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조정보단 '中企대출' 확대에 무게
"자금은 어떻게 마련하고 있습니까?", "얼마나마련이 힘듭니까?" 한국의 통화정책 수장은 질문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지난 26일 대전의 한 중소기업에서다. 그는 업체에 기술력과 금융부문의 애로사항을 꼼꼼히 물었다. 애초 40분으로 예정된 간담회는 1시간 30분을 넘겨서야 끝났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변신하고 있다. 카펫이 깔린 총재실에서 서류를 검토하던 그의 주말이 1박2일 지방 기업체 방문으로 바뀌었다. 주중엔 강원도를 찾아 지역경제 발전방향을 논했다. 모두 유례없던 행보다.
28일 한은에 따르면 김 총재는 26~27일 대전을 찾았다. 분기별로 한차례 정도있는 지역본부장 회의와 함께 한은의 '총액한도대출'을 받는 지역 중소기업 두 곳을시찰하기 위해서다.
한은 관계자는 "총재가 산업현장을 방문하는 것은 사실상 처음일 것"이라며 "전임총재는 지역본부장 회의에 참석하는 일도 드물었다"라고 말했다.
대전 방문에서 김 총재는 상당한 열의를 보였다. 현장에 있던 한 관계자는 "총재가 워낙 열심이다 보니 함께 간 20여 명의 한은 간부들도 돌아가며 질문을 던졌다"고 말했다. 김 총재는 해당 업체에 정부에서 중소·벤처기업 육성 정책을 시행하니지원받을 수 있는 혜택이 많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은 총재의 일은 '현장'과는 관련이 적다. 총재직은 한국의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자리다. 한 나라 안에 돈의 총량을 늘리고 줄이는 일이다. 총재에게 중요한 것은물가, 성장률, 투자, 환율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숫자들이다. 그러나 김 총재는 이역할을 바꾸려 한다.
그는 24일 한 간담회에서 "지난 10여년간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에만 주력했다면이젠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금리를 안 내려 통화량이 부족한상황이 아닌 만큼 유동성이 실물에 도달하도록 '신용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신용정책은 한은이 중소기업에 낮은 이율의 자금을 공급하는 총액한도대출을말한다. 김 총재가 최근 정부·정치권·시장의 금리인하 압박에도 금리를 동결하는대신 내놓은 정부와의 정책공조 카드다.
한은은 지난 11일 총액한도대출을 3조원 늘려 기술을 가진 창업기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한은 관계자는 "이 제도는 한은과 은행만을 오가는 유동성을 특정부문에직접 공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총재는 간담회가 열린 그날 강원도청을 찾았다. 그는 도청 공무원을 상대로한 특강에서 기술개발에 성공해도 자금부족으로 실패하는 중소기업이 많다며 한은강원본부가 낮은 이율로 (지역 기업에) 총액한도대출을 공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선 올해 경기 회복을 점치는 한은이 정부의 요청에도 당분간 기준금리를동결할 것이라 점치는 시각이 많다. 그래서 김 총재의 이례적인 현장행보는 금리동결의 대안으로 내놓은 신용정책에 더 힘을 실으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한은 관계자는 "앞으로도 총재가 현장을 찾을지는 총재 의중에 달렸다"고 전했다.
banghd@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