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항로와 비교해 거리 6천672㎞, 시간 열흘 단축'이익 낼 수 있나' 상업운행 측면에서는 성패 논란
22일 오후 3시 30분 전남 광양시 광양항 사포부두.
내빙(아이스 클래스) 유조선 '스테나 폴라리스'호 앞에 마련된 단출한 행사장에선 국내 선사가 운항한 상선으로는 처음 북극항로를 시범운항하고 무사히 돌아온 이배의 입항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다.
북극해를 거쳐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뱃길로 화물을 실어나른 상업 운송이성공한 것이다.
스테나 폴라리스는 여천NCC가 수입하는 나프타 4만4천t을 러시아 우스트루가항에서 선적해 공장 바로 옆 광양항까지 1만5천524㎞의 뱃길을 운항한 뒤 이날 아침항구에 접안했다.
지난달 16일 우스트루가항을 출항한 지 35일 만이다.
스테나 폴라리스호는 출항 12일 뒤 북극항로에 진입했고 이후 러시아 국적 쇄빙선이 인도하는 뱃길을 따라 12일을 더 항행해 북극해를 벗어났다. 이어 베링해와 오호츠크해, 동해를 거쳤다.
이 배에 동승해 북극항로 운영 노하우를 익히는 임무를 수행한 이승헌(30) 해기사는 "국내 첫 북극항로 운항을 무사히, 성공적으로 마쳐서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고 밝혔다.
북극항로는 기후변화의 '선물'이다. 환경 재앙으로 불리는 기후변화로 인해 여름철이면 북극의 일부 얼음이 녹으면서 뱃길이 한시적으로 열리는 것이다. 역설적인선물인 셈이다.
북극항로의 장점은 유럽에서 아시아를 오갈 때 지금껏 이용해온 남방항로에 비해 거리와 시간이 단축된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유럽에서 수에즈 운하와 인도 남쪽인도양을 거치는 남방항로로 운행할 경우 2만2천196㎞의 뱃길을 45일간 운항해야 광양항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을 거리로는 6천672㎞, 시간으로는 열흘을 단축했다.
그렇지만 북극항로가 아무나 쉽게 오갈 수 있는 뱃길은 아니다. 암초처럼 떠나는 얼음과 빙산이 선박 안전을 항상 위협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러시아의 얼음깨는 배인 쇄빙선이 앞에서 인도하고, 뒤따르는 화물선에도 '얼음길 도선사'(ice pilot)가 승선해 길을 안내해야 한다.
특히 유럽에서 아시아로 올 때를 기준으로 북극항로의 진입로 격인 카라해 부근과 진출로 격인 베링해협 지역에 얼음이 특히 많아 각별한 주의와 주의가 필요하다.
북극항로는 총 연장이 4천254㎞인데 이번 스테나 폴라리스호는 이 구간을 통과하는데 모두 12.7일이 소요됐다. 얼음이나 빙산과의 충격에 어느 정도 견디도록 만들어진 내빙선이지만 그럼에도 큰 충격을 받을 경우 배가 파손되거나 좌초할 수 있기 때문에 약 10노트(시속 18.5㎞) 정도의 느린 속도로 운행해야 했다.
이 배는 현대글로비스[086280]가 스웨덴 선사 스테나 벌크로부터 용선(배를 빌림)한 내빙 유조선이다.
내빙선은 얼음을 뚫고 운항하는 배로, 두꺼운 철판과 프로펠러 보호장치, 충격에 견디는 페인트 등을 갖춰 얼음과 부딪히는 충격도 어느 정도까지는 버틸 수 있다.
주로 북유럽이나 러시아 등 얼음 뱃길을 항해해야 하는 나라의 선사들이 운영하고 있다. 국내 선사 중엔 이 배를 보유한 곳이 하나도 없어 스웨덴 선사로부터 빌려북극항로 운항에 나선 것이다.
김진옥 현대글로비스 해상운송실장(전무)는 이번 운항과 관련해 "쇄빙선이 늦게도착하는 바람에 이틀을 기다리면서 당초 계획보다 운항 일정이 조금 늦어졌다"며 "하지만 이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북극항로의 마지막 구간인 베링해 근처에 왔을 때 예상밖으로 얼음이 일찍 두꺼워져 있어서 좀 놀랐다"며 "그래서 항로를 일부 수정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번 항행이 상업적 관점에서는 실패 아니냐는 논란도 있다. 글로비스가운항 결과 손해를 봤다면 상업 운행으로선 밑지는 장사를 했으니 실패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진옥 전무는 "금전적인 큰 손해는 없지만 일한 대가는 못 받았다"고말했다. 손실을 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익을 남기지도 못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현대글로비스는 북극항로 개척 사업은 당장의 단기적인 수익만으로 성패를 가늠할 사안이 아니란 입장이다.
한국이 지난 5월 북극 개발을 주도하는 북극이사회의 정식 옵서버 자격을 따냈는데 이를 유지·강화하려면 적극적인 북극 개발 활동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글로비스 관계자는 "특정 항로의 수익성은 그 항로가 정기항로로 안정적으로 운영될 때 확보된다"며 "앞으로 기후변화가 진전돼 북극항로를 이용할 수 있는기간이 확대되고 항로도 정기화되면 수익성이 점점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북극항로의 개발과 이용은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보고 투자해야 할사업"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입항식 행사에는 손재학 해양수산부 차관, 이성웅 광양시장, 권종수여수광양항만공사 사장 직무대행, 김경배 현대글로비스 사장, 카를 요한 하그만 스테나 해운 그룹 회장, 전기정 해양수산부 해운물류국장, 최보훈 여천NCC 공장장, 이희봉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청장, 사사 스테파노빅 스테나 폴라리스호 선장 등이 참석했다.
정부는 김경배 사장과 카를 요한 하그만 회장 등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현대글로비스는 이번 시범운항 선박에 승선한 수석항해사가 습득한 북극항로 운항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국과 유럽 간 신규 항로 개발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현대글로비스 관계자는 "사업 기회가 확인되면 내빙 탱커선·LNG(액화천연가스)선이나 쇄빙선 투자도 검토하고, 북극 자원 개발 및 에너지 소송 등의 북극사업 참여 방안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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