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양적완화 출구 전략과 최근의 원화 절상으로 한-미 간에 환율을 둘러싼 미묘한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다.
미 재무부는 한국의 외환시장개입에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고 우리 정부는 '마이 웨이(my way)'를 외쳤다.
상황에 따라 양국간 환율전쟁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 美재무부 "韓 경상수지 흑자 줄여야" 미국 정부는 30일(현지시간) 의회에 제출한 주요 교역국의 경제·환율 정책 반기 보고서에서 한국과 일본의 외환시장 정책에 대해 포문을 열었다.
보고서는 한국의 원화가 경제 펀더멘털보다 2∼8% 저평가됐다고 전제하면서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이뤄져야 하며 외환시장 개입 이후에는 내용을 즉시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특히 최근 원·달러 환율 하락의 주원인 중 하나인 경상수지 흑자폭을줄이라고 요구했다.
외환시장 개입을 자제하고 내용을 공개하라는 것은 미 재무부의 일관된 요구사항이었지만 경상수지 흑자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보고서는 또 올해 일본 중앙은행이 경제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노력을 시작했지만 엔화 약세로 이어졌고 이 때문에 미국과의 무역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스트로스-칸 '환율 전쟁' 예고 때마침 한국을 방문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미국양적완화 축소에 따른 국제적인 '환율 전쟁'의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스트로스-칸 전 총재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로 신흥국은 환율 문제가 발생할것"이라며 "소위 말하는 환율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스트로스-칸 전 총재의 경고는 양적완화가 실제로 축소될 경우 그동안 전세계,특히 신흥국으로 흘러들어 간 자금이 미국 달러 등 안전자산으로 회귀하면서 미 달러화 대비 환율이 올라가는 점을 경고하는 것이다.
신흥국 자금이 유출되면서 한국과 같이 펀더멘털이 좋은 국가들로 자금이 몰려드는 현상도 큰 흐름에서 같은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지난 6월 장중 1,163원선까지 올라섰던 원·달러 환율은 이달 중 1,054원까지내려간 바 있다.
신흥국처럼 자금이 빠져나가는 경우 달러 보유 중인 달러 매도 개입을, 한국처럼 자금이 몰려드는 경우엔 달러 매수 개입을 통해 외환시장에 대한 미세 조정을 시도할 수 있다.
다만 매도 개입의 경우 외환보유액이 소진되므로 일정 금액 이상은 어렵다.
◇ 당국, 반응 자제 속 "할 일 한다" 한국 정부는 공식 대응을 자제하면서도 이 같은 흐름에서 물러설 조짐을 보이지않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미 재무부의 환율정책 보고서는 의회에 제출하는 내부보고서로 한국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내용이 아닌 만큼 코멘트하기는 적절치 않다"고전제하면서도 "우리는 우리 갈 길을 가는 것이고 우리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미 재무부의 판단과 상관없이 외환시장의 급등락을 일정 부분 완화해 한국경제에 악영향이 없도록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환율이 일방적으로 쏠림현상이 있으면 경제 충격이 크기 때문에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급격한 원화 강세를 두고 당국은 외부적으로 정중동 입장을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상당히 결속된 분위기다.
원·달러 환율이 장중 1,054.3원으로 연저점을 경신한 지난 24일 기재부와 한국은행은 공동명의의 구두 개입을 통해 "정부와 한은은 최근 원·달러 환율의 일방적인 하락 움직임이 다소 과도하다"면서 "당국은 과도한 쏠림이 계속되면 이를 완화하기 위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구두 개입했다.
이와 동시에 10억~20억달러 상당의 달러를 매입해 원·달러 환율을 1,060원대로끌어올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재부와 한국은행이 공동 명의로 구두 개입에 나선 것은 2008년 이후 5년 만에처음이다.
LG경제연구원 김건우 선임연구원은 "수출 확대로 경기를 부양하려는 의지 때문에 미국이 환율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이라고 해석하면서 "환율전쟁으로 원화 가치가 빠른 속도로 절상되면 경상수지 흑자가 줄고 다른 신흥국처럼 자본유출이 시작될수 있으므로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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