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인상 깜빡이' 켰다가 세 달만에 인하 급선회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1년3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한 것은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내놓은 정부와의 정책 공조를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가 46조원 규모의 확장적 재정정책을 펴면 한은은 금리를 내려 경기부양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소비심리 침체가 예상보다 심각해 기준금리 인하로 선제 대응에 나서야 할 필요성도 제기돼왔다.
◇ 최경환 경제팀 부양책에 금리 인하로 '화답'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를 둘러싼 올해 상황은 작년 4∼5월과 흡사하다.
정부는 당시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추진하면서 한은에 공개적으로 기준금리 인하를 요구했고, 한은은 4월 총액대출한도를 3조원 늘리고 5월에는 금리를 인하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올해도 기준금리 진행 방향을 결정적으로 돌려놓은 것은 최경환 경제팀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7일 인사청문회에서부터 "재정과 통화정책 간 적절한 조합이 이뤄질 수 있도록 공조가 필요하다"며 기준금리 인하필요성을 우회적으로 제기했다.
취임 후 ཥ조원+α'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내놓고 나서는 "경제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통화 당국에서 이런 인식에 맞게 대응할 것"(7월 28일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이라며 정책 공조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여당 의원들의 '엄호사격'도 이어졌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과감한 재정정책뿐 아니라 기준금리 인하 등 선제적 통화정책을 고려해야 할 때"라며 직접적인압박을 가했다.
올해 상황이 작년과 다른 것은 이주열 총재가 급격히 방향을 틀기는 했지만, 인하 시그널을 어느 정도는 줬다는 점이다.
작년 5월 김중수 전 한은 총재는 동결을 시사하다가 깜짝 인하 결정을 내려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주열 총재는 올해 5월 "기준금리의 방향 자체를 인하로 보기 어렵다"고 언급해 '인상 깜빡이'를 켰다는 해석을 낳았다가 6월에는 "내수부진이 일시적인지 통화정책 변화를 불러올 만한 큰 변화인지 지켜보고 있다"며 유보적 태도로 돌아섰다.
7월 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는 '경기 하방 리스크'라는 단어를 9차례나 언급하며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최경환 부총리와의 첫 회동 자리에선 '내수 부진 등으로 하방 리스크가 커졌다'는 경기 인식을 공유하기도 했다.
7월 금통위 의사록에서 금통위원 7명 가운데 과반수인 4명의 '비둘기 성향'(통화완화 선호)'이 드러나자 시장은 금리 인하를 기정사실화한 상태다.
지난달 국고채 3년물 금리는 2.465%(7월 23일)까지 떨어지며 기준금리인 2.50%보다 더 낮아지기도 했다. 주식시장 참여자들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추면 코스피가 60∼70포인트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한은의 이번 결정에는 금리 인하 전망을 미리 반영한 시장 움직임도 영향을 줬을 것으로 분석된다.
금리를 동결하면 시장과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데다, 정책 공조가 어그러졌다는 실망감이 주식·채권·외환시장 전반에 부정적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 인하 결정 이후에도 깊어지는 고민 국내 경제의 하방 리스크가 커진 만큼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는 경기 불확실성에선제 대응한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올해 2분기 국내 경제 성장률이 0.6%(전기 대비)에 그치는 등 국내 경제의 성장 경로는 예상치에 못 미치는 상태다.
위축된 경제주체들의 소비심리를 회복시키고, 빚이 있는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완화되는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다. 급격하게 떨어진 원·달러 환율을 안정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기준금리 인하 이후 한은의 고민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미국이 통화정책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미국은 올해 10월 양적완화 정책을 마치고 내년 중 기준금리 인상을 저울질하고 있다.
통화정책은 보통 6개월 이후를 보면서 방향을 설정하는데, 기축통화국인 미국의기준금리 인상이 시작되는 시점에 한은은 숨 가쁘게 기준금리 방향을 재설정해야 할처지에 놓일 수 있다.
기준금리 인하로 이미 1천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이주열 총재도 지난달 한 포럼에서 "기준금리를 낮춘다는 것은 부채 증가를 어느 정도 감수한다는 뜻"이라며 "가계부채 증가가 중기적으로 소비 여력을 제약하는효과도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은행의 적극적 권유로 주택담보대출을 변동금리에서 고정금리로 갈아탄 대출자들은 피해를 보게 된다. 불과 몇 달 뒤를 예측하지 못한 금융정책 때문에 소비자들이 손해를 떠안은 셈이다.
가계대출 잔액 기준으로 고정금리 대출 비중은 지난 6월 25.7%를 기록,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9년 12월 이후 최고치였다.
한은의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한은이 이번 금통위에서 이례적으로 은행 대출 증가율이 상승하는 시기에 금리인하를 단행했다는 것이다.
은행의 기업대출은 전월과 비교해 5월 6조원, 6월 3천억원, 7월 2조7천억원 늘었고 가계대출은 5월 2조원, 6월 3조6천억원, 7월 3조1천억원 증가했다. 은행 대출증가율이 올라가는 것은 경기가 회복세라는 신호로 해석된다.
권영선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한은은 1999년 5월 이후 지난달까지 은행대출 증가율이 올라갈 때 기준금리를 단 한번도 올리지 않았다"며 "이는 총재 반대에도 기준금리가 인하된 2004년 11월 '금통위 반란' 때도 없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임노중 아이엠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중앙은행이 금리 결정을 지나치게 '좌고우면'하면서 경기 대응 능력이 떨어졌다"며 "지난 1년 3개월간 경기가 변동하는 동안 한은이 장기간 무대응으로 일관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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