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경영인들 잇단 급여 반납…"제도 본질 살려야" 목소리도
대기업 임원 연봉이 일제히 공개된데 따른 후폭풍이재계 전반에 거세게 불고 있다.
사심 섞인 경영 판단 때문에 사법처리됐거나 회사가 초라한 경영성과를 냈는데도 거액의 급여를 챙긴 일부 대기업 임원들의 사례가 드러나면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는 것이다.
재계는 여론 흐름을 돌릴 묘수를 찾느라 부심하고 있다. 일부 오너 경영인들 중에는 지급된 급여를 반납하거나 무보수 근무를 선언하는 사례가 잇따라고 있다. 해당 기업들은 이런 결정이 여론 무마용은 아니란 점을 부각시키느라 애쓰고 있다.
산업계 일각에선 경영 투명성 제고를 위한 연봉 공개 제도가 본질과 다른 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전날 임원 연봉을 공시한 뒤 언론 보도와 여론 흐름을 주시하고 있다.
적나라한 수치로 드러난 연봉액에 대한 여론은 엇갈렸다. 경영성과에 상응하는지, 거저 챙겨간 거액의 돈인지 등 평가는 혼재했다.
하지만 경영상의 비리로 유죄 판결이 확정된 경영인과 영업적자가 난 회사의 임원이 거액의 연봉을 받은 사실에는 비판 일색이었다. 6·4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과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올해 들어 다소 열기가 수그러진 경제민주화 논의를 재점화할 이슈로 삼을 만한 국면이다.
이에 따라 일부 선진국에서 논의되는 대기업 임원 급여 상한제도나 이번 연봉공개에서 제외된 미등기 임원에 대한 연봉 공개 등을 추진하자는 주장이 꼬리를 물을 것으로 점쳐진다.
재계는 진화에 나섰다. 일부 오너 경영인들의 잇따른 급여 반납 선언이 눈에 띈다. 김승연 한화[000880] 회장은 지난해 급여 331억원 중 형사 사건으로 법정구속되면서 경영 참여가 어려웠던 2012년 이후의 급여 200억원을 이미 돌려줬다고 한화그룹측은 밝혔다.
배임 등 혐의가 확정된 지난달 등기이사직 일괄 사퇴를 결정한 최태원 SK그룹회장도 사상 최대의 성과를 냈던 SK하이닉스[000660]를 비롯한 계열사의 지난해 성과급을 받지 않기로 했고, 올해부터 SK㈜와 SK하이닉스에서 무보수 집행임원으로 일하겠다고 선언했다.
주력 계열사 GS건설[006360]이 영업적자를 냈던 GS그룹의 허창수 회장도 악화한작년 실적을 고려해 올해는 연봉을 대폭 삭감할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는 이런 흐름이 비난 여론을 의식해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최 회장이 성과급을 받지 않기로 결정한것은 올해 초이고 무보수 집행임원으로 남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지난달 초"라며 "연봉이 공개된 후에 나온 결정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한화그룹 관계자 역시 "급여 반납은 이미 완료돼 있던 것으로, 회사가 어려울때 경영에 참여하지 못한 데 대해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해명에도 거액 연봉을 둘러싼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는 모습이다. 더구나실적 부진까지 겪은 회사에서는 여론이 꿈쩍 않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의 경우, 지난해 당기순손실 427억원을 기록했는데도 오너 경영인인 박찬구 회장은 42억4천100만원의 연봉을 수령한 것으로 나타나 여론 악화에 일조했다.
특히 이 회사의 전문경영인인 김성채 대표이사의 지난해 연봉은 7억800만원에그치면서 적자 기업이 오너 경영인에게 과도한 급여를 줬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금호석유화학의 박 회장은 형제간인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박삼구 회장측과 고소·고발, 상표권을 둘러싼 소송 등으로 골육상쟁의 갈등을 벌이고 있는 당사자이기도하다.
재계에선 당장 반전을 만들기에 역부족이라는 표정이 역력하다. 다만 연봉 공개제도의 본질은 여론 재판이 아닌 경영 투명성 제고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게 나온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연봉 공개의 취지가 누군가에게 돌팔매를 하라는 뜻은 아니지 않으냐"면서 "주주들이 투명하게 보고받고 임원 연봉 총액을 승인했던 사실은가려지고 특정 인사의 연봉액만 도마에 오르는 것은 제도 취지를 못 살리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 다른 재계 인사는 "각 기업들은 밀실에서 임원 급여를 정하는 게 아니라 당해 영업이익률 등 여러 지표를 마련해 놓고 정한다"며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우리기업들의 임원 급여 산정이 자의적이지 않고 그 액수도 적다"고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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