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 국민은행장이 '이사회의 거취 결정'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사회의 재신임을 얻을 경우 주 전산기 교체 논의 등에서 입지가 강화될 것이라는 판단에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읽힌다. 일부에서 거론되는 자진 사퇴는 사실상거부한 셈이어서 최종 징계 확정을 앞둔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의 고민은 더욱 커질전망이다.
◇ "이사회에 모든 것 맡기겠다"…'재신임' 승부수 이 회장은 이날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거취를 포함해 모든 것을 이사회에 맡기겠다"며 "(이사들이) 나가라고 한다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는 예상치 못한 뜻밖의 발언이었다. 지난 5월부터 국민은행의 주 전산기 교체문제를 둘러싸고 이사회와 극심한 갈등을 겪었던 것에 비춰보면, 이 회장의 자신감이 지나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 행장의 발언은 최근의 난국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로도 읽힌다.
주 전산기 교체 문제와 관련된 금감원 제재심의원회에서 '경징계'를 받아 기사회생했지만, 관련 임원들의 검찰 고발, 템플스테이에서 임영록 KB금융 회장과의 갈등설 등 여러 악재가 불거지면서 비판 여론이 거셌었다.
일부에서 '자진 사퇴'까지 거론되는 지경에 이르자, 더 이상 여론이 악화되는것을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에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사회에서 사퇴 결정이 내려지면 이 행장은 물러나야 한다. 하지만 재신임을받는다면 관련 임원 검찰 고발 등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며 주도권을 쥘 수 있다. 또이사들과 함께 주 전산기 교체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며 논의를 가속화할 수도있다.
이 행장은 이와 관련 "사외이사 한 분과 만나 이러한 의사를 전달했으며, 앞으로 주 전산기 교체와 관련해 적극적으로 방법을 찾아보자는 얘기 또한 전했다"고 밝혔다.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 이사들의 공감대를 어느 정도 얻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나오는 이유다.
임 회장과의 갈등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날 이 행장은 은행 주전산기의 교체 과정에서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이 개입한 것을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 거론했다고 밝혔다.
임 회장의 개입 부분은 관련 임원들의 검찰 고발장에서는 뺐다고 밝혔지만, 주전산기 교체를 둘러싼 임 회장과의 갈등, KB금융[105560]의 인사 개입 등을 우회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어 파문이 예상된다.
이 행장은 "임 회장과 화해 못할 일은 없다"고 밝혔지만, 임 회장의 주 전산기관련 개입설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셈이어서 임 회장과의 갈등 봉합은 당분간 물 건너간 일로 보인다.
◇무게 실린 '최수현의 입'…최종 결론은 금융당국은 갑작스러운 이 행장의 기자회견 내용에 대해 "개별 금융기관의 일에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가뜩이나 KB내분 사태 원인이 '낙하산 인사' 문제로 비화된 상황에서 직접 사태해결에 나설 경우 또다른 '관치'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부담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에따라 KB금융지주 임영록 회장과 이 행장에 대한 제재심의 경징계 결정을 수용할지를 고심중인 최수현 원장의 결정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 원장은 이날 회의도중 이 행장의 기자회견 보고를 받은 뒤 관련부서에 내용파악을 지시하기도 했다.
당국의 한 관계자는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의 갈등이 더욱 커져 최 원장의선택이 더욱 어렵게 됐다"고 귀띔했다.
제재심 결정을 수용하자니 '감독당국이 사태해결에 손을 놓았다'며 비난의 화살이 쏠릴 가능성이 커진 탓이다. 또 최 원장이 거부권을 행사해 중징계로 징계수위를높이면 제재심 위원 및 당사자들의 반발과 소송 제기 등 어려운 싸움이 예상된다.
더구나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 노사정 대표자 간 간담회에서 김문호 금융노조 위원장이 "KB금융 회장, 국민은행장은 물론 부실 징계로 심각한 경영공백을 초래한 최수현 금감원장도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노조는 오는 3일로 예정된 총파업에서도 관치금융 철폐를 주요 이슈로 내세운다는 입장이어서, 최종 결론을 앞둔 최 원장의 압박감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최 원장은 일단 제재심 결정의 법적 타당성 등에 대한 검토가 마무리되는대로마음을 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판단에는 KB 내분사태의 추이도 작용할 전망이다.
또다른 당국 관계자는 "최 원장이 원칙주의자여서 한국의 금융질서와 발전을 위해 두 사람의 양형을 한 단계 올려 퇴진을 유도하는 게 좋을지, KB내의 자진해결을유도하는 게 나을지 고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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