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정부입김 줄이고 정책 예측가능성 높여야"
KB내분 사태가 어떤식으로 정리되더라도감독당국을 향한 비난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신제윤 금융위원장과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등 금융당국 수장에 대해선 문책론이나도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5월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의 검사요청이 접수된 이후 5개월 가까이 사실상 KB사태를 방조해 위기를 키웠다는 책임을 면키 어렵다.
금융당국의 엇갈린 목소리는 사태 초기부터 나왔다. 금감원의 수뇌부들은 '무관용 원칙 적용'을 강조하며 중징계 불가피론을 펼쳤지만 상급기관인 금융위원회 내부에서는 '금감원이 무리하게 움직인다'는 곱지않은 시선이 끊이지 않았다.
금융권은 혼란스러워 했고 감사원은 갑작스레 중징계 사안에 제동을 걸면서 상황이 더욱 꼬였다.
임 회장과 이 전 행장은 로비전으로 대응했다. 온갖 설이 나도는 가운데 제재심의위원회는 두달간 징계수위를 결정하지 못해 혼란을 더했다.
제재심은 표결로 두 사람에 대한 경징계를 결정했지만 내분사태가 해소되기는커녕 더 격화했다. 최 원장은 2주간 최종결정을 늦추다 제재심 결과를 뒤집었다.
금융위는 12일 전체회의에서 최 원장이 건의한 문책경고보다 한단계 높은 '직무정지 3개월 처분'을 내렸다. 금융당국이 같은 사안을 놓고 3개의 엇갈린 판단을 내린데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게다가 금감원 제재심 위원에는 금융위 간부도 포함돼 있어 금융위 스스로 결정을 번복했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다.
이미 금융당국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모피아 출신으로 관료사회를 잘 아는 임 회장이 온갖 비난을 각오하고 징계내용에 불복하겠다는 것 자체가 금융당국 판단의 적합성과 타당성에 대한 법리 공방에서이길 수 있다는 자신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사태가 한국 금융의 부끄러운 민 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으로 본다.
이 기회에 뒷걸음치는 한국금융의 경쟁력을 되살릴 수 있도록 은행권의 무사안일주의, 관치금융, 금융감독 시스템 등을 전반적으로 대수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대 초반 증권, 보험, 은행, 신용카드를 아우를 수 있는 선진형 종합금사 육성을 위해 지주사 체계를 도입했다. 그러나 14년이지난 지금 아무도 한국금융의 경쟁력이 도약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금융당국을 활용해 입맛에 맞는 인사를 곳곳에 배치하는 관행과 눈칫밥 속에 경쟁력을 키우기보다 현실에 안주하는 은행의 나태함은 한국금융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KB사태는 정부와 친분이 있는 낙하산 인사간의 파워게임으로 보인다"며 "관치금융의 문제가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금융의 낙후성은 외부 평가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최근 내놓은 국가경쟁력 순위를 보면 우리나라의 금융시장성숙도는 81위로 가나(52위), 캄보디아(65위) 등에도 밀린다. 은행 건전성 순위는 122위로 작년 113위보다 추락했다.
은행 살림살이도 쪼그라들었다. 외형은 커졌지만 2004년 9조원에 육박했던 은행순이익은 작년에 4조원 규모로 반토막이 났고 금융권 인력은 구조조정에 떠밀려 종사자 수가 7월말 84만5천명으로 1년전보다 5.4% 감소했다.
무사안일은 숱한 금융사고를 불러왔다. 올초 터진 카드 3사의 개인정보 유출을비롯해 국민은행의 도쿄지점 부당대출, 본사와 지점 직원이 공모한 110억원대 국민주택채권 위조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정 연구위원은 "정부가 은행을 정책의 도구로 보는 시각이 강한 현실에서 은행내부의 능력있는 인사가 육성되기 어렵다"며 "은행에 대한 정부 입김을 최소화하고은행들은 내부역량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금융기관이 보신주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정부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라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한국금융을 도약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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