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에 양날의 칼, 국제유가 등락…너무 떨어져도 문제

입력 2016-01-09 15:00
저유가의 '역설'…축복 요인에서 이젠 저주 요인으로 변모가계소비 여력 높이지만 수출전선에 악영향·디플레 우려도



국제유가가 배럴당 20~30달러대로 내려앉으면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한때 저유가는 에너지원을 전량 수입해야 하는 한국 경제에 축복으로 여겨졌다.



기름 값이 내려가면 기업들은 생산 비용을 줄이고 개인은 소비를 늘릴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유가 하락은 과잉 공급 기조 속에 세계 경제 침체가 겹치면서 심화한 것이라 오히려 한국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다.



이른바 저유가의 저주라는 역설적인 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 저유가, 생산비용 낮추고 가계 소비 여력 늘린다 원유를 전량 수입해 쓰는 한국 경제에 유가 하락은 긍정적인 면이 적지 않다.



기업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공장 가동 등에 필요한 에너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비용이 줄면 당연히 이익이 늘어나기 때문에 채산성이 높아진다.



가계 입장에선 기업의 생산비용 절감으로 제품 가격이 떨어지는 혜택을 볼 수있다.



물가수준이 내려가면 실질소득이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져 소비 여력이 이전보다커지고 이는 경기가 살아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국제유가가 연일 추락하면서 국내 주유소 기름 값은 7년 만에 휘발율 기준으로 리터(ℓ)당 1천300원 시대에 진입했다.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모든 사람의 지갑 사정이 국제유가 하락으로 다소나마 좋아진 셈이다.



국제선 항공권 유류 할증료는 5개월 연속 0원에 머물러 있고 국내선 유류할증료는 다음 달부터 0원이 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1월 유가 하락이 모든 재화와 서비스 가격 하락으로 이어진다고 가정하고 국제유가가 35% 하락할 경우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5조2천억 원가량 늘어날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이를 인구 수로 나누면 1인당 35만원 정도의 가계지출 절감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의미다.



또 유가 하락은 전반적으로 물가를 낮추는 요인이 되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낮게 유지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한다.



이런 이유로 원유 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인 우리나라 입장에선 저유가가 큰 축복으로 생각돼 왔다.



◇ 지나친 저유가, 수출에 큰 악재…한국 경제에 '부메랑'으로 하지만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들던 국제유가가 20~30달러대로 추락하면서 저유가는 우리 경제에 축복이 아니라 큰 악재가 될 수도 있는 '양날의 칼'임이 곳곳에서드러나고 있다.



특히 유가 하락 국면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하락폭도 커지면서 오히려 부정적인측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저유가가 산유국을 비롯한 신흥국 경제를 어렵게 만들어 글로벌 경제를 침체에빠뜨리고 디플레이션 압력으로도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수입의 상당 부분을 원유 판매에 의존하는 중동 등지의 산유국들은 저유가로 심각한 재정난에 직면해 있다.



이는 곧바로 조선, 건설, 플랜트 등 우리나라 기업들의 주력 수출 분야에서 눈에 띄는 수주 감소로 나타났다.



실제로 저유가로 유동성이 위축된 산유국과 시추업체들은 발주 물량을 줄이거나아예 취소하기도 해 우리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12월 초 기준으로 작년도 해외건설 수주액은 약 409억5천700만 달러로 전년도 같은 기간의 595억6천만 달러에 비해 31.3%나 급감했다.



이 가운데 해외건설의 '텃밭'으로 불리던 중동 지역 수주액은 147억2천600만 달러로 무려 52%나 줄었다.



이는 2006년 이후 중동지역 수주 금액 중 가장 낮은 수치다.



해외 수주액 감소는 산유국 발주처들이 저유가로 인해 발주 물량을 축소하거나연기한 영향이 크다.



일례로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는 20억 달러 규모의 라스 타누라 대형 플랜트 프로젝트의 재입찰을 잠정 중단했고, 카타르는 85억 달러 규모의 알카라나 석유화학 콤플렉스 프로젝트 발주를 연기했다.



지난해 말부터 저유가 탓에 중동의 경기가 나빠지면서 미청구 공사 대금을 받지못하는 건설사들도 늘고 있다.



한국의 주력 산업 중 하나인 조선업계도 유가 하락의 직격탄을 맞았다.



저유가로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시추업체들의 발주 및 계약 취소가 줄을 잇고,해운업계는 일감이 줄어 선박 발주를 거의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향으로 작년 대우조선해양[042660], 현대중공업[009540], 삼성중공업[010140] 등 조선 '빅3' 업체의 적자 규모는 지난해 사상 최대인 8조원을 넘긴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산유국들이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투자했던 '오일 머니' 회수에 나서면서 세계 금융시장의 변동성도 커지고 있다.



저유가 기조는 일부 부문에선 수출에도 악영향을 준다.



우리나라는 원유를 원료로 쓰는 석유화학 산업 강국이다. 원유 가격이 내려가면석유화학 제품 가격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목인 석유제품과 석유화학 제품 수출은 전년대비각각 36.6%, 21.4% 감소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우리나라의 전체 수출은 전년 대비7.9% 줄었다.



디플레이션에 대한 걱정도 깊어지고 있다.



원자재인 석유 가격이 하락하면 물가도 따라 낮아지는 만큼 세계 경제에 디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진다.



우리나라도 작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7%로 사상 최저를 기록한 것은 유가 하락의 영향이 크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도 전망치만큼 물가가 오르지 않아 물가관리를 하는 중앙은행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 저유가 지속될 듯…"수출산업 경쟁력 높이는 체질개선 이뤄야" 기존 원유와 경합하는 셰일가스 생산 기술의 발달로 초경질원유(콘덴세이트) 생산량이 늘고 세계 경제도 뚜렷하게 나아질 흐름을 보이지 않아 저유가 상황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어질 공산이 큰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던 제조업 분야에서 에너지를 덜 쓰는 서비스업 위주로 산업 구조가 바뀌고 있는 점도 저유가 기조를 심화시킬 수 있는 요인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대 원자재 수입국인 중국 경제가 둔화하면서 수요시장이 워낙 안 좋아진 만큼 배럴당 30달러 내외에서 움직이는 저유가 상황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도 "현재로선 유가가 올라갈 요인이 뚜렷하게 없다"고 말했다.



다만 지정학적인 변수로 말미암은 급변동이 나타날 수는 있다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저유가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효과를 줄이면서 긍정적인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수출산업의 제품 경쟁력을 높이는 체질 개선을 이루고 유효 수요를 늘릴 수 있는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가 하락으로 생산 비용이 싸진 만큼 줄어든 생산 비용을 제품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데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유가 하락을 체감할 수 있도록 생활물가 수준을 내리도록 유도하면 소비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연구위원은 "저유가 상황이 지속될 경우 전년 대비 수출 단가하락폭은 점점미미해지므로 수출물량을 계속 늘릴 수만 있다면 중장기적으로 우리 수출에 플러스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성패는 결국 제품 경쟁력을 키우는 일에 달렸다"며 "연구개발 투자 등을늘려 더 좋은 제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창출하는 것이 전제된다면 저유가를 기회로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작년에 국제유가가 많이 떨어졌지만 실질적으로 체감할 만한 물가하락은 없었다"며 버스요금, 난방유 가격, 아파트 관리비 등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낄수 있는 물가들이 내려가야 수요 증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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