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금융 경험은 강점…구조조정 경험은 '물음표' 평가
이동걸(68) 영남대 경제금융학부 특임교수가 12일 KDB산업은행 회장으로 취임한다.
지난 4일 임명제청이 이뤄진 지 8일 만이다.
산업은행은 기업대출과 정책금융 등을 취급하는 국내 최대의 정책 금융기관이다.
산업자금의 조달·공급과 인수합병(M&A)·사모펀드(PEF) 등 투자금융업무, 해외채권 발행 주선과 해외투자 등 국제금융업무, 기업구조조정 업무 등을 수행한다.
지난해 6월 기준으로 산업은행 자산은 218조9천436억원에 이른다.
산은이 지분 5% 이상 출자한 비금융사는 377개(출자전환 34개, 중소·벤처투자등 343개)로 장부가로 따지면 9조3천억원 규모다.
관리 대상 계열 기업 숫자로는 국내 최대의 대기업 그룹인 셈이다.
새 산은 회장은 현안으로 부상한 한계기업의 구조조정, 산업구조 재편, 창조금융 지원 등 수많은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
◇ 기업구조조정·자회사매각·성장산업 육성 등 현안 산적 새 수장을 맞는 산은 앞에는 너무나 크고 막중한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우선 산은 관리 대상에 올라 있는 기업 구조조정이 당면 과제다.
기업부채 문제가 가계부채에 이어 한국경제의 주요한 위험요인으로 부상하면서산은의 적극적인 역할과 책임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커진 상황이다.
개발금융을 맡아온 산은은 조선, 철강, 해운, 건설 등 '중후장대' 산업에 대한금융지원을 주로 맡았고, 그 결과 이들 산업 내 상당수 기업에서 주채권은행 역할을하게 됐다.
최근 대우조선해양, 현대상선 등 구조조정 이슈가 부각된 주요 대기업의 주채권은행이 거의 예외 없이 산은인 이유다.
정부가 작년 말부터 부실 한계기업 구조조정을 주요 정책목표로 세우고 신용위험평가 대상과 기준을 강화하는 등 강공 드라이브를 걸면서 앞으로 산은이 구조조정과정에서 맡게 될 역할은 더욱 막중해질 전망이다.
정책금융 역할 개편에 따른 새로운 위상을 세우는 것도 이 회장이 짊어질 책무다.
지난해 정부는 산은의 중점 지원분야를 전통 주력산업에서 미래성장동력 산업으로 바꾸는 내용의 정책금융 기능 재편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앞으로 산은은 민간 지원 부문을 보완해 창의력과 기술력을 가진 기업의 성장단계별 금융지원에 집중하게 된다.
과거 우리 경제의 성장을 이끌었던 전통산업의 경쟁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새로운 미래성장 산업을 육성하는데 정책금융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산은이 보유한 비금융회사 지분 매각을 매끄럽게 마무리하는 것도 이 회장이 해결해야 할 중차대한 과제의 하나다.
정부는 정책목적을 달성한 기업의 경우 그간 출자전환했거나 투자했던 지분을 2018년까지 매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이 회장은 임기 안에 매각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 산은 수장으로 능력 보일까…임명 단계에선 평가 엇갈려 이 회장이 이렇게 산적한 현안을 매끄럽게 처리할 수 있을지를 놓고 금융권 안팎에서 평가가 엇갈린다.
학계 출신이라 취임 당시부터 "금융 경험이 없어 미숙할 것"이라는 비판을 들어야 했던 홍기택 전 회장과 달리, 풍부한 경력을 자랑하는 금융인이라는 점은 이 회장의 장점으로 꼽힌다.
그는 1970년 한일은행에 입행한 뒤 신한은행 부행장, 신한캐피탈 사장, 신한금융투자 사장·부회장 등을 역임해 40년의 금융 경력을 자랑한다.
상업은행과 투자은행(IB) 업무를 두루 경험했고,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신한은행 홍콩현지법인 사장을 지내며 아시아 금융의 중심지를 경험했다.
신한금융 재직 시절 한동우 현 신한금융 회장과 신상훈 전 신한지주[055550] 사장, 홍성균 전 신한카드 부회장 등과 함께 그룹을 이끌 인재군으로 꼽히는 등 업무역량에 대한 평가도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한캐피탈 대표로 취임한 뒤 회사를 여신전문금융회사로 변모시키고, 굿모닝신한증권 대표이사로 재직할 때 한국형 IB모델을 정립하려 노력한 것 등도 업적으로평가받는다.
금융권 관계자는 "IB업무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며 "국제감각을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러나 금융 영역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음에도 산업은행이 당면한 최대 과제인 기업구조조정 관련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은 약점으로 지적된다.
산업은행 내부 관계자도 "금융권 인사라는 점에서는 환영할 일"이라면서도 "기업금융 쪽에서 얼마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붙는 것도 사실"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회장의 임명을 제청한 금융위원회는 "이 회장이 신한금융투자 등에 근무하면서 기업구조조정과 관련한 투자은행 업무 경험을 많이 했다"며 일각의 우려를 일축했다.
이전 산업은행 수장에게 따라붙은 '낙하산'이라는 꼬리표는 이 회장도 피할 수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지난 대선 때 금융인들의 박근혜 대통령 후보 지지 선언을 이끈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 산업은행 노조는 "대선 당시 선거 지원을 한 대가의 보은 인사, 비전문가의 낙하산인사라는 구태를 답습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이 회장은 낙하산 인사라는 이미지를 떨쳐내고 산업은행을 이끌 적임자임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숙제도 떠안고 있다.
◇ "구조조정 타이밍 놓치는 일 없어야" 이 회장은 취임 후에 산은이 관리하는 주요 기업의 구조조정을 적기에 추진해경제에 새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기간산업이 구조적 불황산업으로전락한 현실에서 산은이 맡은 책임과 역할은 막중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새 산은 회장의 책무에 대해 "산은이 주채권은행을 맡는 주요 대기업의 경영현황을 정확히 판단해 제때 구조조정을 이끌어야 한다"며 "그래야 우리 경제에 내재한 부실을 털어내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 회장이 경제 외적인 요인에 흔들려서 구조조정 업무에 불합리한 의사결정을 내려 구조조정 타이밍을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채권 은행으로서 기업 부실을 잘 관리하는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상업은행(CB) 기능을 가진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산은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신성장산업을 육성해 새로운 먹을거리를 창출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앞으로 산업은행이 해야 할 일은 어떤 산업이새로운 먹을거리를 창출할 것인지를 모색해 그 분야에 정책금융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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