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정책금융기관 개편 작업이 막바지에 이른 가운데 재계가 반대하고 나서면서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정책금융 개편이 수출 중견·중소기업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것인데 당사자들이 반대함에 따라 정부로서도 고민이 더 커지게 됐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정책금융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산업은행이 정책금융공사를 흡수하고 무역보험공사의 중장기 무역보험을 수출입은행으로 일원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정책금융의 효율화를 통해 수출기업의 애로사항을 최대한 해결해주자는취지에서 시도한 것이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일각에서 '배가 산으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산은·정금공 통합으로 자금공급여력 대폭 축소" 산은과 정금공을 다시 합치는 방안에 대해 우려가 나오는 것은 비용이 적지 않게 드는데다 통합으로 인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이 하락하면서 중소기업에 신용 공여 한도가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산은과 정금공의 연결재무제표상 자기자본은 26조4천억원인데, 산은과 통합하면 이 수치는 19조6천억원으로 6조8천억원 줄어든다.
BIS비율 10%까지 여신을 실행한다고 가정하면 통합 전후 기업에 대한 추가 자금공급 여력은 78조9천억원에서 49조8천억원으로 29조1천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개발연구원의 일자리 창출효과 계량화모형에 따르면 자금 공급 여력이 29조1천억원 감소할 경우 약 9만2천여명의 신규고용 창출 효과가 상실된다.
정금공은 산은 민영화를 전제로 지난 2009년 탄생했다.
하지만 이미 산은 민영화는 백지화됐고 금융위는 정금공을 산은과 재통합하는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통합기관의 BIS비율 하락은 단순히 기관의 건전성 지표 하락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박근혜 정부의 '고용률 70%' 목표 달성에도큰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정금공의 온렌딩대출을 이용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온렌딩대출은 시중은행 대출보다 금리가 낮고 만기가 길어 중소기업이 선호하던 상품"이라며 두 기관 통합으로온렌딩대출이 없어질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기업들, 수은·무보 통합 반대…"양기관 기능 유지로 가닥" 무역보험 일원화도 복병을 만났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전날 "수출입은행은 자산건전성 규제를 받는 은행으로 위험도가 높은 해외사업 지원이 어렵다"면서 "지난 20여년간 무역보험공사에서 해온 중장기 무역보험 업무를 무역보험공사에 그대로 존치해 달라"고 요구했다.
정부는 지난 1992년 무역보험 활성화를 위해 수출입은행에서 무역보험공사로 업무를 분리했으나 최근 재통합론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함에 따라 수은과 무역보험공사는 기능을합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정책금융 개편과 관련해 "정책금융체계 개편도 수요자인기업의 관점에서 개편을 추진해나가야 하고 국가 전체 경제에 대한 고민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무역보험공사 관계자는 "수은에서 무역보험을 총괄했던 1992년에는 지원 실적이1조8천여억원에 불과했으나 무역보험공사가 분리된 뒤 현재는 202조원에 육박하는등 무역보험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금융위 TF 관계자는 "무역보험 일원화와 관련해서는 내부에서도 워낙 반대가 많아 양 기관의 기능을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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