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돈' 보조금…"국회·NGO 감시기능 강화해야"
정부가 국고보조금 제도에 칼을 빼든 것은 부정수급의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보조금과 관련한 부패 사건이 터져 나온다.
지방자치단체와 정부 부처, 예산당국과 국회의 관문을 통과해 지급된 보조금 가운데 사후 평가를 통해 '폐지' 판단이 내려진 규모는 1조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FTA 피해 농어민 지원금까지 '꿀꺽'…부정수급 백태 1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국고보조금 규모는 2010년 42조7천억원에서 2011년 43조7천억원, 2012년 47조5천억원, 지난해 50조5천억원, 올해 52조5천억원으로 연평균 5.3% 증가했다.
국고보조금은 국가가 특정 사업을 조성하거나 재정상 돕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나민간 부문에 사업비의 일부를 지원하는 제도다.
제도의 취지는 좋지만 '나랏돈은 눈먼 돈'이라는 말대로 부패가 심각하다.
이달 초 경북 경산에서는 진공펌프업체 대표 이모(49)씨가 구속되고 기술연구소장 한모(40)씨가 불구속 입건됐다.
이들은 2011년 1월부터 2013년 5월까지 진공펌프와 관련한 기술개발 연구비 명목으로 36억원의 국고보조금을 받았지만 12억원을 회사가 펌프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부품 구매에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역시 이달 초 대전에서는 국고보조금을 받아 운영되는 연구법인의 공금을 빼돌린 혐의로 김모(33)씨가 구속됐다. 김씨는 3억2천만원을 빼돌려 유흥비 등으로 탕진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구지방경찰청은 지난달 자유무역협정(FTA)으로 피해를 보는 농·어민에게 지원되는 146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축산농장 대표 등 50명을 사법처리했다.
검찰, 경찰 등 전국의 수사기관이 지난 9월부터 이달 15일까지 70여일간 적발해낸 보조금 비리 사건 규모만 246억원에 달한다.
국무조정실에 따르면 지난해 국고보조금 비리 규모는 1천700억원대에 이른다.
적발되지 않은 사업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규모가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
부정수급이 드러난 국고보조금은 국가가 회수한다.
◇1조1천억원 보조금 들어간 사업, 이후 '폐지해야' 판단 나와 부정수급 사건이 끊이지 않자 정부는 지난 2011년 국고보조 사업 평가 제도를도입했다.
교수 등 민간인 35명으로 구성된 평가단은 사업 내용, 추진방식의 적절성, 재정지원의 타당성 등을 고려해 정상추진, 사업방식 변경, 사업감축, 사업폐지 등 4단계로 평가를 내린다.
보조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평가는 점점 엄격해지는 추세다.
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정상추진' 평가를 받은 사업의 비율은 건수 기준으로2011년 65.7%에서 지난해 48.8%로 감소했다.
'사업감축' 평가를 받은 사업은 같은 기간 6.7%에서 16.5%로, '사업폐지' 사업은 9.8%에서 11.9%로 증가했다.
11.9%에 해당되는 금액은 1조1천450억원이다. 2012년에 이 금액의 국고보조금이들어간 사업들에 대해 평가단이 지난해 다시 검토한 결과,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게 적절하다는 판단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폐지' 결정이 난 사업도 여러 단계의 심사 절차를 거쳤다는 점에서 심사 자체가 허술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고보조금 신청과 심사, 지급 방식은 사업마다 제각각이기 때문에 한두가지로단정지을 수는 없다.
일반적인 예를 들면, 화훼 관련 사업을 하는 A씨가 10억원의 국고보조금을 받으려는 경우 양식을 갖춰서 농림축산식품부에 신청하면 농식품부는 A씨의 사업 계획을파악해 보조금 지급이 타당하다고 판단되면 기획재정부에 관련 예산을 요구한다.
이후 기재부는 농식품부와 협의해 예산 지급이 적절하다고 판단되면 내년 예산안에 관련 내용을 포함시켜 국회에 제출한다.
최종 결정 권한은 국회에 있다. 국회에서 관련 예산이 확정되면 농식품부가 집행에 들어간다.
국고보조금 사업 평가단의 평가 결과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기재부 관계자는 "정부도 국고보조금 부정수급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다"며 "평가단의 평가 결과가 법적 구속력은 없다고 하지만, 내년 예산안은 평가단의 건의를적극 반영해 편성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 "국회·NGO 감시기능 강화해야" 정부도 국고보조금 부정수급을 막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우선 정부는 내년 상반기 중 통합 시스템을 구축해 각 부처 홈페이지 등에 산재해 있는 국고보조금 관련 정보를 연계해서 관리할 계획이다.
일정 횟수 이상 보조금을 부정 수급하면 영원히 수급 자격을 박탈하고 보조금부정수급이 적발되면 최대 5배를 배상하는 등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시민단체와 국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국고보조금이 제대로 집행되는지 지켜보려는 비정부기구(NGO)가 많은데,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이 문제"라며 "정부가 자료 공개 범위를 넓히고 자료를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행정부가 편성한 예산안을 심사하는 곳이 입법부"라며 "정부 단계에서 걸러지지 않은 부적절한 국고보조금 사업을 국회가 걸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종학 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도 "최종 심의권한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역할을제대로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고보조금 비리 신고자에게 포상금 등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신고포상금 제도를 도입하면 부정수급 적발 건수가 늘어날 뿐 아니라, 신고를 두려워해 개인적으로 착복하는 경우도 주는 효과가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운용하는 보조금 평가단 인원(35명)이 평가해야 할 사업 수에 비해 너무적다는 지적도 있다.
국고보조금 사업은 2010년 2천81개, 2011년 2천53개, 2012년 2천35개, 지난해 2천80개, 올해 2천31개 등 매년 2천개를 넘고 있다.
평가단장인 이기영 교수는 "인원은 너무 적고 평가 대상 사업은 너무 많다보니전체 보조금 사업을 3분의 1로 나눠서 3년에 한번씩 평가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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