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부의 남대문 출장소' '세계 14위 경제국의 중앙은행' 다른 표현이지만 같은 곳을 지칭하는 말이다. 바로 한국은행이다.
1950년 설립된 한국은행이 오는 12일로 설립 65주년을 맞는다.
한은은 처음에 물가안정과 통화신용정책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설립됐다.
그 후 65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역할과 기능, 그리고 위상을 둘러싸고 적잖은 부침을 겪었다.
이제 한은은 정부의 수출드라이브를 뒷받침했던 개발연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위상을 어느 정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각국이 치열하게 펼치는 '통화전쟁'의 최전선에서 한국경제를 지키는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
◇ '남대문 출장소'에서 '세계 14위 경제국' 중앙은행으로 한국은행은 출범 당시 1950년 5월 5일 제정된 한국은행법에 따라 중앙은행 제도의 기본 이념을 충실하게 반영했다. 국민경제의 각 부문을 대표하는 인사로 정책결정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를 구성하고 은행권 발행과 통화신용정책 운영권한뿐만 아니라 은행감독 및 외환정책기능까지 담당했다.
하지만 1962년 5월 한은법 개정으로 외환정책 기능을 정부에 빼앗겼다.
금융통화운영위원회로 명칭이 바뀐 정책결정 기구는 정부 추천 인사의 비중이커지는 등 독립성이 약해졌다. 정부 주도로 수출드라이브 등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을추진하면서 금융측면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기관으로 받아들여졌다.
심지어 재무부 장관이 한은의 의결사항에 대해 재의를 요구할 수 있었고, 한은예산은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한은에 대한 재무장관의 업무검사권도 신설됐다.
한은은 정부 경제정책을 뒷받침하는 기관으로 전락했고 급기야 '재무부의 남대문 출장소'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 때문에 통화신용정책을 둘러싼 중앙은행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요구하는 내·외부의 욕구와 목소리가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한국은행 직원들은 1988년 11월 '중앙은행 중립성 보장추진위원회'를 결성해 전국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1997년 12월31일의 한은법 6차 개정은 이런 '한은 독립운동'의 성과물로 여겨진다. 한은의 임무가 물가안정만으로 축소됐고 은행감독기능은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넘겼지만, 한국은행의 중립성 보장이 법에 명기되고 재정경제원 장관 대신한은 총재가 금통위의 의장이 됐기 때문이다.
이후 9차 개정까지 통화신용정책 운용이 중기목표제로 변경되고 한은 총재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하는 등 한은의 독립성은 대폭 강화됐다.
◇ "한은 역할 변화해야" 목소리 커져 한국은행의 최우선 임무는 물가안정이다. 한국은행법 제1조 제1항은 이 법의 목적이 "한국은행을 설립하고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해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1조 2항엔 "한국은행은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함에 있어 금융안정에 유의해야한다"고 규정, 물가안정 외에 금융안정을 위한 노력도 요구하고 있다.
금융안정 책무가 부여된 것은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고 난 후인 2011년 9월 16일의 한은법 제8차 개정 때다.
하지만 한은이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에만 신경을 써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다양한의견이 나온다.
물가관리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경제환경의 변화를 받아들여 창의적인 통화신용정책으로 고용과 성장에도 기여해야 한다는 지적 때문이다.
세계 경제의 회복세가 지연되고 국제금융시장의 불안도 커지는 상황에서 한국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만큼 중앙은행이 물가안정 외에다양한 측면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이제 한국은행은 전통적인 '인플레 파이터'로서의 한정된 역할에서 벗어나 실물경기를 총괄하는 역할과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면서 "실물경기와 금융감독까지 포함해 한은의 정책목표가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도 올해 업무계획에서 이런 점을 의식해 "한은의 역할 변화의 필요성을 국민적, 시대적 관점에서 종합 점검하고 사회적 컨센서스를 바탕으로 다층적 정책목표를 조화롭게 추구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글로벌 통화전쟁 속에 깊어지는 고민 전 세계 대부분 국가가 자국 경제의 침체를 막기 위해 중앙은행을 앞세워 '통화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어서 한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일본은 아베노믹스로 엔저가 심화하면서 국제무대에서 일본 제품과 경합하는 우리 수출품의 경쟁력이 타격을 받고 있고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도 대부분 금리 인하 등을 통해 경기부양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작년 하반기부터 3차례에 걸친 금리 인하에도 경기 회복의 온기가 제대로 돌지 않고 있다.
게다가 1천1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가 추가 금리 인하의 발목을 잡고 있어 여타 신흥국처럼 완화적 통화정책에 발벗고 나서기도 쉽지 않다.
이주열 총재가 이끄는 한은은 올해 업무계획에서 이런 대내외 여건의 변화와 책임을 의식하고 있음을 밝혔다.
"역할 변화의 필요성을 국민적, 시대적 관점에서 종합 점검하고 사회적 컨센서스를 바탕으로 다층적 정책목표를 조화롭게 추구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겠다." hoonkim@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