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들, 경영진 노골적 배제…갈등 격화
전산시스템 교체 문제로 이건호 국민은행장 측과 갈등을 빚고 있는 국민은행 사외이사진이 경영진 반대를 무시하고 한국IBM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는 방안을 강행하기로 했다.
사외이사가 경영진을 배제한 채 독자적으로 의결 안건을 상정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국민은행 이사회의 화합이 사실상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23일 국민은행에 따르면 은행 이사회는 이날 오전 9시 여의도 본점에서 임시 이사회를 열고 한국IBM을 불공정 거래행위 혐의로 공정위에 신고하는 안건을 논의한다.
한국IBM과의 메인프레임 시스템 사용 계약이 끝나는 내년 7월 이후 은행이 시스템을 연장 사용할 경우 매달 약 90억원의 할증 사용료를 지불하도록 한 기존 계약내용이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 신고 사유다.
국민은행은 이사회 갈등으로 유닉스(UNIX)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사실상 중단돼내년 7월 이후에도 일정 기간 기존 IBM 메인프레임 시스템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날 임시 이사회 개최와 안건 상정은 이 행장과 정병기 상임감사는 물론 은행임원진의 관여를 배제한 채 사외이사들이 직접 주도해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 관계자는 "공정위 신고 안건은 이례적으로 사외이사들이 직접 검토 작업과상정 준비를 했다"고 전했다.
정부 통제를 받는 공기업 등에서 사외이사들이 주도해 대표이사 해임을 결의한사례가 없지는 않지만, 민간 부문에서 사외이사들이 경영 안건을 이사회에 직접 상정하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다.
국민은행 이사회 10명 중 사외이사가 6명을 차지하는 만큼 공정위 신고 안건은원안대로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사외이사들의 IBM 신고 방침은 유닉스 시스템으로 전환하기로 한 기존 이사회의결에 쐐기를 박는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실제 위법성 여부와는 무관하게 국민은행이 직접 공정위에 신고했다는 사실만으로도 IBM은 향후 국민은행이 발주하는 전산 입찰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 경영진은 앞서 유닉스 체제 전환 사업에 1개 사업자만 단독 참여해 입찰이 무산되자 지난달 30일 경영협의회를 열어 전산 교체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날 이사회 개최로 전산시스템 교체를 둘러싼 국민은행 이사회의 내부 갈등은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외이사들의 공정위 신고 추진에는 KB금융지주 측의 의지가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금융당국의 제재가 확정되고 이사회가 안정되기 전까지국민은행의 경영 파행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pan@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