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연장 피해금액 1조 넘을듯…계약금 조정승인은 29%노무비 70∼80% 주고 인건비 후려쳐…차액은 업체부담
정부나 공공기관, 공기업이 발주한 건설 현장에서 '을(乙)'의 원성이 잇따르고 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발주기관의 잘못으로 공사가 지연되더라도 간접비 정산이나계약금 조정 승인을 거부하기 일쑤다.
칼자루를 쥔 '갑의 횡포'가 지속되고 있지만 정부·지자체 공사를 수주한 건설업체 입장에선 여간해서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운 구조다.
공기업도 '슈퍼갑' 노릇을 하기는 마찬가지다.
건설현장에서 하도급 업체를 괴롭힌다는 민원이 비일비재하다. 한 발전회사 민원창구에는 "발주처 감독자가 막말에다 협박을 하고 짐승처럼 노려본다"는 민원이제기돼 최근 감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 공기 늦어지면 손실은 늘 시공사 부담 건설업계에서는 토목공사 등 대형 국책사업에서 정부, 공기업, 지자체 등 발주기관의 귀책사유로 공기 연장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음에도 손실 부담은 시공사에전가되는 부당한 상황이 반복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공사 수행 차질과 파행적 현장 운영 등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내 4개 대형 건설사들은 작년 3월 서울시를 상대로 지하철 7호선 연장구간 공사 지연으로 들어간 간접비 141억원을 지급해달라며 서울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 건설사는 해당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서울시가 예산 문제로 공사비를제때 주지 않아 공사기간이 1년9개월이나 연장된 탓에 임금 등 141억원의 간접비가추가로 들어갔으나 시 당국이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소송은 이르면 9월께 1심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 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정부기관이나 지자체가 발주한 공공공사에선 저가공사가 많아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며 "작년 295개 공공공사 현장에서 공기 연장으로 발생한 간접비를 인정받지 못한 금액이 4천204억원이었고 조사 대상에서 빠진 현장까지 합치면 금액은 1조원이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공공공사 현장 3곳 중 1곳 이상에서 발주기관 탓에 공사 기간이 연장되고있었고 발주기관 10곳 중 7곳이 계약금 조정 승인을 거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최근 시공능력평가 1등급 건설업체 대상 설문 결과 최근3년간 진행된 총 821개 공공공사 현장에서 발주기관 귀책사유로 계약기간이 연장된곳은 총 254개로 전체의 30.9%였다.
공기 연장은 예산부족, 사업계획·설계 변경, 용지보상 지체로 인한 공사 착수지연 등 발주기관의 귀책사유 때문이지만, 발주기관이 계약금액 조정을 승인한 사례는 전체의 29.9%에 불과했다.
공기 연장이 발생한 사업장 254개 중에서 발주기관의 예산 부족으로 공사가 늦어진 사례가 전체의 48.8%를 차지했고 사업계획과 설계 변경은 23.6%였다.
최근 3년 동안 수행한 공공공사에서 발주기관 책임으로 발생한 공기 연장의 평균 기간은 1년 이상 2년 미만이 전체의 절반이었다. 발주기관 책임으로 인한 공기연장으로 간접노무비와 제경비 등 비용 손실이 발생한 비율은 29.7%로 조사됐다.
이영환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 등 공공기관들이 예산 부족 등 자체적인 잘못으로 건설사에 손실을 끼치고도 계약금액 조정 신청을 하면 10곳 중 7곳은이를 거부한다"고 지적했다.
국가계약법상 공사기간 변경 등의 경우 계약금액을 조정할 수 있지만 정부가 구체적인 추가 항목이 없다는 이유로 예산에 반영해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 인건비 70∼80%만 주는 '후려치기'도 한국전력[015760]과 한국수력원자력 등은 공사를 발주할 때 기준에 못 미치는노무비를 지급하는 등 '인건비 후려치기'로 원성을 사고 있다.
일반적으로 공사원가를 계산할 경우 대한건설협회가 공종별로 조사해 공표하는시중 노임단가 또는 실거래가격을 적용해야 하는데 한수원 등은 자체 조정률을 대입해 기준의 70∼80%에 불과한 노무비만을 지급한다는 설명이다.
석공의 경우 시중 노임단가에 따른 하루 품삯이 11만9천30원이지만 한수원 기준으로는 8만9천415원 밖에 받을 수 없다. 약 3만원의 차액은 업체 부담이다.
중견건설업체 A사 관계자는 "기술자를 부리면서 돈을 덜 줄 수도 없고 공사 한건이 아쉬운 처지에 한전·한수원 같은 슈퍼갑 발주처에 규정대로 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어 중간에서 손실을 떠맡게 된다"고 토로했다.
한전·한수원 등은 업계의 노무비 정상화 요구에 대해 예산이 부족할 뿐 아니라기존 공사비를 근거로 새로운 공사 예산을 잡는 실적공사비 제도에 따라 하향 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업계는 해마다 오르는 물가와 인건비를 고려하지 않고 과거 공사비만을기준으로 원가 절감에 나서는 관행이 불합리하다고 맞서 갈등이 지속될 전망이다.
◇ "막말·협박도"…"하청업체가 죄인인가" 불만 지난 4월 공기업인 B발전회사 민원창구에 접수된 제보에는 하도급 업체 직원들의 불만이 노골적으로 표출됐다.
특정업체 물건을 쓸 것을 강요하면서 막말과 협박을 하는 건 예사라는 것이다.
"죄인 취급을 당해 몹시 불쾌하다", "짐승 보듯이 인상을 쓰고 쳐다보지 않는다"는 등의 표현이 나온다.
이 회사가 충남의 한 화력발전소 건설현장에서 안전장구를 검수하는 과정에서문제가 생긴 것으로 파악했다.
B사의 민원 자체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 직원은 하청업체 직원에게명함 2장을 주면서 특정업자를 "잘 봐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직원은곧 인사위원회에 회부될 예정이다.
B사는 자체 조사 결과 막말·협박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제보의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인 점에 비춰 향후 사업에서 불이익을 예상한 하도급 업체 쪽에서 감사가 시작되자 입을 닫았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B사 관계자는 "막말과 협박이란 건 있을 수 없다"며 "명함 2장 건네며 부탁만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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