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쌓인 위기, 내년 대선 앞두고 속도 붙여야전문가들 "경제원칙에 맞게, 신속히 진행해야"
정부가 26일 '제3차 산업경쟁력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를 진행하고 주요 산업별 계획을 발표함에 따라 구조조정에도 한층 속도가 불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사즉생(死則生)'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하면서 구조조정을독려하고 나섰다.
그러나 강력한 의지의 표현과 달리 이날도 구체적인 기업별 계획은 나오지 않아, 또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어지다가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구조조정은 최대한 빠르게 진행할수록 좋다"며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구조조정이 올 연말까지는 성과를 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 해운업 내달이 시한…전체 구조조정도 올해가 '골든타임' 해운업은 사실상 올 상반기가 '골든타임'으로 정해진 상황이다.
채권단 자율협약이 진행 중인 현대상선[011200]은 내달 초까지 해외 선주들과의용선료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
현대상선의 구조조정은 해외 선주들이 용선료 인하에 동의하고, 사채권자들도채무재조정에 합의하고, 채권단이 조건부 자율협약으로 지원하는 것이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진행돼야만 성공할 수 있는 구조다.
이에 실패한다면 법정관리로 들어가고, 이 경우 해운동맹(얼라이언스)에서 소외돼 사실상 청산의 길로 접어든다.
25일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한 한진해운[117930] 역시 동일한 틀에 따라 구조조정이 진행된다.
더구나 글로벌 해운시장에서 얼라이언스가 급속히 재편되는 상황이라, 두 회사는 이른 시일 안에 구조조정을 진행하며 얼라이언스에 남을 길을 찾아야 한다.
정부는 이날 아예 "용선료 협상시한은 내달 중순"이라며 "협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남은 절차는 법정관리뿐"이라고 재촉하고 나섰다.
해운업과 함께 경영상황이 계속 악화하는 조선업도 구조조정에 속도를 붙이지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대우조선·삼성중공업·현대중공업 등 대형 3사는 무리하게 뛰어든 해양플랜트에서 막대한 손해를 입어 지난해 무려 8조5천억원의 적자를 냈다.
여기에 국제 교역량의 증가세가 둔화하고 저유가까지 겹쳐 대형 3사의 올해 1분기 선박 수주는 3척에 불과했다.
취약업종으로 분류했던 석유화학, 철강, 건설은 그나마 사정이 다소 나은 편이지만 경쟁 격화 등으로 앞날은 그리 밝지 않다.
정부는 이날 조선업체 구조조정 추진과 관련해 조선사들의 주채권은행을 소집,자구계획 협의에 돌입했다.
조선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구조조정의 명확한 시한을 밝히지 않았지만, 사실상 올해를 놓치면 어려워진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내년에는 대통령 선거 국면에 돌입해 정치권에서 대대적 감원 등이 몰고 올 후폭풍을 떠안지 않으려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여야의 원론적인 합의에도 불구하고 각론으로 들어가면 어려워지게 마련"이라며 "더구나 내년에는 대선이라는 이슈가있어 구조조정이 정쟁의 요소가 되기 때문에, 아무리 늦어도 올해 안에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과거 기아자동차[000270]의 부실 이슈를 봐도 1997년 대선 전에 구조조정을 진행했어야 했는데 정리를 못해서 큰 피해를 입었다"고 설명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도 "명확한 시한을 정할 수는 없지만, 방안의 수립부터회생과 정리까지 최대한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 3~5년째 이어진 '위기 신호'에도 늦어진 구조조정 자연스럽게 이렇게 긴급한 상황에 오기까지 왜 주요 산업의 구조조정이 늦어졌는지, 그리고 이렇게 지지부진하던 구조조정이 갑자기 속도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한의문이 생긴다.
실제로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어 각종 자구계획을 실행한것은 벌써 2013년부터의 일이다.
조선업계도 2010년 성동조선과 SPP조선이 채권단 공동관리에 들어간 것을 필두로 중소형 조선사들이 줄줄이 어려움에 처해 산업 전반에 '적신호'가 들어온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대우조선은 아예 십수 년째 산업은행의 자회사로 운영되는 상황이다.
1999년 대우사태 이후 산업은행과 자산관리공사(캠코)의 출자전환을 받아 새 출발 한 대우조선은 2001년 워크아웃에서 조기 졸업했지만 번번이 새 주인을 찾는 데에는 실패했다.
구조조정의 최일선에 서 있는 국책은행에서 오랫동안 관리해 왔지만, 조선산업의 업황 부진과 '해양플랜트 악재'가 겹쳐 지난해에만 5조5천억원의 적자를 내고 또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대우조선에서 단순히 대규모 부실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분식회계 의혹까지 생겼다는 것은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정부가 전혀 관리 능력을갖추지 못했다는 뜻"이라며 "실제 경영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퇴직 임원들을 위한 자리 정도로 여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창현 교수는 "어느 날 갑자기 찬바람이 확 불어온 느낌도 들지만, 경영진이객관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경우 주변에서 '살아날 수 있다'고 왜곡된정보를 주는 이들의 말을 듣다 보니 끊어야 할 때 끊지 못하고 질질 끌려간 것 같다"며 "조선사는 수주산업의 특성상 이미 수주해 둔 물량으로 운영하다 보면 이후 일감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 과감한 판단을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표현하고는 있지만, 앞으로 진행될 구조조정도 속도를 낼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감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당장 이날 금융위 발표에는 구체적인 기업별 '액션플랜'이 없어 이후 작업도 더뎌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5대 취약업종 중 조선·해운업 외에 건설·철강·석유화학 등 나머지 3개 업종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않은 것을 두고 기존 방침에서 오히려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재원마련 방안에 대해서도 정부는 "조만간 논의하겠다"고만 밝혔을 뿐 뚜렷한방안을 발표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협의체 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재원조달의 경우 소스는 재정당국이나 한국은행 둘 중에 하나"라면서도 "구조조정 과정에서 손실이 확정되지않은 상황에서 국책은행 자본을 얼마나 확충할지는 말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부실기업이라도 모든 채권단이 모여 합의된 방법으로 요구를해야 한다. 기업의 생사여탈이 걸린 문제인 만큼 과정을 충분히 거쳐야 한다"며 "왜신속하게 되지 않느냐고 묻지만, 이런 과정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경제원칙에 맞게 추진해야" 전문가들은 속도도 중요하지만 정치논리를 배제하고 원칙에 따라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윤창현 교수는 "아쉬운 기업 하나라도 살리겠다고 하다가 모두가 완전히 망하는수가 있다"며 "구조조정은 경제논리를 기준으로, 피도 눈물도 없이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야당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벌써 정치논리의 개입이 시작된 것 같다"며 "외부의 입김에 좌우되지 않고, 일정 인력의 방출이 필요하다면 방출하되 방출된이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고민하고 국회에서는 재원 마련을 도와주면 된다"고설명했다.
아울러 "조선산업의 경우 각 기업의 방위산업 부문을 끌어내서 하나로 묶어 공기업화하고, 나머지 부문은 살릴 것과 버려야 할 것을 나눠 정리하는 것이 방법일수 있다"며 "최대한 빨리 계획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성태윤 교수도 "정책금융기관이 경영권을 오래 가지고 있으면 구조조정의 효과가 없기 때문에 그냥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대우조선의 경우 현대나 삼성 등 정상적인 조선사에 일부 분할하는 방식으로 넘기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업에 대해 정부가 실업급여, 재교육 등을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성인 교수는 "기업과 금융기관 모두 '버티면 정부가 국민의 돈으로 도와줄 것'이라는 생각에 구조조정이 지체됐던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개인 채무에는 지나칠정도로 차갑게 책임을 추궁하면서 기업에는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정부는 손을 떼고, 법정관리에 가야 하는 기업은 법정관리로 회생절차에 돌입하도록 해서 시장 참가자들의 판단에 구조조정을 맡겨야 한다"며 "시장의틀과 국가의 틀을 구분하고, 국가는 부실기업에 돈을 넣을 것이 아니라 고용 등 사회적 안전망을 어떻게 마련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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