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관리 투명성·책임성 높일 장치 필요""은행 경영·내부통제 시스템 대대적으로 혁신해야"
KDB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이 지난 5년간 떠안은 5조5천억원대의 부실 여신은 국내 경제 전반에 충격파를 던질 수 있는 '뇌관'이기도 하다.
두 국책은행은 수시로 불거지는 주요 거래 기업들의 부실 문제로 환절기에 감기를 앓듯 정기적으로 몸살에 시달리고 있다.
가장 최근 사례는 3조원에 달하는 부실을 숨기다가 올해 2분기 실적에 한꺼번에반영해 충격파를 던진 대우조선해양[042660] 사태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의 최대주주이고, 수출입은행은 대우조선에 최대 여신을 제공했다.
대우조선의 대규모 부실이 드러나자 산업은행은 자본잠식 상태를 막아주기 위해최소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됐다.
수출입은행 역시 선수금환급보증(RG)을 함께 책임지는 등 추가 자금 투입이 불가피해졌다.
두 국책은행이 부실 기업을 살리기 위해 자금을 쏟아부으면 동반 부실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이런 사태를 피하기 위해 결국에는 정부가 혈세를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두 국책은행은 지난 4월 경남기업 사태 때도 엄청난 손실을 감당해야 했다.
수출입은행은 법정관리로 넘어간 경남기업에 보증과 대출 형태로 제공한 여신이채권단에서 가장 큰 규모인 5천209억원에 달했다.
산업은행의 경남기업에 대한 채권액도 611억원이나 된다.
산업은행은 2013년에도 STX조선해양의 계열사들이 경영난에 봉착하자 대규모 지원에 나섰다가 1조4천억원의 적자를 냈다.
이후 STX에 대한 거액 대출 심사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관련자들이 문책당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동부그룹의 구조조정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해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수출입은행은 공동관리를 받는 성동조선해양에 대한 추가 지원에 채권단이 난색을 표하자 지난 5월 정치적 논리에 밀려 단독으로 3천억원을 지원했다.
그러나 성동조선해양이 정상화하려면 추가 지원이 필요한 상황인 데다가 조선업경기 전망이 밝지 않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계속되리라는 시각이 많다.
수출입은행은 지난해 모뉴엘 사태로 엄청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히든 챔피언(기술력과 성장잠재력이 큰 강소기업)'으로 뽑혔던 모뉴엘이 가짜수출 서류를 근거로 3조4천억원대의 사기 대출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수출입은행의 여신 심사에도 허점이 많은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수출입은행이 모뉴엘에 제공한 신용 대출은 1천135억원이나 됐고, 이는 고스란히 부실 여신으로 남았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서 구조조정 대상 기업과 관련된 부실 여신이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책임을 두 은행에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전성 관리에 목을 매는 시중은행들이 시장 원리에 따라 기업 구조조정에서 발을 빼고 나면 정부나 정치권의 입김에 영향을 받는 두 국책은행이 도맡아 처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현실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부실은 고스란히 국민의 세 부담으로 귀착된다는 점에서 기업 구조조정 절차를 한층 효율적으로 만드는 방향으로 손질해야 한다는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국민경제의 기반이 되는 기업을 포기할 수 없다는 명분에 따라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구조조정을 떠맡고 있지만 이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판단하고 이해 당사자들의 충돌을 조정할 제도가 없다"며 "구조조정과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일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선 구조조정 과정에서 채권단과 기업이 맺는 약정(MOU)과 관련해 대부분의 내용이 비공개로 이뤄지기 때문에 2012년 경남기업이 부실을 다 털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워크아웃을 졸업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그러므로 수시 공시 등을 통해 구조조정의 핵심 내용과 기본적인 이행 실적을공개토록 해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김 교수는 "현재의 구조조정 과정에서는 채권자의 이해만 반영되고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주주나 노동조합이 이의를 제기할 통로가 없다"며 한진중공업[097230]이나 쌍용차 사례와 같은 극단적 갈등은 그런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워크아웃 협의 과정에서 이의를 조정하고, 이것이 어려우면 법원에서 사법적 판단을 받을 수 있는 절차를 수립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채권단의 책임성을 높이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이런 과정을 통해 채권단이 기업을 살릴 수 있는지 신속하게 판단할수 있어야 모호한 명분으로 자금을 쏟아붓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울러 "울며 겨자 먹기로 부실기업을 떠맡는다고 항변하지만 두 국책은행이 외압을 핑계로 해당 기업에 '낙하산'을 내려보내는 모럴 해저드를 보인 것도 사실"이라며 국책 은행도 반성할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국책 은행들이 정부가 '어떻게 해주겠지'하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며 "은행 경영과 내부통제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혁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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