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여야가 신규 순환출자 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전격 합의함으로써 재벌 총수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전체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확장해온 관행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동양그룹과 같이 계열사를 편법 지원하는 수단으로 순환출자를 활용해온 사례도앞으로 사라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기존 순환출자는 기업에 미치는 충격을 고려, 그대로 인정하기로 해 이번법안 처리가 기업의 투자위축 등에 미치는 충격은 그리 크지 않을 전망이다.
◇여야 이견좁혀 논의 급물살…논의중단 7년 만에 통과 관심 순환출자란 한 대기업집단 안에 A기업→B기업→C기업→A기업 등의 방식으로 계열사끼리 환상형으로 자본을 출자하는 방식을 말한다.
상법과 공정거래법은 A와 B 두 기업 간 상호출자를 금지하고 있지만,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별도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총수는 A사만 지배하면 동시에 B사와 C사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고, 더불어 C사 지분을 통해 A사에 대한 지배력을 더욱 높일 수 있다.
순환출자 금지에 대한 논의는 2006년에도 있었다.
당시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은 출자총액제한제도 대안 마련 과정에서 순환출자해소 방안을 추진했으나, 다른 경제부처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결국 정부 안으로 채택되지 못했다.
신규 순환출자 금지법은 경제민주화 과제의 하나로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에 포함되면서 다시 논의에 불이 붙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6월 첫 논의를 시작했지만 기존 순환출자도 금지하자는 야당과 신규 순환출자만 금지하자는 여당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 연내 처리가 물 건너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야당이 기존 순환출자 금지에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고 여당도 예외조항을 일부 양보하면서 협상이 급진전했다.
이번 개정안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 내 계열사끼리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구조조정 시 총수일가의 사재출연이나 인수·합병, 증자 불가피한 사유로 형성되는 신규 순환출자는 예외로 인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5년간 순환출자 69개 생겨…동양사태 촉발 원인 지목 공정위 공시에 따르면 4월 기준 62개 대기업집단의 소유구조 가운데 지분율 1%이상인 순환출자 고리수는 14개 집단 124개이다.
이 가운데 2008년 이후 최근 5년간 신규 생성된 순환출자만 9개 집단 69개 고리로, 전체 순환출자 고리의 절반을 넘어선다. 최근 들어서 생긴 순환출자가 더 많다는 뜻이다.
순환출자 고리를 가진 대기업집단은 삼성, 현대차[005380], 롯데, 현대중공업[009540], 한진[002320], 동부, 대림, 현대, 현대백화점[069960], 영풍[000670], 동양[001520], 현대산업개발, 한라[014790], 한솔 등이 있다.
삼성은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삼성에버랜드등으로 이르는 다수의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하고 있으며, 현대차그룹은 현대차→기아차→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 등으로 이어지는 환산형 출자 고리를 가지고 있다.
순환출자는 ▲부실계열사 지원 ▲총수의 편법적인 상속·증여 및 지배력 강화▲상법상 규제회피 등 다양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회이사제, 감사위원회 등 그룹 내부의 견제장치를 무력화하는 원인으로도 지목된다.
공정위는 2008년 이후 69건의 신규 순환출자를 발생시킨 20건의 출자를 분석한결과 부실계열사 자금지원(8건), 편법적 상속·증여(3건)가 가장 많은 것으로 추정했다.
동양그룹도 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등 3개사를 중심축으로 하는 17개의 순환출자고리가 급속한 부실 확산의 큰 원인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양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동양레저와 동양파이낸셜대부 등 계열사를 동원해유상증자를 추진했고 그 결과 동양의 부실이 순환출자 고리를 타고 그룹 전체로 퍼졌다는 설명이다.
최근 5년간 신규로 형성된 순환출자 69개 가운데 14개가 동양그룹이 만든 것이었다.
◇재계 '투자위축' 반발…정부 "투자와 순환출자 무관" 재계는 통상임금 확대와 엔저 심화 등으로 경영여건이 악화하는 가운데 신규 순환출자까지 금지될 경우 기업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반발한다.
신규 순환출자 금지가 기업 인수 등 신규 투자를 위축하고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방어를 어렵게 해 경영권 보호 부담을 가중한다는 논리다.
다만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기존 순환출자 해소가 법안에서 제외된 것에 대해서는 안심하는 분위기다.
반면 정부와 찬성 의원들은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더라도 대형기업 인수가 어려워지지 않으며 적대적 M&A 방어도 어려워지지 않을 것이라며 우려를 불식하고 있다.
과거 대형기업 인수사례에서 순환출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한 사례가 없었으며대기업의 현금성 자산을 누적 보유해 자금여력이 풍부하다는 설명이다.
또 대기업의 내부지분율이 평균적으로 매우 높고 방산업체는 외국인 지분 취득시 당국의 허가가 필요해 외국자본에의 적대적 M&A 노출 우려가 높지 않다고 보고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기존 순환출자는 해소 과정에서 투자위축 등 국민경제에 부담이 될 우려가 크지만, 신규 순환출자는 부실계열사 지원 등의 폐해가 많아 조속한입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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