다."(아이엠투자증권 이민희 연구원) "샤오미는 유통 혁신으로 마진 폭을 확 줄였습니다. 애플의 짝퉁 이미지도 있지만 그만큼 혁신 이미지도 강합니다."(산업연구원 김종기 연구위원) 2007년 1월 25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 회의를 마치고 나온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중국은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가는상황에서 샌드위치 신세여서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고생을 많이 해야 하는 것이 한반도의 위치"라고 말한 바 있다.
취임 20년을 맞는 소감을 말해달라고 하자 "앞으로 20년이 더 걱정"이라면서 한말이다.
7년이 흐르면서 이런 우려는 현실로 바뀌었다.
한국 제조업은 이제 샌드위치가 아니라 '넛크래커(nutcracker·호두 까는 기계)'에 낀 상황으로 표현된다.
'샌드위치론'이 선진국과의 기술격차, 그리고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후발국의 추격을 우려한 경고 수준이라면 '넛크래커론'은 후발국의 기술 추격에다 선진국의 역공이 더해져 위기가 실제 상황으로 닥쳐온 개념이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이 올 3월 발표한 주요국의 산업기술 수준은 미국을 100으로 봤을 때, 한국이 83.9, 일본이 94.9, 유럽 94.8, 중국 71.4로 평가된다.
28개 연구개발(R&D) 분야의 592개 세부기술을 평가한 것이다.
아직 중국과 어느 정도 격차를 유지하는 것 같지만, 몇몇 핵심 제조업 영역을살펴보면 얘기가 다르다.
디스플레이 부문의 기술력 격차는 2011년 26.9에서 2년 만에 19.3으로 줄었고반도체는 17.3에서 13.1로 격차가 좁아졌다. IT융합 부문도 14.9에서 11.7로 근접했다.
한국이 미국·일본·유럽을 쫓아가는 보폭보다 훨씬 빨리 중국과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다.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업체 BOE의 투자 규모를 보면, 세계 시장 40%를 점유한 LG·삼성디스플레이도 곧 추격 가시권에 들 것이란 예상이 가능하다.
BOE는 월 10만장 양산 규모의 베이징 8세대 라인에 이어 허베이·충칭에 월 9만장 규모의 8세대 라인을 증설 중이다. 최근엔 국내에는 없는 10세대(2천880×3천130㎜) 라인까지 검토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올해 1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
세계 최대 규모 가전쇼가 펼쳐진 이곳의 중국 가전업체 하이얼(海爾) 부스에서는 55인치 곡면 올레드(OLED) TV가 휘황찬란한 빛을 뿜어냈다. 또 다른 중국 TV업체TCL은 세계 최대인 110인치 UHD(초고해상도) TV로 벽면을 가득 채웠다.
중국 업체들이 불과 1년 전만 해도 신줏단지 모시듯 하던 UHD와 올레드 TV를 이제는 인치 별로 풀라인업을 갖춰 위세를 떨친다.
세계 최대 TV 시장을 보유한 중국 6대 TV 메이저는 엄청난 내수를 바탕으로 글로벌 TV 시장을 주도하는 트렌드세터(trend setter)로 부상했다. 시장조사기관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작년 3분기 이후 세계에서 팔린 UHD TV 2대 중 1대는 중국산이었다.
국내 가전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GE의 제프리 이멜트 CEO가 130년 전통의 가전사업부를 시장에 매물로 내놨다는 보도가 나오자 전혀 관심 없다고 잘라 말했다.
삼성, LG가 북미시장에서 월풀과 1위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데 5위권에 처진 GE가전을 사들여봐야 무슨 시너지가 있겠느냐는 논리다.
그렇지만, 하이얼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관계자는 "하이얼이 GE 가전사업부를 산다면 그동안 뒤처진 비즈니스 관행을일거에 혁신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칭다오 냉장고로 출발한 하이얼은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의 소매기준 백색가전점유율에서 2009년부터 작년까지 5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냉장고, 세탁기는 글로벌 점유율 12∼15%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에디슨전기가 모태인 GE의 브랜드 효과까지 흡수한다면 프리미엄 가전 시장에도충분히 통할 만하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중국 IT 기업들은 지난해 317건의 인수합병(M&A)을 성사시켰다. 세계 PC시장 1위 레노버(聯想)가 모토롤러를 구글로부터 29억 달러에 사들였을 때 글로벌 IT 업계가 경악했던 건 시작에 불과했다.
중국의 전기차·배터리업체인 비야디(比亞迪·BYD)의 왕촨푸(王傳福) 회장은 "테슬라 전기차는 부자들의 장난감에 불과하다"고 일갈한 것으로 유명해졌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2008년 지분 10%를 매입해 투자업계의 관심을 끈 비야디는 이제 테슬라 모델S, BMW i8에 필적할만한 전기차를 만든다.
가끔 테슬라와 사양이 비교되기도 한다. 배터리 효율 등에서 뒤지는 면이 있지만 1억원대 테슬라 전기차의 3분의 1 가격으로 전기차 대중화를 선언했다.
중국의 바오산(寶山) 철강은 지난해 9월 한국GM의 1차 협력사인 GNS와 경기도에자동차용 강판 가공공장을 준공해 가동하고 있다.
자동차 강판은 부위에 따라 강도를 달리해야 하기 때문에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는 고부가 철강제품이다. 고로의 쇳물 단계부터 성분을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오산 철강은 이미 한국GM에 자동차용 냉연강판을 공급하고 있다. 물량이 포스코[005490]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세계 조강 생산능력 1위 중국의 고급강 시장공략은 이미 위협 수준을 뛰어넘었다.
고급차에 쓰이는 초고장력 강판, 극저온 해양플랜트용 강재 등 차세대 고부가가치 철강재 시장까지 노릴 수준이다.
조선업은 넛크래커 구조가 다른 제조업과는 딴판이다.
중국 조선업체들은 2012∼2013년 두 해 연속 선박 수주량, 건조량, 수주잔량 등3대 지표에서 1위를 휩쓸었다.
2위를 달리던 한국 조선업체들은 지난 4월과 6월 두 차례 월간 실적에서 일본에추월당하고 3위로 내려앉았다.
일본을 쫓아가다 중국에 쫓기는 게 아니라 중국을 쫓아가고 일본에 쫓기는 '역넛크래커 구조'로 새로운 양상의 압박을 받고 있다.
이승우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조선·철강·자동차 같은 산업에서도 중국이빠르게 발전하고 있는데 사실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면서 "중국이 이들 산업에 발을담그기 시작한 것이 재앙"이라고 말했다.
시장이 이미 성숙된 전통적 제조부문에서는 '넛크래커 딜레마'를 극복할 묘책이사실상 없는 셈이다.
결국, 넥스트 아이템을 준비하지 않고서는 돌파구가 없다.
산업통상자원부 IT·전자·반도체 부문을 총괄해온 김정일 과장은 "넥스트 아이템은 3D 프린팅 시장도 있지만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본다. 5년 후에 사람들이 전부구글글래스 같은 걸 쓰고 다닐지 모를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산업연구원 김종기 연구위원은 "새로운 시장이 열리면 플랫폼을 지배해야 한다.
OS나 플랫폼을 혁신하지 않고 제품만 낸다고 성공하는 신시장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중국 스마트폰 1위 샤오미도 내수용 스마트폰에 안드로이드 오픈소스 프로젝트(ASOP) 기반의 독자적인 플랫폼을 사용한다. 샤오미스토어 등 자사 브랜드를 붙인 플랫폼 구축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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