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경제민주화 이은 상법개정안 핵폭탄되나 우려>

입력 2013-08-22 15:33
"기업 경영권 농락 우려" vs "진작 경영투명 조항 시행하지"



경제민주화 법안의 파고가 낮아지자마자 찾아온정부의 상법 개정안에 대한 재계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경제민주화 법안이 주로 기업의 불공정 행태 측면에 초점을 맞춘 '다발탄'이라면 상법 개정안은 기업 지배구조 측면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어 우리나라 기업의근간을 송두리째 바꿀 '핵폭탄'으로 평가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19개 경제단체는 22일 현재 논의 중인 상법 개정안이 우리기업들에 획일적인 지배구조를 강요해 정상적 기업의 경영권도 위협할 수 있다며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재계는 당초 대주주의 전횡을 견제하고 소액주주의 권한을 보호한다는 취지에서출발했던 상법 개정안이 기업에 자율 선택권을 줬던 각종 제도적 장치 도입을 강제의무화해 국내 기업 및 경제 현실을 무시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통상 경제계의 입장 전달은 경제5단체가 '총대'를 멨던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이번에는 한국시멘트협회,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등 14개 업종별 단체도 대거참여, 경제계의 우려가 심각함을 보여줬다.



하지만 자율 선택권이 주어졌던 경영투명성 규정을 기업들이 미리 능동적으로시행하지 않고 있다 대기업 총수들이 대거 불법행위로 구속된 마당에 경영권 방어가어려워진다고 이를 반대하는 것에 대한 시각도 곱지 않다.



◇ 재계 "감사위원 분리선출 조항이 경영권 위협 도화선" 상법 개정안 중에서 재계가 가장 우려하는 제도는 감사위원을 선출할 때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항목이다.



현재는 이사회 구성원 중에서 감사위원을 선임토록 하고 있는데 개정안에 따라대주주의 의결권을 3% 이내로 제한해 별도로 감사위원을 선임하게 되면 경영진 선임에 있어 대주주의 영향력이 대폭 축소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감사위원회 선임 과정은 모든 이사를 먼저 선출한 뒤 이들 중 감사위원을 선임하는 일괄선출 방식을 채택하고 있어 의결권 제한 규정이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이에 따라 2대, 3대, 또는 4대 주주들이 손잡고 최대주주에 맞서 경영권을 장악하거나 외국계 펀드가 기업 경영권을 농락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 경제계가 우려하는 대목이다.



특히 외국계 펀드는 지분 쪼개기를 통해 3% 의결권 제한 규정을 피해갈 수 있다. 이들 외국계 펀드가 규합해 자신들의 뜻에 맞는 이사를 선임할 경우 기업에 대한경영권 간섭이 명약관화하다는 주장이다.



소버린, 칼 아이칸 등 외국계 투기자본의 경영권 간섭으로 국내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었던 과거 경험도 상기시켰다.



예컨대 이사 7명으로 구성된 이사회에서는 사외이사가 과반수여야 하기 때문에3명만이 사내이사인데 소액주주 몫 1명을 제외한 2명의 사내이사에 감사위원으로 선출된 펀드 측 대표가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 교수는 "이는 기업사냥꾼이 사내이사인 감사위원을기업의 심장에 심어놓게 되는 꼴"이라며 "이는 상장 대기업은 적을 심장에 품고 살아가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 경영 투명성 강화 vs 기업 경영권 위협 상법 개정안의 집중투표제 및 집행임원제 의무화 규정도 마찬가지로 재계의 비판을 받고 있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이사진을 선임할 때 1주당 1표씩 의결권을 주는 '단순투표제'와 달리 선임되는 이사진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로, 소액주주 대표가 사외이사로 진출하는 길을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법안 찬성론자는 지배구조와 경영의 투명성을 위해 사외이사제가 도입됐는데 그간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던 만큼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소액주주들이 자신이 원하는 이사 후보에 의결권을 몰아 선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경제계는 주식회사제도에 따른 다수결 원칙에 위배되는 것은 물론이고 감사위원 분리선출을 통해 이사회에 진출한 외국계 펀드 등의 의결권을 강화해주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감사위원 강제 분리선출과 집중투표제를 통해 이사회를 장악한 외국계 펀드가 집행임원(CEO)까지 선임한다면 소수의 지분으로 기업 전반에 대한 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업들은 우려하고 있다.



감사위원회를 둬야 하는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대규모 상장사는 집행임원제도가 의무화되면 대표이사를 둘 수 없게 되고 이 상장사의 지배주주는 이사회 의장이나 집행임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배상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외국계, 또는 투기성 자본은 이사 선임을 빌미로소액의 자본으로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간섭할 수 있게 된다"며 "우리와 경쟁하는주요 국가 중 이런 제도를 의무화한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경제단체들은 집행임원 제도가 상법에 도입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제도의 효과를 좀 더 지켜봐야지, 성급히 덧칠하려고 했다가는 누더기 법안을 면치못할 것이라고 공박했다.



◇ "소수주주 권한 보호해야" vs "지배구조 선택권 보장해야" 이와 함께 도입 여부가 논의되고 있는 다중 대표소송제도는 자회사의 부정행위가 드러났을 경우 지분 1% 이상의 모회사 주주는 직접 자회사의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재계는 외국계 투기자본이 악의적 소송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이를 빌미로 경영권에 개입할 가능성, 이들이 소송을 제기하고 증거조사 절차나 정부열람권 행사등을 통해 자회사의 기밀장부를 유출할 위험성 등을 내다보고 있다.



상법 개정안은 또 주주가 1만명 이상인 상장회사에 대해서는 소수주주의 주총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전자투표제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경제단체들은 이번 건의문에서 "주주총회에 소수주주 참여가 저조한이유는 직접적 경영 참여보다는 일시적 투자수익에 더 관심을 갖기 때문"이라며 "본인확인절차 등에 기술적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온라인에서 확인되지 않은 루머에 의한 몰표가 발생하는 등 투표 결과의왜곡 가능성이 있고 2, 3대 주주가 집중투표까지 청구한다면 인터넷을 통한 여론몰이로 현 경영진에 반대하는 세력을 결집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상법 개정안에 대한 경제계의 전반적인 시각은 "체형은 고려하지 않은 채 모두에게 똑같은 디자인과 크기의 옷을 입도록 강요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박찬호 전경련 전무는 "상법 개정의 취지는 경제계도 공감하는 바이지만 소수주주권 보호, 감사의 독립성을 위한 수많은 기존 제도적 장치의 정착을 위해 노력하는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최근 상법 개정안에 대한 재계의 반발이 커지자 쟁점 조항을 완화하는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제계는 입법예고가 이번 주 끝나면 설득 작업과 함께 입법 결과가 미칠 영향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칠 계획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상법 개정안이 도입하는 제도 대부분이 외국에서도 도입사례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업들이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을 겪는이 시기에 이런 실험적 법안을 시행할 필요가 있는지 의아스럽다"고 말했다.



jooho@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