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가격 규제 확 풀고 업계 책임은 대폭 강화보험자유화 조치, 22년 만에 실질적인 완성 의미
정부가 내놓은 '보험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은획일적 상품 내용과 가격을 다양화해 소비자 선택권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상품개발과 관련한 사전 규제를 없애 경쟁을 촉진하고 자산운용 부문의 규제도풀어 보험업계가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했다 소비자로선 싸고 양질인 상품을 고를 수 있게 되겠지만 가격 빗장이 풀린 영향으로 실손보험 등 일부 상품의 가격이 크게 오르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보험사로선 자율성이 커지는 만큼 소비자보호 책임도 무거워진다.
지금까지는 잘 팔면 그만인 판매경쟁 일변도였다면 앞으로는 소비자의 구미에맞게 싸게 잘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가격경쟁에 상품경쟁까지 치열해져 보험사들은 그야말로 무한경쟁 시대에 돌입하게 된 셈이다.
◇ 로드맵 왜 나왔나…세계 8위 보험시장서 '붕어빵 상품' 경쟁 이번 보험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은 금융개혁의 한 갈래다.
소비자 편익을 키우겠다는 게 우선 목표지만 업계의 발목을 잡았던 규제도 수술대 위에 올랐다.
한국은 세계 8위 보험시장으로 성장했지만 저성장·저금리·고령화 같은 환경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성장동력마저 약화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부 규제가 시장의 역동성과 창의성을 가로막고 업계는 규제의 울타리 내에서서로 비슷한 붕어빵 같은 상품으로 양적 판매경쟁에만 매달린 결과다.
설계사 1년 정착률이 40%를 밑돌 만큼 '철새 설계사' 문제를 초래했고 불완전판매라는 그늘은 날로 커졌다.
보험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나빠지는 게 당연할 정도다.
금융위 도규상 금융서비스국장은 "이번 로드맵은 1993년 12월 발효한 보험 자유화 조치를 22년 만에 실질적으로 완성한다는 의미를 갖는다"며 "인프라를 선진화하고 신뢰를 회복해 세계 5대 보험시장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업 룰이 '규제규율'에서 '시장규율'로, 경쟁의 양태도 양적에서 질적 경쟁으로 각각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게 금융위 설명이다.
◇ '사실상 상품인가제' 54년 만에 역사 속으로 로드맵은 자산운용 규제의 패러다임 전환과 판매채널 혁신을 위한 과제도 포함했지만, 핵심은 상품개발의 자율성을 높이고 다양한 가격의 상품이 공급될 수 있도록 규제를 철폐하는 점에 있다.
상품개발에선 사전신고제를 내년 4월에 원칙적으로 폐지해 사후보고로 바꾼다.
1962년 사전인가제 도입 이래 2003년에 사전신고제로 개선됐는데도 그간 당국의포괄적 재량권 행사로 '사실상 인가제'였던 점을 고려하면 54년 만의 폐지라고도 볼수 있다.
실제 상품신고 건수는 2010년 689건에서 지난해 1천525건으로 늘었다.
이번에 원칙적으로 폐지해도 의무보험과 새로운 위험을 보장하는 최소 상품에대해선 사전신고제가 유지된다.
아울러 당국이 정했던 보험표준약관을 폐지하는 대신에 소비자보호 관련 내용은감독규정과 시행세칙에 규범화한다.
실손의료·자동차보험 등 표준화가 필요한 상품은 표준약관 제정권을 협회 '상품심의위원회'에 맡겨 민간의 몫으로 넘긴다.
촘촘한 규제망으로 얽혀 있는 보험상품 설계기준도 자율화한다. 면책기간, 장해등급별 보험금 설계, 해약환급금 계산, 자동차보험요율 조정 주기 등과 관련된 설계기준이 삭제된다.
이들 방안을 통해 상품이 다양화되는 효과를 금융당국은 기대했다.
자율권을 주는 대신에 사후관리는 강화된다.
2011년 도입 이후 부과 사례 0건으로 사실상 사문화됐던 과징금 규정을 살린다.
보험상품 설계기준을 어겨 상품을 개발·판매하면 과징금을 물릴 수 있는데도상품변경권고만 했던 게 그간 관행이지만, 앞으로는 해당 보험의 연간 수입보험료의최대 20%까지 과징금을 반드시 부과한다는 것이다.
신상품을 무차별적으로 복제해 무임승차하는 것을 막고자 도입한 '배타적 사용권'의 행사기간도 현행 3~6개월에서 최대 12개월까지로 늘린다. 사용권 침해행위에대한 제재금도 '최대 3천만원'에서 '수입보험료의 20%까지'로 강화한다.
◇ 표준책임적립금제 없앤다…가격규제 파격 철폐 그간 소비자보호와 건전성 확보를 위해 가해졌던 가격 규제도 푼다.
우선 다른 나라에 사례가 없는 위험률(보험사고 발생확률) 규제를 정비한다.
보험사가 정하는 '경험위험률'을 보험사가 희망한다면 언제라도 조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보험개발원이 정하는 '참조위험률' 조정주기도 3년에서 5년으로 늘린다.
아울러 현행 아래 위로 25%인 위험률 조정한도를 폐지한다. 위험요인이 늘거나줄 때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다만 실손의료보험에 대해선 1단계로 내년에 30%로, 2단계로 2017년에 35%로 조정률을 확대한 뒤 2018년 이후 완전 폐지 여부를 결정한다.
이는 5년간 가격을 올리지 못한 실손보험료의 단기 급등을 우려한 조치다.
새로운 위험을 보장하는 상품을 개발할 때 적용하는 위험률 안전할증은 현재 30%까지 가능한 것을 내년에 50%까지 확대하는데 이어 2017년 폐지한다. 새로운 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유인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보험사의 건전성을 위해 2000년 도입한 표준책임준비금제도도 없앤다. 이 제도는 보험금지급을 위해 적립하는 책임준비금 규모를 결정하는 제도다. 금융당국은 그간 해마다 1월 표준이율과 표준위험률을 정해왔다.
하지만 책임준비금 적립에 쓰는 표준이율이 보험사가 보험료를 산출할 때 쓰는예정이율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면서 획일적 상품가격을 초래하는 원인으로 작용한점이 폐지 결정의 배경이 됐다. 따라서 내년부터 표준이율도 함께 사라진다.
금리연동형 보험상품의 보험금 지급에 활용되는 공시이율의 조정폭도 현행 공시기준이율(보험개발원 공표)의 ±20%에서 내년 4월 ±30%로 확대한 뒤 2017년 폐지한다. 이렇게 되면 기존 고금리 상품에 따른 부담이 있는 보험사에 비해 신설사들이공격적인 공시이율을 적용해 소비자 혜택이 늘어날 수 있다.
◇ '베스트셀러 보험' 나올까 이런 방안으로 가격이 다양해지면 소비자들은 한동안 오히려 혼란스러울 수 있다.
금융위는 이런 점을 고려해 원스톱쇼핑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보험상품을 한 데모아놓는 플랫폼이라는 의미의 '애그리게이터(aggrerator)' 판매채널을 띄운다. 다음달 문을 여는 '온라인 보험슈퍼마켓'이 그것이다.
이곳에서 원하는 보장 내용과 보험료 등을 입력하면 비교 검색이 가능하다.
일단 온라인전용보험과 방카저축성보험, 단독실손의료보험이 필수상품이지만 선택성품으로 회사의 선택에 따라 실손보험, 자동차보험, 여행자보험, 보장성보험, 저축성보험도 올릴 수 있다. 내년 4월에는 상품 비교·공시정보를 포털에도 제공한다.
아울러 표준보장에 비해 누락된 비율을 확인하고 상품간 비교도 가능하도록 '보장범위 비교지수'를 개발해 소비자 편의를 도모할 예정이다 이런 비교 기능들은 업계에는 경쟁 심화 요인으로 작용해 보험사가 보험료를 함부로 올리지 못하는 간접제어 효과도 기대된다.
금융위는 1994년 독일이 보험료를 자유화한 뒤 오히려 보험료가 안정됐다는 사례를 들어 국내에서도 이런 효과를 기대한다.
그러나 실손의료보험은 예외다.
위험률 조정한도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데도 단기간 보험료가 급등할 가능성이커서다. 실제로 실손의료보험 손해율은 최근 5년간 가격을 제대로 올리지 못한 영향으로 지난해 138%까지 뛴 상황이다.
금융위는 모니터링을 강화해 부작용 조짐이 있으면 즉각 조치할 방침이다.
이번 로드맵은 '베스트셀러 보험'이 나오는 기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출혈 경쟁이 시작되면 일부 보험사의 건전성이 위협받는 상황이 올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특히 보험료 설정기준인 표준이율이 폐지된 영향으로 눈앞의 점유율 확대를 겨냥한 가격덤핑이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사정을 고려해 부채적정성 평가와 지급여력제도 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보험사 건전성에 대한 사후감독을 강화하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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